새는 둥지에, 거미는 거미줄에, 사람은 우정 안에
(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 man friendship)
-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김종철 선생님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신 지도 1년이 넘어간다. 이별은 원래 느닷없이 오는 법이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운 작별로 선생님과 연결되었던 무수한 시간의 줄이 하루아침에 끊어진 느낌이다. 그 시간의 줄이 단단하던 때도 있었고, 가느다란 실낱같던 때도 있었지만 성긴 줄들이 모두 끊어지고 보니 비로소 선생님과 함께 보낸 오랜 시간의 부침과 파란이 다채롭고도 아름다운 한 폭의 거미줄을 만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 모두 시간이 공들여 엮어놓은 그 우정의 그물망에 기대어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좋아하셨던 영국 시인 블레이크는 "새는 둥지, 거미는 거미줄, 사람은 우정"이라고 했지만, 사실 영어 원문을 보면 동사는 나오지 않는다. 동사를 무엇으로 상상하느냐에 따라 번역은 달라지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블레이크가 말하려던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신이 주신 온갖 재주와 기술을 사용해서 새가 둥지를 만들 듯 거미가 거미줄을 만들 듯 사람은 우정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에게는 둥지가 거미에게는 거미줄이 안식의 집이 되듯 사람에게는 우정이 우리 존재를 보듬어줄 안식의 그물망이 된다는 뜻이다. 우정이란, 마치 좋은 가지를 모아다가 요리조리 둥지를 짓는 것이 새의 천성이듯, 또 마치 자기 몸 안에서 온갖 정성을 다해 실을 잣는 것이 거미의 천성이듯, 인간의 자연스러운 천성이라는 의미이다. 공들여 서로 어울리는 사귐의 시간이 나중에 어떤 무늬를 만들든 간에 블레이크는 그것이 지상에서 우리가 가장 사람답게 사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우정에 대한 강조는 김종철 선생님이 평생 흠모했던 이반 일리치(Ivan Illich)나 일리치의 평생의 벗인 리 호이나키(Lee Hoinacki)의 글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선생님이 번역한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2007)에는 선생님이 자주 들려주던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미국의 어느 농장에 거주하던 호이나키는 멀리 떨어진 에이레의 작은 섬에 사는 친구로부터 안부편지를 받았다. 마크라는 친구는 어느 날 자기 등에 작은 혹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을 불러 모아 의논을 하였다. 다함께 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마크는 마을의 신부를 찾아가 혹에 성유를 발라 달라는 부탁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자 신부는 주교가 부활절 직전 성목요일에 특별히 축복을 내린 기름을 마련하였고, 기도에 참가한 마을 사람들은 성유의 효험은 바로 자기들의 믿음에 달려있다고 믿고 성심을 다해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몇 주간의 의식이 끝나고 마침내 혹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호이나키의 또 다른 친구인 피터도 면도를 하다가 우연히 목에 혹이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피터는 외국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장 존경받는 종양전문가와 접촉을 했고, 그 전문가는 즉각적인 수술을 권고했다. 피터는 결정을 앞두고 고심하다가 짧은 갈등 끝에 마침내 전문가의 결정에 자신을 맡기기로 하였다. 그러나 수술은 복잡했고, 화학 치료를 받아야 했으며, 계속 반복되는 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은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다. 여기서 호이나키가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두 친구의 예를 든 것은 어느 한쪽은 운이 나빴고, 다른 한 쪽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가령 마크가 죽고 반대로 피터가 살았다 해도 중요한 것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두 선택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이 우정에 기반을 둔 세계 속의 삶인가라는 점에 있다.
