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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문재인이 홀대했던 문화, 이재명이 주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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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문재인이 홀대했던 문화, 이재명이 주목한 이유

[정희준의 어퍼컷] '먹사니즘'과 문화를 결합시키려면…

지난 1년여 기간 문화 관련 토론회를 가보면 분위기가 딱 두 부류다. 하나는 K팝의 전지구적 대폭발과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찬양하는, 희망과 자부심 넘쳐흐르는 분위기. 다른 하나는 창작 예술인들의 변하지 않는 고달픔과 정부의 지원을 호소하는 안쓰러운 분위기. 한쪽은 '국뽕' 가득한데 다른 한쪽은 애처롭기만 하다. 이게 한국문화의 현주소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렸던 한 토론회에서 록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예술인들의 서글픈 처지를 토로하며 2008년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한 영화 <원스>를 언급한다. 자신의 곡을 음반으로 내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던 주인공은 결국 기타를 들고 은행에 가 지점장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대출을 받는다. 신대철은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장면을 말하며 동시에 우리나라 예술 정책의 불합리한 편중성을 꼬집는다.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데 왜 대중음악은 그러한 기관이 없는지.

문화 양극화: K컬처의 전지구적 성공 vs. 문화·예술계의 고달픈 현실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연초 국회연설부터 문화를 연이어 강조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핵심 정책 6개 분야에 문화가 AI, 바이오 등과 함께 선정됐다. 문화산업을 발판으로 그의 국정 목표인 '잘사니즘'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됐던 이 후보의 우클릭 행보나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라는 주장만큼이나 파격적이다. 왜? 이전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문화를 '매출증대,' '일자리,' '경제성장'과 연결시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 민주당 정부는 문화를 홀대했다. 선거 때면 유명 작가들, 영화인들의 지지를 얻고 이들과 사진 찍기를 즐겨했을 뿐 국정의 중점 과제로 삼지는 않았다.

역대 청와대 비서실 구성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문화정책을 담당해 온 교육문화수석비서관실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폐지됐다. 이명박 정부가 다시 살려 박근혜 정부로 이어졌는데 문재인 정부가 또다시 폐지했다. 운동권 출신 진보주의자들에게 문화란 대학 시절 집회 때 선두에서 풍악을 울리던 풍물패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케이크 위 체리? 필요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은.

사실 문화·예술계의 열악한 현실은 바뀔 기미가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문화, 예술, 체육, 관광 분야 토론회를 가보면 거의 동일한 목소리가 반복되는데 놀랍게도 노무현 정부 당시 토론회의 주제, 내용과 동일하다. 복지, 기본권, 지원금, 예술·스포츠 강사 예산, 창작 공간 등. 20년이 지나도록 똑같은 아젠다를 가지고 토론한다. '여기 모인 이들은 지금도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K팝의 전지구적 성공과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한국 문화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거대한 착각이다.

직업이 보이지 않는 산업?

문화 분야는 수요와 공급의 격차가 매우 커서 적정 수준의 생태계 조성이 어렵다. 예를 들어 미술, (실용)음악, 체육, 무용, 문예창작, 연극영화, 관광 학과들이 매년 엄청나게 많은 졸업생을 배출한다. 그중 졸업 후 자신의 전공으로 진출해 창작활동이나 직업생활을 이어가는 이가 얼마나 될까. 절반? 천만에! 10분의 1 수준이라 보면 된다. 그나마 체육학과와 (디자인 전공) 미술학과 졸업생들이 그 비율을 견인하고 있는데 그마저 대부분 프리랜서다.

영화가 문화분야에서 가장 '잘 나간다'고 알려졌지만 과거 한 영진위원장은 "영화과 졸업생 중 얼마나 영화계에 진출하냐"는 나의 질문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없어요"라며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졸업 후 영화에 뛰어드는 졸업생은 서울 소재 극소수 영화과 출신뿐이다. 또 요즘 각광 받는 산업으로 부상한 관광은 사실은 저임금, 단기직의 가장 대표적 산업분야로 그 임금 구조는 사실상 착취다. 메이저 대학 관광학과 졸업생일수록 오히려 관광 분야를 외면한다. 무용학과처럼 '벛꽃 피는 순서대로 폐과'되지 않으면 차라리 다행이다.

공공영역으로 가보자. 수요와 공급 사이 불균형이 심하니 문화시설들은 온통 적자다. 원래 공공시설은 적자를 발생하더라도 운영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문화시설 적자가 가장 심각하다. 2021년 조사(송윤정, 나라살림브리핑 208호)에 따르면 2020년 문화시설, 체육시설, 복지시설, 기타시설 등 전국 지자체 공공시설 882개 중 791곳이 적자였는데 적자 규모(-2.7조원)에서나, 수익률(38.2%)에서나 최악은 문화시설이었다.

