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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에 불응할 용기가 수많은 '우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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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에 불응할 용기가 수많은 '우리'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지혜복 교사가 필요하다④] 우리에겐 더 많은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

이번 스승의 날에도 지혜복 교사는 거리에 있습니다. 지혜복 교사는 A 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 부당전보·부당해임·형사고발 철회를 위해 500일이 다 되도록 거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외면하고 있지만, 청소년과 학생과 말벌 동지와 양육자와 노동자들이 지혜복 교사와 맞잡은 손은 오늘도 굳셉니다. "우리에게 지혜복 선생님이 필요합니다"라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편집자.

지난 2월28일 오전, 경찰은 'A학교 성폭력 사안,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와 지혜복 교사를 포함한 시민연대자 23명을 연행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희망텐트 농성투쟁을 하던 이들이 공공기관인 교육청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 이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일부 언론은 연행 과정을 원색적으로 보도하며 불시에,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경찰의 연행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지난 1일, 서울 종로경찰서가 이들 23명에 대해 퇴거불응 등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학교 안 성폭력 문화를 문제 제기한 학생들, 그들을 위해 투쟁했던 지 교사, 학교 밖에서 그에 대한 부당해임에 맞서는 시민들. 이들의 연대가 확장될 때마다 공권력은 여지없이 개입한다.

▲지혜복 교사와 연대자들ⓒ전병철(비주류사진관)

낯설어서 반갑고 소중한 존재

언론에서 따돌림이나 학생 간의 성폭력 문화가 마치 이전에는 없었던 일인 양 유난을 떠는 모습을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학교 현장은 밝고 활기차며 정의롭고 윤리적인 공간이라는 무심한 허구가 학내 문제를 은폐하고 축소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기저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 안에서 소수자에 대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보고 방관하는 법,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놀이문화로 여기는 남학생의 언행에 상처 입지 않은 양 쿨하게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 법, 교사의 수업 내용과 무관한 성차별 발언과 성희롱에 대항할 말도 힘도 없어 그저 불쾌한 기분만 쌓아가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섬처럼 홀로 남은 책상에 앉아 꾸역꾸역 급식을 먹는 동안에도, 남자아이들이 치마를 들춰 분노와 수치심에 두리번거릴 때에도, 내 어린 시절에 새겨진 그 어떤 고통스러운 장면 속에 '선생님'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서울시교육청 앞 희망텐트 농성장에 모인 연대자들이 저마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지 교사에게 반가움을 표하고, 왜 어린 나에겐 그와 같은 존재가 없었는지 씁쓸함을 토로했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다만 어른이 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왜 내겐 그런 선생님이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씁쓸함보다 대립과 경쟁이 심화되는 교육 현장의 연쇄구조 속에서 '선생님'이란 존재를 기대하기란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지 교사의 존재는 나의 지난 경험 속에 없었던 존재이기에 더욱 반갑고, 우리 사회에 드물기에 더욱 소중하다.

A 학교 피해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이 학내 문화와 연결되어 있음을 지 교사에게 전했고, 지 교사는 이들의 피해 경험이 학내 폭력문화에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해온 공동체적 문제임을 학교 측에 전하고자 노력했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신고자의 정보가 유출돼 피해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당하고, 남녀학생들의 관계회복을 위한 명랑운동회 개최를 주관하는 등 학교 측의 부적절한 대응을 지켜보며, 제대로 된 해결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에 공익제보도 했다.

하지만 A학교와 교육청은 조력자이자 학내 구성원이자 교사로서의 의무를 다하고자 했던 그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 교사를 갑작스레 타 학교로 발령낸 것이다. 지 교사가 이에 불응해 출근을 거부하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자 서울시교육청은 직장 이탈 및 복귀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 교사를 해임한다.