우정의 손길에서 전문가의 서비스로
우리는 이 지구상에 서식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사는 동안 필연적으로 위험과 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위협은 종양으로 올 수도 있고, 사고로 발생할 수도 있다. 비단 의료적인 것만이 아니다. 사는 동안 실직을 당할 수도 있고,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 사는 동안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두려움 앞에서 호이나키는 우정의 세계와 전문가의 세계를 대비하려는 것이다. 우정의 반대편에는 기술적인 전문가가 있다. 그 둘의 차이는 하나는 인간적인 자질과 접촉을 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덕행을 실천할 필요가 없는 시스템의 일부라는 점이다. 어느 세계가 가까운 이에게 정성을 다하고 낯선 이를 환대하는 덕행을 습관적으로 베풂으로써 사회 속에서 도덕적 아름다움이 성장하도록 돕는가? 어느 세계가 불편을 기계장치에 의존하여 해소하고, 남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도록 모든 정보를 게시하고, 의료, 복지, 교육 등의 서비스를 상품화함으로써 인간이 선의를 행할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가? 김종철 선생님이 이 사례를 자주 언급한 까닭도 전문가 시스템에 둘러싸인 세계에서는 우정이나 환대와 같은 고결한 삶의 태도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크가 몸담고 있는 우정의 세계는 피터가 몸담고 있는 현대 문명의 세계와는 다른 토양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익숙한 삶의 방식, 잘 아는 이웃들, 과거의 기억과 연결된 현재, 다음 세대를 키우는 친근한 터전, 이런 것들로 둘러싸인 마크의 세계와 달리, 피터는 모든 것이 세련되고 편리한 시스템에 대한 충성으로 움직이는 세계에 속해 있었다. 피터가 속한 현대적인 대도시는 각종 전문가로 구성된 시스템 체제로 작동하기에 우정이 아니라 그런 서비스를 감당할 자본이 더 중요한 곳이 된다. 호이나키가 마크의 삶을 소개한 것은 그의 결정이 옳았다거나 효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피터와는 달리 삶의 모든 과정에 친구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나는 2001년에 영남대학교에 부임하면서 처음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얼마가 지난 뒤 영문과의 이승렬 선생님과 함께 김종철 선생님이 만든 <21세기 사상강좌>에서 통역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일리치의 친구였던 볼프강 작스(Wolfgang Sachs)를 초대한 강연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작스를 소개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작스를 이렇게 소개함으로써 사람살이의 핵심에는 우정과 환대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살고 죽고 늙고 병드는 삶의 고통과 불행을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덕행을 통해 견뎌나감으로써 우리의 삶은 오히려 풍요로워지고 진정한 자유인으로서의 자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소위 복지국가라는 것도 국가적으로 환대를 제도화하고, 친절을 제도화하고, 보살핌을 제도화할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제도화된 환대나 친절은 당연히 사람 간의 인격적 만남과 교류에서 나오는 환대와는 그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선생님에 따르자면 전자의 가장 큰 문제는 진정한 '이웃'을 발견할 기회를 처음부터 차단한다는 데 있다. 우정의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면 질병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도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삶에서 타인에 대한 환대와 그런 친절을 베풀어줄 이웃이 없다면 이 사회는 근본적으로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21세기 사상강좌>는 비록 4회(토다 기요시, 볼프강 작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사티쉬 쿠마르)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 연속강좌 역시 선생님을 둘러싼 우정의 세계, 가령 영남대의 친구들과 제자들, 가톨릭 단체와 시민단체들, 그리고 홍성을 비롯한 <녹색평론> 독자들의 지역모임과 같은 다양한 우정의 그물망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우정이란 자유의 공기를 함께 마시는 것
김종철 선생님은 일리치를 평생 동안 정신적 스승이자 벗으로 여겼는데 2002년 12월 일리치의 부음을 접하고는 한동안 몹시 울적해하셨다. 선생님이 좋아했던 리 호이나키와 볼프강 작스, 그리고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도 모두 일리치의 친구들이었다. 슬픈 마음에서인지 모르지만 일리치의 친구들 이야기를 자주 하던 어느 날부터 우리는 선생님의 제안으로 함께 독서모임을 갖게 되었다. 당시 선생님 연구실은 문과대 구관에 있었는데, 작은 그 방에 들어가면 책이 빽빽이 꽂힌 서가와 낡고 오래된 책상과 걸상, 그리고 대충 흩어져있던 메모지와 큼큼한 책 냄새, 그리고 언제나 옷에서 풍기던 쑥뜸 냄새가 가득했다. 처음 읽었던 책이 바로 일리치와 그 친구들이 공동집필한 <반(反)자본 발전사전(The Development Dictionary)>이었다. 이때는 번역본이 나오기 전이라 원서를 강독했는데, 선생님이 직접 한 줄씩 설명하는 방식으로 읽어나갔다. 진도는 마냥 느려지기도 했는데 처음부터 완독을 목표로 삼지는 않은 듯했다. 일리치가 독일에 머물 때면 늘 거주했고, 나중에 거기서 죽음까지도 맞이했던 일리치의 또 다른 중요한 친구 바바라 두덴(Barbara Duden)도 그때 알게 되었다. 일리치의 <젠더>는 이 여성과의 우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 시절을 회고하자니 어쩔 수 없이 감상적인 기분이 든다. 마치 마크를 감싸 안고 있었던 세계처럼 우리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따뜻한 분위기 속에 살고 있었다. 때로는 세 명이, 때로는 네 명에서 다섯 명이 되기도 했던 독서 모임은 확고한 신념의 존재였던 한 인물의 목소리에 빠져 있다가 강의가 끝나면 학교 뒤의 까치집이라는 식당으로 술과 밥을 먹으러 가곤 했다. 책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연구실 냄새, 건물을 나오면 나무들 뒤로 지던 저녁놀, 숲속에서 불어오던 듣기 좋은 바람 소리, 그리고 마음이 복잡한 스승과 철없던 제자들, 우리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공부하며 그런 시절이 끝날 줄 모르는 듯 보내고 있었다.