융복합 문화 스타트업 창업 지원하고 민간 역할 더 커져야

이러한 황폐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문화에 '잘사니즘'이 접목되려면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문화가 '지원의 대상'이라는 수동적 인식에서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플랫폼'이라는 인식으로의 전환이다. 다수의 예술인들은 문화를 돈벌이의 대상으로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그러나 대전환의 시대다. 경제, 고용, 일자리, 기술 발달과 괴리된 영역은 '지속가능한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불가능하다.

둘째, 그래서 문화는 '융복합'을 지향해야 한다. 최근 관광의 트랜드인 도시관광의 핵심은 미술관과 박물관이다. FC바르세로나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여행을 간다. 2019년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해 '글로벌 대박'을 쳤던 홍보영상 <범 내려온다>도 무용과 음악, 전통과 현대, 그리고 패션과 유튜브라는 테크놀로지의 융합이었다. 이제 문화는 빅데이터 기반 스마트 테크놀로지의 뒷받침 없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순수 및 전통예술은 지속적 지원을 유지하되 문화계 전반은 융복합으로 시너지를 추구해야 한다.

셋째, 문화는 그 지역의 경제활성화와 연결되어야 한다. 이재명 후보는 관광을 딱 집어 지역경제 활성화와 연결시켰다. 인구 감소, 노령화, 저출산 등 지방 소멸이라는 전방위적 위협에 직면한 지방의 유일한 탈출구가 관광이다. 기업도 공장도 가지 않는 지방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라도 가야 그 동네 자영업, 서비스업이 살 수 있다. '먹사니즘'의 실현이다. 노인밖에 없는데 거기다 대고 예술교육 강조해봐야 쇠귀에 경읽기다.

융복합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넷째, 정부 정책도 밥 떠먹여 주는 식의 지원 정책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깨우치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핵심 연결고리는 창업이다. 2019년 관광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지역관광기업지원센터가 출범했는데 다양한 기획 및 기술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기발한 관광서비스에서부터 사진, 해양레저, 웹디자인, 앱개발 그리고 무장애 관광까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시각장애인 대상 관광프로그램도 있다. 정부가 공간 지원, 행정 지원만 해주면 젊은 스타트업, 벤처기업들이 알아서 다 한다.

문화 분야 대전환이 가능하려면 다섯째, K컬처 등 대중문화 뿐 아니라 순수 창작 예술에서도 민간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이 분야는 사회적 수요가 매우 낮고, 따라서 예술시장이 매우 협소하며, 그래서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순수 창작 예술도 트렌드가 반영된 소통의 공간이 되어야 하고 레저, 오락, 관광과 만나야 한다. 결국 참여자들이 재미를 경험해야 하고 고객이 되어 구매행위로 연결되어야 한다. 창업과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문화와 예술이 공공재이긴 하지만 '재미없는 공공재'는 결국 버림받는다.

위와 같은 시도를 '상업화'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판적으로 대하는 이들이 있다. 일례로 '천만 영화'를 노리는 대형 제작사들이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한국 영화를 질적으로 후퇴시켰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CJ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지낸 길종철 한양대 교수는 천만 영화가 꾸준히 나와줘야 투자자가 시장을 떠나지 않고, 그 덕에 예술 영화나 저예산 영화도 지원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수익이 있고 투자가 일어나야 '다양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화, 혁신적이어야

정부의 지원(금)만 바라보는 오래된 관성과 절연해야 한다. 정부의 스타트업 정책은 '망할 기업은 빨리, 그러나 안전하게 망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혁신의 근원에는 '실패'가 있다"면서 "아마존은 가장 실패하기에 좋은 장소여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문화도 그런 '장소'가 되어야 한다. 문화·예술이야말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도전적인 DNA가 흐르는 분야 아닐까.

문화 전반이 Hibrid(잡종), Mixed(혼합), Fusion(융합), Complex(복합)의 경연장이 되어야 한다. 장르 간 벽이 무너지고, 예술과 관광이 만나고, 첨단 테크놀로지와 함께 성장하면서 창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직업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산업이고 경제를 말할 수 있겠는가. 특히 문화·예술인도 먹고 살아야 하지만 지역 주민에게도 이롭고 즐거운 문화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의 20년은 지난 20년의 반복이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골목골목 경청투어:국토종주편'에 나선 7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K-콘텐츠 산업 진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제균 감독, 이 후보, 김은숙 작가, 박해영 작가, 정주리 감독.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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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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