이후 부당전보와 부당해임에 불응하는 지 교사와 연대하는 이들이 함께하기에 이르렀다. 부정의가 확장될수록 이에 불응하는 연대도 확장됐다. 단 한 명의 교사에 불과한, 지 교사의 복직은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규탄 기자회견 Ⓒ A학교 성폭력 사안,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

지혜복 교사에게 연대한다는 것

"신자유주의 자유경쟁과 개인주의의 만남은 '학교폭력예방법'에서 '법'만 남고 '교육'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동체적 해결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교실에서 싸움(폭행)이 벌어져도 방관하는 학생이 많다. 학생 간 폭력은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직접 관련된 학생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 개인의 성향이나 가정환경이 다양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만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견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고, 비판적 사고와 소통은 상황 인식과 창의적 문제 해결에 필수적이다. 인류의 역사는 창의적 문제 해결 과정에서 폭력과 차별, 배제보다 협력과 배려의 민주주의가 탁월하다는 것을 확인해 왔다.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학교에서 학생 간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다면, 학생들이 비약적으로 발달을 이룰 수 있는 교육 기회의 장이 열린 것이다." (안전하게 다툴 권리를 빼앗겼다, 김성보, <오늘의교육>, 85호)

피해자가 공동체 안에서 겪은 성희롱, 성폭력을 '문제'화하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시작은 개인적 경험에서 촉발됐을지 몰라도, 그 피해를 '인정'받는 과정은 공동체적 경험으로서 적극적으로 해석돼야 한다. 이는 피해자의 몫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성하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과정은 그동안에 자연스럽게 답습해온 폭력을 일상의 시간 속에서 매 순간 의도적으로 인지하고 반성할 것을 요구한다. 공동체는 이때 느끼게 되는 부자연스러움, 불편함을 회피하기 위해 피해 경험이 공동체가 아닌 당사자에게 고립되도록, 사인(私人) 간의 갈등으로 축소하며 피해자의 말하기를 의심하거나 가해자에 대해 형식적인 징계를 내려 사건을 서둘러 종결한다.

이때 피해자는 더 많은 피해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을 배우고,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타인과의 의사소통은 어떻게 해야 상호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학습한다. 우리는 살면서 거치게 될 다양한 공간과 상황 속에서 이 과정을 반복한다. 지 교사의 복직 투쟁에 함께한다는 건 이 학습의 연쇄 고리를 끊고, 성폭력에 침묵할 것을, 피해자에게 고립될 것을, 조력자를 배제할 것을 가르쳐 온 사회에저항하는 "불응의 연대"이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지혜복 교사ⓒA학교 성폭력사안·교과운영부조리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철회를 위한 공대위

우리에겐 더 많은 페미니스트 ○○이(가) 필요하다

"(조직의) 수장이신 분이 좀 깨어있는 분이면 좀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데 그조차 이상하면 끝이더라고요. 결국 퇴사할 확률이 너무 높고, 혹은 다른 부처로 이제 밀려난다든가 그래서 그런 친구들이 저한테 자꾸 도움을 요청을 해요. 그 뒤에서 이거 어떻게 해야 돼? 뭐 찾아봐야 돼? 이러면 답을 해주는데, 끝이 좋지가 않은 거에요. 그러니까 일은 잘 해결이 됐는데 이 친구들의 자리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못 받으니까. 좀 괜히 그냥 나서지 말라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꼭 남아요. 근데 아마 그 친구는 나섰을 거고 저도 도왔을 거예요.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근데 좀 씁쓸해요." (2024년 <'페미니즘 사상검증', 지울 수 없는 여성 노동자의 존재> 사업 인터뷰 사례 중)

지난해 여름, 일터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 노동자의 사례를 모으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중 페미니즘과 관련한 활동을 업으로 하고 있어 주변으로부터 조언해달라는 얘길 많이 듣는다는 인터뷰이가 있었다. 그는 피해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성평등한 관점을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던 고충 처리를 담당했던 친구부터 직장 동료로서 조력하고자 했던 친구들까지 조직 내 성폭력문화에 저항하는 '현장의 페미니스트'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또 그로 인해 조직에 실망한 채로 퇴사하거나 불합리한 인사조치를 당하는 경우들을 보며 안타깝고 씁쓸했는지 복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2017년 시민단체들은 '페미니즘 교육'을 진행한다는 이유로 한 초등학교 교사에게 온·오프라인상에서 인신공격이 계속 가해지는 상황을 막고자 공동 기자회견을 열며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이 외침은 8년이 지난 현재에도 예외 없이 유효하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백래시를 거치며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은 다시금 낙인이 됐고 교육부는 교육현장에서 성평등 도서를 전량 폐기하는 등 후퇴를 거듭하고 있지만, 현장의 페미니스트들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이제는 "말벌 동지"라 불리며 광장으로, 거리로, 첨탑으로, 교육청 앞으로 끈질기게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지금, 다시금 외쳐본다.

"우리에겐 더 많은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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