일리치는 산업문명의 대안으로 'conviviality'의 삶을 강조했는데, 김종철 선생님은 이 말을 '공생공락(共生共樂)'으로 옮겼다. 공생공락의 세계는 바로 자발적인 사귐의 세계이다. 고대 그리스는 사회를 폴리테이아(politeia), 오이코노미아(oikonomia), 그리고 코이노니아(koinonia)의 세 영역으로 구분하였는데, 정치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公)적 영역과 가정 생활을 꾸려가는 사(私)적 영역이 아닌 시민들이 서로 자발적으로 어울리는 공(共)적 영역이 바로 코이노니아의 세계이다. 이 제3의 활동 영역은 라틴어의 communis 개념에 해당되는 것으로 서로 친교 활동을 통해 공통성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기에 영어로는 'communion, fellowship, association' 등으로 번역된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의 성체인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는 가톨릭의 성찬식이 영어로는 바로 'The Holy Communion'인데, 이것은 엄숙한 종교적 의례도 원래는 그 바탕이 사람들 간에 서로 나누어 먹던 우정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일리치는 1998년에 독일의 브레멘시가 수여하는 평화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데 이때 축하 자리에서 우정에 관한 긴 연설을 하였다. 일리치는 서구문화 속의 '우정(philia)'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며 앞부분부터 상당히 길게 그동안 자신이 받았던 여러 번의 환대에 대한 묘사를 이어나간다. 수상식장에서의 만찬과 따뜻한 식사와 포도주, 거기 모인 벗들과 즐거운 분위기에 대한 긴 묘사는 어느덧 그와 비슷한 추억들로 이어진다. 70세 때 브레멘 대학이 깜짝 선물로 마련해 준 생일파티와 밤늦게까지 이어진 춤과 만찬, 그리고 독일에서 일리치가 언제나 묵었던 친구 바바라 두덴의 집, 그곳의 따뜻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검소한 부엌에서 벌어지던 스파게티와 포도주의 환대, 늦은 밤까지의 대화, 멀리서 온 친구와 새로 알게 된 벗들, 주인과 손님, 이방인과 친구들이 서로 어울려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하며 보냈던 평화로운 삶에 대해 회상하는데, 아마도 상호신뢰에 바탕을 둔 두덴 집의 공기가 바로 필리아, 즉 서로 우정을 나누는 코이노니아의 바탕일 것이다.
그의 기억은 다시 오래 전의 남미시절로 돌아가 1957년에 처음 푸에르토리코에서 친구 세 명과 작은 오두막을 얻어 함께 공부하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리고는 멕시코에서 운영했던 배움과 연구센터인 CIDOC(the Centro Intercultural de Documentación)시절을 회상한다. 10년간 성공적으로 운영되던 이 센터는 놀랍게도 어느 날 63명의 공동참가자들의 자발적인 상호 동의에 의해 문을 닫기로 결정되었다. 이 유쾌한 결정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고 친구들은 서로 담소하며 종결을 축하하는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다. 센터가 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일리치의 친구들은 달라진 공기로 감지했다고 한다. 어느 순간 센터를 둘러싸고 있던 환대의 분위기에 아우라가 생기게 되었고, 그런 아우라의 공기 속에서는 우정이 질식하게 된다고 판단하였다. 우정이란 자유의 공기를 함께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공기가 아우라로 변한 것을 일리치는 냄새로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대의 냄새를 맡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뿐 아니라 그 냄새를 참아주는 신뢰이기도 하다. 일리치는 우정이 무엇인지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같은 공기를 서로 맡고 공유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미 잊혀진 기독교의 오래된 의식을 소개한다.
