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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매가 너 정도 되는 애가 뛰어야 쳐다보지" 일상 된 학교 안 외모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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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매가 너 정도 되는 애가 뛰어야 쳐다보지" 일상 된 학교 안 외모 평가

[우리에게 지혜복 교사가 필요하다②] 길 위의 스승, 지혜복 선생

이번 스승의 날에도 지혜복 교사는 거리에 있습니다. 지혜복 교사는 A 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 부당전보·부당해임·형사고발 철회를 위해 500일이 다 되도록 거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외면하고 있지만, 청소년과 학생과 말벌 동지와 양육자와 노동자들이 지혜복 교사와 맞잡은 손은 오늘도 굳셉니다. "우리에게 지혜복 선생님이 필요합니다"라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편집자.

"몸매가 너 정도 되는 애가 뛰어야 그나마 쳐다보지."

수년 전 남녀공학 중학교에서 기간제 체육교사가 체육대회 계주를 뛰는 여학생에게 한 이야기다. 이 체육교사는 위 발언과 별개 문제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지며 해고됐다. 위 학생 몸매 발언은 해고의 원인이 된 문제가 발생한 뒤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한 조각일 뿐이다.

이는 한 교사의 문제였지만, 학부모들은 몇몇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 사안 문제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어떤 여학생과 남학생이 교제를 시작했는데 이를 알게 된 학교 교사들은 남학생에게는 "야, 축하한다. 잘해봐라"라고 말하고 여학생에게는 "00랑 사귄다며? 몸가짐 잘해라.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 하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말에 남교사, 여교사의 구분은 없었다.

남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높아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일까? 만약 반대의 경우였다면 어땠을까? 반대의 경우였더라도 남학생에게 몸조심하라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 하라고 말했을까? 여학생의 학부모는 교사들의 차별대우에 가슴을 쳤다.

"마스크 왜 벗었어? (얼굴 위를 손바닥으로 휘저으며) 넌 못생겼으니까 마스크 쓴 게 낫다.“

탈 코로나 시기, 남학생이 별로 친분이 있지도 않은 여학생에게 던진 말이다. 말을 들은 여학생은 안 그래도 여러 문제로 학교 적응이 어려워 어렵게 학교를 나오던 중이었고, 좀 더 나아져 용기를 내어 다른 아이들처럼 마스크를 벗고 등교했더니 이런 말은 들은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은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사과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 다시 무너진 여학생은 한동안 등교하지 못했고 여학생의 엄마는 나에게 눈물을 보이며 이야기했다.

ⓒfreepik

종종 다른 학생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온 이 남학생은 기간제 여교사에게까지 심한 발언을 했다. 수업 중 "선생님, 이빨이 노래요. 담배 피우세요?" "남자 친구랑 어디까지 갔어요?" 보통의 학생들이라면 하지 않을 법한 발언들이다.

20대의 기간제 여교사는 다른 학생들이 있는 열린 공간, 그것도 교실에서 모욕을 받고 상당한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고, 함께 있던 아이들도 충격을 받았다. 교권침해로 절차를 밟았을 법하지만, 운동꿈나무의 길을 걷고 있는 남학생의 진로에 문제가 될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연예인과 운동선수에게 도덕적 잣대가 더 중요한 상황임을 알기에 기록이 남지 않도록 했을 수도 있다.

당사자의 부모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이 이야기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것도 비교적 학교폭력 건수가 적고,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중학교에서 말이다. 두 자녀를 같은 학교에 보내며 지금껏 특별한 사건 없이 평화롭게 지내던 나로서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학교는 사회의 각종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녀공학이 아이들의 발달에 긍정적이라고 주변에 권유할 자신이 없어졌다.

학교 안에서도 외모에 대한 집착은 과거에 비해 더욱 심해졌다. 유튜브, 인스타와 같은 매체를 따라 학교 안에서 얼평, 몸평은 일상이 되었다. 외모에 대해 민감해지는 사춘기 중학생은 이를 필터 없이 문화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상대방에겐 모멸감을 주는 폭력이 되는지 모른 채 말이다.

무리를 지은 동성의 학생들은 앞을 걸어가는 이성의 학생에게 들리도록 특정 신체를 언급하며 어디는 어떻고, 저기는 어떻고, 얼굴은 어떻고 평가한다. 그 평가는 학생들 사이를 넘어 교사에게까지, 그것도 기간제 20대 여선생에게만 향한 것을 보면, 누가 약한 사람인지 직감으로 아는 듯하다.

