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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 도외시하는 산재 제도는 여성에게 불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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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 도외시하는 산재 제도는 여성에게 불리하다

[서리풀연구通] 직업보건 정책에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필요

여성 노동자는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여성 비중이 높은 직업군 자체가 구조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다. 간호, 요양, 사회복지 서비스, 승무원, 청소, 판매, 콜센터 등 이른바 '여성 직업'이라 불리는 직종은 숙련도와 책임 수준에 비해 낮은 임금체계를 고수해 왔다. 이는 단순한 개인 간 임금 격차를 넘어, 직무 가치 산정에서 '돌봄'과 '서비스' 영역을 생산성이 낮은 업무로 간주해온 역사적·제도적 편향의 결과다. 여성은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고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며, 여성 중심 산업과 직종은 경제 구조 속에서 지속적으로 낮은 지위를 부여받는다(☞관련기사: 몸보다 마음에 시퍼런 멍이 든다).

여성에게 불리한 임금 구조는 직무 내용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서비스 및 돌봄 영역은 대부분 고객, 환자, 이용자와의 긴밀한 대면 관계를 포함하며, 이 과정에서 감정노동은 핵심 역량으로 요구된다. 감정노동은 타인의 기분을 조절하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노동으로, 조직의 매출과 이미지 관리에 기여하지만 성과로 객관화되기 어렵고, 실패 비용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그 결과, 감정노동은 정서적 소진, 동기 저하, 만성 스트레스, 우울·불안 등 건강상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더불어 고객의 폭언, 성희롱 등 보이지 않는 위해는 제도적 보호 장치 없이 개인에게 감당을 요구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이러한 위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렵고 그 피해를 인정받거나 보상받는 것도 쉽지 않다.

이번에 소개할 연구는 "같은 직장, 같은 직급"에서도 성별에 따라 직업 유해 요인 노출 양상이 분명하게 다르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논문 바로가기: 동일 직업 내 직업적 위험 노출의 성별 차이). 남성 노동자는 소음, 진동, 무거운 장비, 화학물질, 분진, 연기 등 신체적·화학적 유해 요인에 더 많이 노출되었고, 여성 노동자는 고객 응대, 정서적 갈등, 감정 소모 등 심리사회적 유해 요인에 더 많이 노출되었다. 특히 사무·서비스직처럼 외견상 청결하고 안전해 보이는 일터에서도 업무 분장 방식이나 동일한 작업에서의 생리적 특성 차이로 인해 성별 간 노출 강도 차이가 재생산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산재보상제도는 주로 눈에 보이는 상해나 기능 상실에 초점을 맞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급성 신체 손상을 중심으로 설계된 이 제도는 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 감정노동, 심리사회적 스트레스, 만성 질병 등의 위험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산재 인정 기준 또한 작업량, 작업강도, 노출 농도와 같은 정량적 지표에 집중돼 있어, 감정노동이나 업무상 괴롭힘처럼 맥락적이고 정성적인 요소는 평가 대상에서 배제되기 쉽다. 결국 "신체 중심"으로 구성된 산재보상 체계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적 위험을 반영하지 못하고, 사고 이후 직업 복귀 과정에서 필요한 보상과 재활 자원을 적시에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면, 직업보건 정책 전반에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원칙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유해 요인 평가 도구 자체에 성별 감수성을 통합하여 신체적·화학적·심리사회적 위험을 포괄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 둘째, 감정노동이나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과도하게 전가하지 않도록 증거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 셋째, 업무 분장 및 작업 설계 단계에서 성별 균형을 고려하여 특정 성별에게 위험이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넷째, 고객 폭언·괴롭힘 등 제3자 리스크를 조직 차원에서 관리하고, 이를 산재 위험으로 공식 인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성 주류화는 단순히 여성 노동자를 위한 보호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모든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통합적으로 보장하고,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며, 결과적으로 성평등한 노동 환경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는 전략이다. 남녀 모두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조성하는 것은 단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지속가능한 노동'의 핵심 과제다.

* 서지 정보

Lee, G., Messing, K., Lee, W., Kim, J. H., Lee, H., & Kim, S. S. (2025). Gender differences in occupational hazard exposures within the same occupation: A nationally representative analysis in South Korea. 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 51(2):111–118.

▲ 서울 종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상담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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