초기 기독교 시절의 팍스(평화, pax)는 로마시절의 팍스와는 그 의미가 달랐다. 초기 기독교 시절 팍스는 예배의식에서 중요한 행위였던 오스쿨름(osculum)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의 입을 맞추는 키스였다. 일종의 우애의 키스인 이 오스쿨름은 실제로 상호간의 입맞춤이었으며, 따라서 서로의 숨결을 맡고 마시는 콘스피라티오(conspiratio)였다. 신자들이 서로 모여 '호흡을 같이하며'를 의미하는 콘스피라티오의 키스를 통해 서로에 대한 우애와 함께 신의 숨결을 느끼고, 거기서 하나가 되는 평화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신의 입김 아래 서로 호흡을 같이하며 지내는 것이 바로 우정이자 그 우정이 주는 평화인 것이다. 그런데 이 콘스피라티오에 연결되는 또 다른 종교적 예식이 바로 앞서 말한 성찬식이다. 함께 먹을 성찬을 준비하느라 같은 공기를 맡고 마시며 서로의 우애를 발휘하는 것이 먹는 행위의 중요성이다. 이렇게 서로 어울려 같이 먹으며 호흡을 나누는 의례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의 "우리"가 된다. 물론 말 그대로 실제 입맞춤이었던 오스쿨름은 점차 기독교가 제도화되면서 의례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평화의 키스'라는 완곡한 표현 뒤로 숨게 되었다.
수상식 자리에서 이렇게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길게 했다는 것이 놀랍기는 하지만 아마도 일리치는 같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숨결을 맡으며 밥을 나눠 먹는 것이 바로 우정의 세계라고 말하려던 것 같다. 내가 인하대로 이동하고 김종철 선생님이 서울로 올라온 2004년부터 선생님은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을 시작하였다. 서울에 와서도 우리들은 매주 토요일이면 뜻을 같이하는 20여명 이상의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일리치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와 케일리(David Cayley)가 기록한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를 원서로 읽었다. 이번에도 물론 선생님이 읽고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두 책이 끝난 뒤로는 주로 선생님이 일주일간 읽은 책들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였다.
선생님의 독서가 다양해질수록 우리들의 학식도 넓어졌다. 일본어와 한자를 잘 하셨던 까닭에 독서모임의 후반부는 동양의 여러 사상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연세대 강의실을 빌려 진행된 이 독서모임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된 1차 공부가 끝나면 이화여대 후문가의 식당과 술집으로 이어가며 밤늦도록 함께 보냈다. 그러다가 청운동에 공부방을 얻으면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실험을 하였다. 하나는 지역화폐를 본 따 우리들끼리 화폐를 만들어 필요한 물건을 사고팔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지역화폐의 정신을 우리 모임에서도 살려보자는 취지였는데, 실제로 꽤 활발하게 '톨'과 '원'을 사용하여 서로에게 필요한 상품들을 주고받았다. 나도 그때 집에 있던 물건들을 내다 팔아 마련한 톨로 친구들이 만든 수제 빵이나 곡물을 샀던 기억이 난다. 또 다른 실험은 '일리치 은행'을 설립한 일이다. 돈이 실제로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며 순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주는 이자 없는 은행을 만들어본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선생님이 제일 큰 자본금을 내셨다. 독서모임 안에 우정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이 두 가지 노력 외에도 우리들은 수돗물 불소화 반대나 지율스님의 도룡농 소송,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와 4대강 사업 반대운동 등에도 열심히 힘을 모았다. 선생님이 환경파괴 현장에 가시면 같이 따라가고, 외부에서 특강을 하시면 몰려가 듣기도 하였다. 그때 만든 인터넷 카페의 기록을 보니 정말 한마음 한뜻으로 호흡을 같이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리치 읽기' 독서모임은 10년 동안 이어지다가 어느 날 선생님께서 종결을 선언하셨다. 시작이 있었으니 끝이 있었을 뿐이었지만 일리치의 친구들처럼 모두가 기쁘게 종결을 합의하고 축하하던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쩌면 선생님을 포함하여 몇몇은 달라진 공기 냄새를 맡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열심히 함께 했지만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이 나누어 먹기에는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우리들은 '일리치 자유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간헐적으로 만나왔지만 어쩔 수 없이 점점 멀어졌다. 나는 <녹색평론>의 편집자문위원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선생님과 함께 진행되던 편집회의에 참여했지만, 그러나 두 달에 한 번 서울의 음식점에서 갖는 저녁 식사로는 우정의 공기를 만들어내기에 충분치 않았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는 적어도 우정을 나누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다들 일정이 바빴고, 찾아오는 거리는 멀어졌으며, 마음의 여유는 없어졌다. 게다가 같이 거닐 수 있는 호수길이나 숲길도 없었다. 영남대 시절 우리들은 자전거를 타고 후문가 뒤편의 논밭을 지나 갑제 못까지 제법 멀리 산책을 가기도 했는데, 그때처럼 논둑길에 나란히 앉아 익어가던 벼를 지켜보거나 저녁노을 너머로 날아가던 철새들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함께 호흡했던 콘스피라티오의 공기는 옅어져갔고, 덩달아 우정의 그물망도 성기어 갔다. 같은 냄새를 맡고 같은 숨을 쉴 그런 공기를 키워줄 공동체가 없으면 공기란 이처럼 무상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우정이란 대기 속으로 흩어지는 숨결을 함께 마시는 것이라는 일리치의 말은 결국 우정의 정신을 오래도록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일리치는 우정이란 덕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이며, 덕은 좋은 일을 계속 행하는 습관적인 성향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한 번의 선의나 선행은 덕으로 자리 잡지 못한다는 말이다. 친구들과 이웃하여 함께 살며 자유의 공기를 마시고 밥을 같이 먹고 같은 말을 나누는 것이 습관적으로 반복될 때 우정의 그물망은 생겨나는 것이다.
