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비(非)법조인을 대법관으로 임용할 수 있게 하고 대법관을 100명으로 증원하는 등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공식 철회한다고 밝혔다. '사법부 장악 시도'라는 보수진영 공세가 거세지자 앞서 이재명 후보가 직접 나서 "불필요한 논쟁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화한 데 이어서다.
대선 막판 양측 지지층이 결집하는 가운데, 민주당의 '사법부 때리기'에 우려를 갖고 있는 중도층 표심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26일 "선대위는 박범계 의원이 제출한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 법안, 장경태 의원이 제출한 대법관 100명 확대 법안을 철회하기로 결정하고 해당 의원들에게 지시했다"고 대언론 공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혔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은 대법관 임용 자격에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하며 법률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을 추가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또 장경태 의원은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100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민의힘 사법독립수호·독재저지투쟁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비법조인 임명 법안'을 겨냥해 "'이재명 방탄 법원, 민주당용 어용재판소'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법치주의 삼권분립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위험한 시도"라며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근간인 사법부가 위기 앞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도 지난 14일 열린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법관 수만 증원한다면 국민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같은 논란이 계속되자 이재명 후보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그런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가 정확한 제 입장"이라며 "대법관 증원은 법원 내에서도 대법관 당사자들 외에는 대체적으로 원하던 현안이지만 지금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면 해야 할 일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선을 그은바 있다. 이어 "제가 명확하게 선거 캠프에 지시 내린 게 '사법 문제, 더 이상 논란하지(만들지) 마라'다"며 "단기적으로 선거 문제도 있지만 민생 문제나 더 급한 일이 훨씬 더 많다. 역량이 분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제가 선대위에 명확히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4일 경기 부천 유세 일정 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개별 의원들의 개별적 입법 제안에 불과하며, 민주당이나 제 입장은 전혀 아니"라며 "비법조인·비법률가에게 대법관 자격을 주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의원들의 법안에 대해 "섣부르다 생각한다"며 "신중하게 논의를 거쳐서 하면 좋겠다. 당내에 그런 문제에 자중하라고 오늘 오전에 지시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이 나라의 운명을 걸고 판단하는 시점인데 불필요하게 그런 논쟁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이같은 최근 발언과 민주당의 법안 철회 발표는 중도층 민심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최근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당내 강경 기조를 일부 조정하며 외연 확장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사전투표를 3일 앞둔 이날, 민주당 선대위 지도부도 역시 '로키'(low-key) 기조를 거듭 강조했다. 윤여준 상임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거칠어지고 각종 비난과 거짓, 흑색선전이 난무할 텐데 그럴수록 우리는 더 낮고 겸허한 자세로 역사와 국민 앞에 서자"며 "사전투표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정권교체 열망에 대한 국민의 뜻을 받들어 더 겸손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저들이 보수 통합을 얘기할 때 우리는 국민 대통합을 얘기하자"며 "저들의 명분 없는 정치공학 게임에 연연하지 말자"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명분 없는 단일화 꼼수로는 비전 없이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며 "오직 이번 대선의 역사적 의미와 주어진 책임을 되새기며 정권교체를 향해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김부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역시 "마지막 일주일 남짓 남았는데 정말 국민들의 절박한 소리에 대해서 우리는 겸손하게 그분들에게 호소하고, 자세를 끝까지 낮추는 것이 선거 이후에도 대한민국 공동체를 분열하지 않고 통합시키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두 수고했지만 최수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길 호소드린다"고 했다.
이날 발표된 이 후보의 외교안보정책 공약에서도 중도·보수층에 소구력을 가지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이 후보는 "이재명의 실용외교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다"며 "불법계엄으로 훼손된 한미동맹의 신뢰기반을 복원하고,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또 "한미일 협력도 견고히 하겠다"며 그는 "일본은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고 규정하고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아 과거사 ·영토 문제는 원칙적으로, 사회 ·문화 ·경제 영역은 전향적·미래지향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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