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시기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회의 관계, 사람과 신의 관계 등 인간사회를 둘러싼 거의 모든 현상과 인식이 변화했다. 이 시기 바뀐 경제, 사회, 국제관계를 파악하는 건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리고 이에 더해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더 바뀌었다. 사람과 동물의 관계다.
책 <18세기의 동물>(고연희·김수진 외 지음·문학동네 펴냄·264쪽)은 산업화가 태동해 동서양에서 도시화가 진행되고 정치·사회적 변화 또한 활발했던 18세기에 동물과 인간 사이 관계 변화를 다룬다. '쓸모 없다'는 평가를 받던 일부 견종이 사랑 받는 반려동물로 자리를 바꾸는 과정부터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코끼리·낙타 등 이국의 동물을 대하는 동아시아인 태도의 변화, 말 그대로 '전설적 존재'인 동양의 용을 표현하고자 한 서양인들의 고군분투 등을 전문가의 시각으로 엮었다. 한국 및 세계의 18세기를 탐구하는 인문학자 모임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연구자 16명이 각자의 전문 분야를 충실히 활용해 저술했다.
동서양 교류기에 낯선 동물들과의 만남을 그린 내용들이 눈길을 끈다. 이 시기 서양 권력자들은 신화 속 존재인 동양 용을 과시를 위해 재현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것도 동양풍 도자기에 말이다. 16세기까지 백자를 안정적으로 제작하던 곳은 중국과 조선 정도였지만 동서양 교역이 활발해진 끝에 18세기에 이르러 유럽에서도 백자 제작 기술을 확보한다. 18세기 초 독일 마이센에선 중국과 일본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은 '동양풍' 자기가 제작되기 시작했는데 이곳의 장인들은 왕실의 난감한 주문을 받게 된다.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알지 못하는 '동양의 용'을 백자에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동양에서 용은 제왕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존재지만 유럽 전설 속 용은 사악하고 흉측한 동물이다. 어려운 과제에 직면한 장인들이 자기에 새긴 용은 어색한 비례를 가진 파충류에 가까웠다. 책은 동양 용이 이 시기 유럽에서 권위가 탈각된 채 "동양의 문화를 소유한다는 의미를 담은 장식 소재"로 소비됐고 "권력자의 잔을 장식하는 작은 애완동물"처럼 묘사됐다고 설명한다. 이 작아진 용이 "곧 만나게 될 19세기 세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고"한다는 것이다.
1800년대에 이르러 낙타를 요모조모 관찰할 수 있게 된 일본인들의 태도 변화도 흥미롭다. 17~18세기 일본과의 안정적 교역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보낸 선물엔 수백 종 동물이 포함돼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낙타였다. 1646년 일본에 처음 들어온 낙타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18세기 후반 일본에서 난학으로 불린 서양 학문에 대한 관심이 늘며 낙타의 구체적 형태가 그려진 그림이 등장한다. 19세기엔 쇼군이 선물로 들어온 낙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대중에 공개되며 셀 수 없이 많은 기록이 남기도 했다. 낯선 이국의 동물이 보고와 지식의 대상을 거쳐 대중의 볼거리가 된 것이다. 대중은 책으로만 본 낙타와 실제로 본 낙타의 차이점도 곧바로 지적했다고 한다. 책은 당시 "낙타는 단순한 외래 동물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변해가는 시대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존재"였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 조선의 코끼리 기록에서도 당대 지식인들의 인식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조선에서 코끼리는 불교적 상징, 제국의 위엄을 나타내는 그림 속 존재였고 16세기 명나라에서 코끼리를 실제로 본 사행원들도 '모양이 기이하고 크다' 정도로 표현한 데 그쳤다. 하지만 17세기에 이르자 코끼리의 외양이 자세히 묘사되기 시작했고 18세기 들어서는 신체 치수와 비례를 포함한 세밀한 기록이 시작됐다. 관찰이 쌓이자 '그림으로 배운 코끼리'에 대한 정보 수정도 이뤄졌다. 코끼리가 "황제의 의례 공간을 구성하는 낯선 장식물, 곧 '기이한 모습'을 한 배경적 존재"에서 "꼭 보아야 할 장관이자 분석과 고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책은 이는 "조선 사신들의 대청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단순한 기록 기법 차이가 아니"라 "청 문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시선의 변화"가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18세기는 서양에서 지금은 반려동물로 불리는 애완동물(펫·pet) 개념이 생겨난 시기이기도 하다. 개를 비롯한 특정 동물이 "가족의 구성원으로 집안에 살고 이름을 부여받으며 식재료에서 제외"되기 시작한 것이다. 16세기 말까지만 해도 개는 '사냥개', '감시견' 그리고 '쓸모없는 개'로 분류됐다. 특히 스패니얼과 퍼그는 전자의 '일하는 개'와 대비되는 대표적 '쓸모없는' 견종이었지만 18세기 들어 위상이 달라진다. 스패니얼은 귀족 여성 '무릎 위의 개(랩도그·lapdog)'를 넘어 치마 뒤쪽까지 올라 앉게 됐는데, 이 시기 여성들이 부풀린 치마폭을 자랑하기 위해 풍성한 뒤쪽 치마 위에 스패니얼을 앉힌 채 외출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스패니얼을 '패션 아이템'으로 이용한 셈이다. 이 시기 스패니얼은 여성과 친밀한 스킨십을 나누며 침대 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퍼그 또한 랩도그로 사랑 받으며 두 견종은 19세기로 넘어가면 장식용 도자기에도 꾸준히 등장하게 됐다. 18세기 후반 이후 그려진 초상화엔 반려견이 함께 등장하는데 개가 "패션 아이템이나 사치"에서 "모성과 가족애를 담은 존재"로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펫 개념 등장은 새로운 문제 또한 일으켰는데 19세기 '도그쇼(dog show)'가 성행하면서 인간 취향에 맞게 개 품종 및 이상적 외모와 크기가 규정되게 됐다. 이 기준에 부합하고자 개의 귀나 꼬리를 자르는 등의 일이 벌어졌고 '잡종'과 '순수 혈통'을 구분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책엔 이 밖에도 우리 조상들이 고양이를 사랑했던 기록, 수수한 암꿩이 조선 화가들에게 갑자기 사랑을 받게 된 이유, 유럽 포경 산업이 부상하고 저무는 과정 등 근대화 시기를 다룬 다른 역사책에서 찾기 어려운 동물 중심 미시사가 기록돼 있다. 저자는 동물의 고통에 대한 고찰과 함께 '사유할 수 없는' 동물과 인간을 구분짓는 경계가 한층 강화된 이 시기의 동물들이 " 여러모로 인간과 새로운 국면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며 이 동물들이 "대개 야생에 머물기보다는 인간이 문명권으로 들어와 인간의 지식을 넓혀주고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게 상당한 역할을 행사"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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