외모를 평가하는 학교 문화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여학생이 있었다. 코로나 시기 근처의 산을 올라 사진을 전체 카톡방에 올리는 과제가 있었는데, 반드시 마스크를 벗고 사진을 찍어 올리라는 규칙이 부여됐다. 여학생은 외모를 평가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거나 선생님의 개인 카톡으로 보내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의견이 유난스러웠던 걸까? 비난받았다고 느껴서일까? 복도에 무리 지어 서 있는 남학생들은 난데없이 꼴 보기 싫다고 말하며 지나가는 여학생을 발로 툭 찼다. 이후 남학생들이 모여 있으면 불안한 마음에 다른 길을 선택해 빙 둘러서 갔다고 한다.

물론, 여학생들 또한 다수가 되면 반대의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 여학생은 졸업 후에도 그냥 순응하며 지낼 걸, 그냥 그때 부당함을 말하지 말 걸, 괜히 말했다며 후회하며 자신을 찌르고 있다.

▲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한공주>(이수진 감독, 2013)의 한 장면. ⓒ리(里)공동체 영화사

사회의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2024년 글로벌 성별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성격차지수(Gender Gap)'는 전체 146개국 중 94위다. 그런데, 이 수치에 대해 젊은 남성들은 상대적 격차를 나타내는 지수로 한국의 여성인권이 절대적으로 낮다고 할 수 없고, 평가항목 중 고등교육 이수기간의 경우 남성은 군복무기간이 있어 재학기간이 길어져 불평등한 듯한 왜곡이 생겼다며 반발한다. 성평등이 좋으면 내전으로 인해 남성인구가 없어 여성들이 일해야 하는 르완다로 가라고 한다.

젊은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혐오 단어가 됐다. 이제 20살이 된 나의 큰 아이(아들)만 해도 반감이 크다. 그들도 너무나 안타깝다. 군 복무에 대한 압박감도 상당할 것이고, 초등 저학년부터 조용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는 강요를 받으며 본래의 모습을 존중받지 못한 것도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서로를 통해 배울 텐데, 화면을 통해 실시되는 성교육만으로는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아직 과거의 젠더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학교도 문제다. 30년 전 어떤 남녀공학 중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을 성적으로 자극한다는 이유로 여학생들이 젖은 머리로 학교를 등교하지 못하게 하는 교칙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들으면 헛웃음이 나오는 말이다. 과거는 과거대로의 문화와 감수성이 있는 것이기에 지금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그런 만큼 지금 문화와 감수성에 과거의 잣대를 들이대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중학교에서는 학교폭력 담당 교사가 성 사안에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들에게 '남자애들이 그럴 수 있지, 너희들이 그렇게 잘못한 게 아닌데 쟤네들(여학생)이 예민해서 문제다. 단지 평소 맘에 안 드는 학생을 지목해 진술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한 일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최소한 입 밖으로는 내뱉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와 남학생들을 분노하게 해 여학생들을 적대시하게 했고, 성 사안을 고발한 교사의 지도를 무시하는 등 상당한 2차 가해가 일어나도록 불을 지폈다.

처음에는 그 학교폭력 담당 교사 개인의 문제라 생각했지만, 학부모들이 이야기하는 성 사안 이야기를 들으며 학교 전반적인 문화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안하게, 사건사고를 만들지 않으려는 학교의 경향도 한몫했다. 물론, 이것은 사회의 문제가 학교 안에서 일부 드러난 것이고 학생과 선생님 모두 오롯이 겪어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지혜복 교사ⓒA학교 성폭력사안·교과운영부조리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철회를 위한 공대위

이런 문화 속에서 문제를 끄집어내어 공식화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아니라면 시작부터 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부당한 성 사안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공론화한 용기 있는 선생님은 어떻게 됐을까? 작년부터 교육청 앞 차갑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1년이 넘게 투쟁하고 있는 선생님이 바로 그 결말이다.

지 선생님은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를 무심히 넘기지 않고 공식화해 해결하려 애썼다. 하지만 학교 조직에 부딪히고, 집단화된 남학생들의 멸시도 받고, 결국 학교장의 탄압으로 전보됐다.

그런데도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싸우는가? 젠더 갈등을 학교 교육을 통해 해결하고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본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나였다면) 부당함을 견디지 못하고 몸과 마음에 병들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함께 투쟁하는 사람들과 함께 끊임없이 자기 몸을 부수며 짱돌을 던지고 있다.

누가 아이들의 미래 삶을 걱정하고 길을 밝히며,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하는가?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물론 존중받아야 마땅하겠지만, 큰 의미에서 아이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라 생각한다. 학교 밖으로 밀려난 것으로 스승의 자격까지 박탈된 건 아니다.

품격이란 미래에 이루어질 소망을 품고 지치거나 좌절 없이 미래의 가치를 지금의 삶에 실현하는 것이라는 책 내용이 생각난다. (지혜문학, 김학철, 21세기북스, 2024) 우리 아이들의 미래 삶의 가치를 품고 교육하기 위해 애쓰며, 지금 이곳에서 실현하고 있음이 교육이며, 그들은 품격 있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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