코로나의 의미와 죽음
선생님이 돌아가신 직후 나온 <녹색평론> 173호에는 코로나 시즌을 겪으며 선생님이 남긴 마지막 일지가 있다. 12개의 단상에는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코로나로 모든 모임이 중단되고 집에만 칩거하면서 느낀 선생님의 감상이 담겨 있다. 선생님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서울의 거리나, '자가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코로나의 상황들이 상당히 어색하고 기이하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의 연원을 분석하면서 영어의 'society'가 사람간의 교류와 공유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 이 말은 결사(association)와도 연결된다고 지적하였다. 이 글에서 앞서 언급했던 공(共)의 영역인 코이노니아의 세계가 바로 '사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로 무너지는 것은 정치와 같은 공적 영역도 가정생활과 같은 사적 영역도 아닌 제3의 영역인 바로 우정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자율적으로 조직을 결성하고 서로 상호부조를 하던 다양한 협동조합 활동이나 사교활동 등이 코로나로 제일 먼저 빠르게 무너진 것이다.
마스크를 항시 착용함으로써 서로 같은 공기를 마시지 못하게 되고, 서로 떨어져 앉음으로써 같이 밥을 먹지 못하게 되며, 서로 만나지 않음으로써 사귀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지금의 코로나 상황이다. 이로 인해 어쩌면 의학적 안전이나 경제적 타격보다 더 큰 문제인 인간의 핵심적인 가치가 근원적으로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선생님을 엄습했던 것 같다. 심히 두려운 느낌을 갖게 되었다며 선생님은 "30년 전 <녹색평론>을 시작할 때, 나는 내가 예상하는 불길한 미래가 이런 식으로 전개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적으셨다.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신 건지 이 일지에는 죽음에 대한 단상도 담겨있다. 중년에 수술을 하신 뒤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산책길에 난 풀 조차도 함부로 밟고 싶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고백은 인간과 다른 생물체와의 공통점은 모두 죽는 존재라는 데 있다는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연민을 잘 보여준다. 인간이 제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 해도 다른 모든 미물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인 이상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의 눈으로 보면 아무 높낮이가 없는 모두가 공평한 존재들인 것이다.
이것은 선생님이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라며 아꼈던 일본작가 이시무레 미치코에 대한 단상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시무레의 덕성은 미나마타병을 다룬 <고해정토>뿐 아니라 길고양이에 대한 그녀의 생각에서도 드러나듯이 다른 존재의 생에 대한 예민한 감각에 있으며, 그로 인해 지상의 모든 연약하고 짓밟힌 생류(生類)들과 서로 호흡을 같이하며 기쁨과 슬픔을 같이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일지의 마지막 단상도 어김없이 같이 어울려 밥을 먹는 대동사상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선생님은 마음이 통하는 소수의 친근한 벗들과 밥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코로나로 인해 그런 사귐의 시공간이 사라진 것을 두렵게 생각하셨다. 평생 존경했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밥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길게 적은 것은 어쩌면 서로 어울려 밥을 같이 먹지 못한 채 각자 이방인으로 멀어지는 것이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라고 생각한 까닭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떠나면서 선생님과 나눴던 우정의 시간들은 추억이 되었다. 선생님은 지난 30년간 <녹색평론>을 발간하며 메마른 이 땅에 생태적 사유와 운동의 물꼬를 트셨는데, 나는 선생님의 한결같던 초인적인 힘도 바로 그분을 감싸 안고 있던 여러 우정의 그물망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코로나 위기 앞에서 선생님이 끝까지 그리워하며 지키고 싶었던 세계도 서로 공생공락하는 우정의 세계였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죽음 앞에서 애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제는 그런 우정의 세계가 소멸한 것 같은 슬픔 때문이다. 우정의 시간은 끝나고 각자도생으로 가는 생존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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