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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스토킹 신고하자 "그 정도면 한번 만나줘라"…여성폭력 5건 중 1건, 업무와 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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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스토킹 신고하자 "그 정도면 한번 만나줘라"…여성폭력 5건 중 1건, 업무와 얽혔다

한국여성의전화, 2024 일과 연관된 여성폭력 상담 통계 발표

성폭력, 스토킹 등 여성폭력 5건 중 1건은 피해자의 업무와 연관돼 벌어졌으며, 이해도 및 사회적 안전망 부족으로 일과 얽힌 여성 폭력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지난해 여성폭력 상담 중 일과 관련한 피해 유형을 분석한 결과를 밝혔다.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실제로 피해자가 여성폭력(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을 겪은 초기 상담 867건 중 일과 연관된 사례는 170건(19.6)으로 다섯 건 중 한 건 꼴이었다. 각 유형으로 분류해보면 성폭력 59.4%(101건), 스토킹 27.1%(46건), 가정폭력 15.3%(26건), 데이트폭력 12.9%(22건) 순이다.

일과 연관된 여성폭력 피해는 주로 피해자의 정보를 잘 알고 있거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피·가해자 관계를 보면 (전)배우자, (전)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 가족, 직장 관계자, 지인 등에 의한 피해가 전체 사례 중 93.5%를 차지했다. 모르는 사람의 경우, 피해자가 운영하는 가게나 일터에 찾아와 스토킹을 하는 경우 등이 포착됐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일터를 찾아오거나, 일터로 연락하거나, 일터에 해를 가하는 식으로 폭력을 저질렀다. 개인 사업장을 운영하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던 A 씨의 경우 남편이 '자기 말을 안 듣는다', '열심히 잘하는 꼴 보기 싫다'며 사업장을 부쉈다. A 씨는 동네에 소문이 날까 봐 두려워서 사업을 정리해야만 했다. 직장인 B 씨의 경우 장기간 가정폭력을 저지른 부모가 자신의 직장에 소포를 보내거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등의 스토킹으로 퇴사해야만 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폭력을 겪는 사례도 많다. 영업직으로 일하는 C 씨는 거래처 사장인 가해자가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구애하거나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했음에도 회사의 큰 프로젝트를 망칠 수 없다는 압박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고용주와 만나던 D 씨는 관계를 정리하려 하자 월급과 퇴직금을 받지 못했고, 가해자가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나쁜 소문을 내 이직이 쉽지 않았다.

▲4월 27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 주최로 "2025 대선, 여성폭력 해결! 나중은 없다!” 다이인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 상황을 직장에 신고해도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동네 술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E 씨는 사업장에 찾아온 애인에게 성희롱과 스토킹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를 사장에게 이야기하자 "남자친구도 손님 아니냐"며 가해자의 비위를 맞춰 영업장에 피해 가지 않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입사 동기에게 스토킹을 당한 F 씨도 직장 상사에게 "이 정도 되면 한번 만나줘라", "그런 거 가지고 사내 절차 이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외에서는 일과 여성 폭력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체계, 가해자 제재 조치를 마련하는 추세다. 호주, 필리핀,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서는 여성폭력 피해를 입을 경우 이에 대한 치료 및 상담, 수사·법적 절차 참여, 주거지 이전 등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급휴가 제도가 마련돼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에서는 2020년 성평등법 제정을 통해 공공기관, 대학, 지역의회 등 공공부문에서 여성폭력 피해를 경험하는 직원을 위한 제도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공개할 의무를 마련했다. 영국, 프랑스 등 해외의 각 기업에서도 내부 여성폭력 대응지침을 마련하고 핫라인 구축 및 피해 직원들에 대한 유연근무제, 근무지 변경 등을 제공하고 있다.

유엔 국제노동기구(ILO) 또한 2019년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협약'을 통해 모든 사람이 여성 폭력을 포함한 폭력과 괴롭힘이 없는 '일의 세계(A World of Work)'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명시했다. 정부와 고용주 등이 친밀한 관계 내 여성 폭력의 영향을 인식하며 대응하고 다룰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점도 주목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한국에도 가정폭력방지법, 여성폭력방지법 등에는 고용주가 여성폭력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면서도 "이 조항이 '일'과 연관된 여성 폭력 전체를 아우를리 만무하며, 이조차도 실현할 구체적인 정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터는 여성 폭력이 실제로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여성폭력을 겪고 있는 피해자에게는 가해자로부터 차단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며 "한국에서도 '일'과 여성폭력을 연결하여 사고하고, 여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일의 세계'를 마련해 나가는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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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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