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최근 3일간 무인기(드론) 900대를 동원한 대규모 공습을 벌이자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거리 무기 제한 해제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완전히 미쳤다"며 분개해 제재나 우크라이나 지원 등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 <AP> 통신 등을 보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26일(이하 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열린 공영 WDR 방송 주최 포럼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무기엔 더 이상 사거리 제한이 없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모두 마찬가지"라며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 군사 기지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는 불가능했지만 이제 가능하다"며 "우리는 이를 전문 용어로 장거리 공격이라고 부르며 (러시아) 내륙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공급 중"이라고 덧붙였다. 메르츠 총리는 독일을 포함해 어떤 나라가 어떤 단계에서 정책을 바꿨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메르츠 총리 발언에 따라 독일이 사거리 500km의 타우러스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할지 주목된다. 전임 올라프 숄츠 총리는 이 미사일 지원을 거부해 왔다. 메르츠 총리는 이날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를 보낼 것인지 명확히 밝히진 않았다. 그는 취임 직후인 이달 10일 독일의 우크라이나 지원 무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략적 모호성 유지를 위함이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미국 다음으로 큰 군사 지원국이다.
타우러스의 사거리는 이미 우크라이나에 들어간 장거리 미사일인 영국·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스톰섀도(스칼프), 미국 에이태큼스(ATACMS)보다 길다. 이들 미사일은 지난해 11월 러시아 브랸스크 및 쿠르스크 지역에 처음으로 사용됐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타우러스 배치 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깊숙한 곳에 위치한 물류 중심지를 교란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무기 허용이 "위험한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관련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 크렘린(대통령궁) 대변인은 "만일 이러한 결정이 실제로 이뤄졌다면 이는 우리의 정치적 (평화) 합의에 대한 열망과 완전히 반대된다"며 "매우 위험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타우러스가 우크라이나에 배치돼 러시아의 "주요 교통 기반시설"을 타격할 경우 독일의 우크라전 "직접" 개입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메르츠 총리의 발언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23일부터 26일 오전까지 3일간 900대 이상의 무인기(드론)와 미사일을 동원한 대규모 공습을 벌인 뒤에 나왔다. 특히 25일 밤 러시아의 무인기와 미사일 367대를 동원한 공습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어린이 3명을 포함해 최소 12명이 사망했다.
마크롱 "트럼프 분노, 행동으로 전환되길"…NYT "트럼프·푸틴 간 주고 받는 패턴일 뿐"
이번 러시아 공습은 지난주 푸틴 대통령과 통화 뒤 우크라전 중재에서 발을 빼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 트럼프 대통령의 격한 분노까지 불러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완전히 미쳤다. 그는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며 "병사들에 대해서만 말하는 게 아니다. 아무 이유 없이 우크라이나 도시들이 미사일과 무인기에 공격 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나는 그(푸틴)가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원한다고 항상 말해 왔고 그게 옳다는 게 증명되고 있는 듯하다"며 "그러나 그(푸틴)가 그렇게 할 경우 러시아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은 "젤렌스키, 푸틴, 바이든(미국 전 대통령)의 것이지 '트럼프의 것'이 아니다"라며 "난 단지 이 크고 추악한 불을 끄는 걸 돕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러시아에 대한 실질적 제재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계속되고 평화 회담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좌절이 커짐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다만 은행 제재는 고려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취재진에 새 제재가 "확실히" 고려 대상이라고 밝히며 "그(푸틴)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베트남 방문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6일 관련해 취재진에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평화를 위한다는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번 "분노"가 "행동으로 전환되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잘 아는 사람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 협상에도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최후의 수단이 먹히지 않으면 손을 전부 떼고 물러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복수의 외신은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때때로 푸틴 대통령에 대해 불평했지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며 기대치를 낮췄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대한 대규모 공습 때도 "블라디미르, 멈춰"라며 저항감을 표시했지만 그것이 유럽의 새 대러 금융 제재에 동참하거나 우크라이나에 새 무기를 지원하는 것으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짚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지속적 살상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푸틴에 대단치 않은 대가조차 치르게 하려 하지 않는 전략적 공백" 상태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전문가 및 전직 정부 관료들이 이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익숙한 '패턴'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럽의 전쟁'이라며 물러나겠다는 신호를 보내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항복에 해당하는 익숙한 요구 사항을 제시하며 공격을 가속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충격을 표명하고 제재도 언급하지만 실제로 유럽의 새 제재에 동참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오면 번번이 물러난다는 것이다.
신문은 "통상 트럼프는 타국의 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관세든 제재든 경제적 처벌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데 열심이지만 러시아에 대해선 예외"라고 꼬집었다.
미 CNN 방송도 이번 사례를 포함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뒤 제재 위협을 포함해 여섯 차례나 푸틴 대통령에 대해 노골적 불만을 표현했지만, 러시아를 강경한 입장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한 상당한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어떤 실질적 징후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게시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나라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난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 멈추는 게 좋겠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또한 비판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주말 러시아 공습 강화에 대해 "미국의 침묵, 그리고 세계 다른 나라들의 침묵은 푸틴을 부추길 뿐"이라고 비판한 뒤다.
러시아 쪽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감정적 과부하"에 따른 것이라며 일축했다. 26일 페스코프 대변인은 관련해 협상이 "매우 중요한 순간"에 와 있어 "당연히 모든 측면에서 감정적 과부하와 감정적 반응이 동반된다"고 말했다.
유럽·우크라, 추가 제재 촉구…"러에 협상 마감일 지정해야"
미국이 동참할지 분명치 않은 가운데 유럽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촉구하고 있다. <AP>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26일 취재진에 러시아에 협상 시한을 제시하고 "마감일을 넘기면 제재 형태의 대규모 보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도 최근 러시아 공격이 "끔찍하기 그지없다"며 추가 제재 의향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주 EU는 러시아 원유 수출 제재를 회피를 돕는 '그림자 함대'를 겨냥한 추가 대러 제재에 합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26일 영상 연설을 통해 "미국, 유럽, 평화를 추구하는 전세계 모든 이들로부터 러시아에 대한 새롭고 강력한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지원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럽의 전후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계획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의지의 연합'을 주도하는 프랑스와 영국은 전후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 파병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보는 반면 독일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회의적 시각을 표출 중이라고 설명했다. 신문은 한 유럽 당국자가 "트럼프 도움 없이 (파병 계획은) 터무니없는데 그는 도와줄 의향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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