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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DNA '국가산업문화유산제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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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DNA '국가산업문화유산제도' 만들자

황태규 교수가 제안하는 새로운 대한민국 '8대전략'②

지난주 이 칼럼에서는 ‘민주문화유산’을 조명하며, 대한민국이 어떻게 시민의 힘으로 역사를 움직여왔는지를 살펴보았다. 동학에서 촛불까지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서사는 대한민국을 ‘행동하는 시민의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이번 글에는 그 연속선상에서, 또 하나의 국가적 정체성 축이자 우리가 세계와 미래세대에게 증명해야 할 또 다른 유산, 바로 ‘산업문화유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정신적 토대를 형성했다면, 산업은 대한민국을 세계 속에 우뚝 세운 실천의 기반이었다. 이제 우리는 산업문명 강국으로서의 DNA를 명확히 설명하고 기록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해답은 바로 ‘국가산업문화유산제도’의 도입에 있다.

고려의 기록, 서양보다 이른 3T 산업문명의 기원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실용화한 국가였다. '직지심체요절'은 구텐베르크보다 수십 년 앞섰으며 고려지(고려에서 생산한 질 좋은 종이)는 중국 왕실이 기록을 위해 수입할 만큼 고품질을 자랑했다.

우리는 이 기록기술의 원형을 단순히 박물관의 유물이 아닌, 금속·제지·잉크·출판 등 복합 산업의 뿌리로 인식해야 한다. 특히 금속활자는 출판 정보산업의 핵심기술로 오늘날 한국 IT산업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고려청자 역시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었다. 세계 최초의 상감기법과 독보적인 비색 유약은 고려를 도자 문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송·원나라 귀족들이 열광했고,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고려청자는 오늘날 디자인 산업의 선구이며, 문화기술(CT)의 원형이라 볼 수 있다.

고려인삼은 동아시아는 물론, 17세기부터 유럽까지 전파된 건강식품의 원조였다. 단순한 약초를 넘어 무역과 외교, 의료와 재정에까지 연결되는 핵심 산업으로 기능했고, ‘Koryo Ginseng’이라는 브랜드는 고려라는 국호와 함께 세계에 각인되었다. 이는 분명 바이오산업(BT)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즉, 고려는 오늘날 세계가 추구하는 IT(Information Technology), BT(Bio Technology), CT(Culture Technology) 산업군을 이미 구현한 문명국가였으며, 이처럼 고도화된 산업 DNA가 오늘날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려시대의 산업유산들은 현재 대부분 지역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 소규모로 관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청자는 부안과 강진에서 각각 청자박물관을 중심으로, 금속활자는 청주에서 금속활자박물관을 중심으로 보존되고 있지만, 이는 단지 지역문화자산 수준의 운영에 그치고 있다. 관리와 연구, 전시, 교육, 홍보 등에서 국가 차원의 시스템과 예산, 인력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그 문화적·산업적 가치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고려시대 산업유산 또한 ‘국가산업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야 하며, 국립 기관 또는 국가단위 유산 관리체계 내에서 통합적으로 보호·활용되어야 한다. 지역에서 시작된 노력이 전국적·국제적 수준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근현대의 기억, 산업화의 자산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은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포항의 철강, 울산의 자동차, 구미의 전자, 대구의 섬유산업은 단지 경제적 성취에 그치지 않고, 국가적 집념과 기술 독립의 상징이었다.

기술의 핵심 자산인 특허출원 건수를 보면, 2024년 기준 대한민국은 PCT(특허협력조약)를 통한 국제 특허 출원 건수 2만3851건으로, 중국(1위, 7만 160건), 미국(2위, 5만4087건), 일본(3위, 4만8397건)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전년 대비 7.1% 증가한 수치이며, 2020년 이후 세계 4위의 자리를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다. 이러한 핵심기술 기반 덕분에 조선, 전자 등 분야에서는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고, 대부분의 제조업 역시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산업화의 발자취는 체계적으로 보존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 산업전시관이나 기업박물관이 간헐적으로 운영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의 기억은 점차 사라지고, 산업 세대는 퇴장하고 있으며, 후세대는 산업의 기원을 알지 못한 채 성장하고 있다.

민주문화유산 다음은 산업문화유산이다

우리는 그동안 동학혁명, 3·1운동, 5·18민주화운동, 촛불혁명 등 민주문화유산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다져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에 더해 산업문화유산을 또 하나의 국가브랜드 축으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산업은 단지 경제적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세계를 감동시킨 문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산업문화유산은 낡은 공장을 단순히 보존하거나 리모델링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술, 사람, 기억, 구조, 철학을 아우르는 총체적 보존이어야 하며, 산업기술자들의 구술 기록, 설계도, 생산공정, 유통방식, 실패와 재도전의 스토리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지닌 산업 DNA를 말과 글, 공간과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다.

▲황태규 우석대학교 교수. ⓒ

특별법과 국립체계 구축…국가가 나서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가산업문화유산 지정 및 보존·활용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금속활자·청자·인삼 같은 고대산업과 철강·전자·자동차 등 현대산업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국가유산 체계를 갖춰야 한다.

예컨대, 포항은 철강산업문화도시, 울산은 자동차산업문화도시, 구미는 전자산업문화도시로 지정하고, 지역은 자율적으로 유산을 연구·활용하되 중앙정부는 국립급 예산과 시스템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특히 고려청자와 금속활자처럼 이미 지역에서 박물관 등을 통해 일정 수준 보존되고 있는 유산은, 국가산업문화유산으로 재분류하여 국립청자유산센터, 국립활자기술박물관 등으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산업사 박물관’, ‘산업기술기념공원’, ‘기술자 명예의 전당’ 같은 공간을 조성하고, 산업을 기억하는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의 미래 설계에도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실질적인 국가브랜드 전략이며, 문화기술 강국의 기반이 될 것이다.

국가산업문화유산은 곧 우리의 경쟁력이다

21세기의 산업 경쟁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내고 정체성으로 전환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산업문화유산은 바로 ‘기술과 기억의 스토리텔링’이다. 이야기 없는 기술은 설명되지 않고, 세계는 설명되지 않는 나라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한국은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고대부터 기술을 사랑했고, 기억을 존중했으며, 산업을 미래로 연결해왔다”고.

그 대답의 중심에 바로 ‘국가산업문화유산제도’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산업 DNA를 증명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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