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엿장수가 참 많았다. 엿장수 가위는 엿가락을 자르는 역할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단 맞추는 도구로 더 유명했다. 엿장수의 장단은 참으로 기가 막혔다. 장난삼아 퀴즈로 하는 얘기 중에 “엿장수는 하루에 장단을 몇 번이나 맞출까?” 하는 문제가 있었고, 답은 “엿장수 맘대로”였다. “엿장수 맘대로”라는 말의 의미는 ‘엿장수가 엿을 마음대로 늘이듯이 무슨 일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참으로 많이 쓰던 말이었다. 지금은 엿장수 보기가 힘들어서 ‘엿장수 맘대로’라는 말도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 문화에는 엿과 관련된 말들이 참으로 많다.
오늘은 엿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화문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엿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곡식을 엿기름으로 삭힌 뒤 자루에 넣어 짜낸 국물을 고아서 굳힌 음식’이라고 나타나 있다. 나무 위키에는 ‘곡식을 증기로 찐 고두밥을 엿기름(정확히는 녹말을 분해하는 아밀레이스 효소)에 삭힌 뒤에 자루에 넣고 당분을 짜낸 뒤 열을 식혀 굳혀 먹는 한과의 일종’이라고 되어 있다. 보통 물은 엿을 이(飴)라고 하고 된 엿은 당(餳)이라고 한다. 다시 국어사전을 보면 이당(飴餹 쌀이나 녹말 따위와 엿기름으로 만드는 달고 끈끈한 전통 식품), 갱엿(검붉은 빛깔의 엿), 율당(栗糖 :흰엿을 밤톨만하게 잘라 겉에 깨나 콩고물을 묻힌 엿), 생엿(생강즙을 넣어 만든 엿)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 있다. 울릉도 호박엿도 유명하다. 원래는 ‘후박나무진액으로 만드는 후박엿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호박엿으로 변질되었다. 설악산의 된엿(나무 젓가락에 감아 엿과자로 판매하는 엿)’, 제주도 특산으로 꿩고기가 들어간 ‘꿩엿’도 있다.
엿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유통된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호남성에 엿가게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전래하여 우리나라에 전해졌다는 학자도 있다. 우리의 문화 속에서 대중화된 유일한 과자가 바로 엿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영조 때의 기록을 보며 엿장수와 떡장수, 술장수로 인해 과거 시험장이 소란스러워졌다고 힐난하는 기록도 있다(나무 위키 참조). 엿과 관련된 용어들을 살펴 보자.
엿치기 : 게임의 일종으로 엿을 잘라 부러뜨린 뒤 구멍의 크기나 숫자를 겨루는 것
장행례에서 엿 선물 : 과거 시험보러 가는 유생에게 “꼭 붙어라”는 의미로 주는 행사
그러나 엿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가 도통 소통이 되지 않을 때, 혹은 골탕을 먹일 때 쓰는 말로 “엿 먹어라.”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엿이나 까 잡숴.”, “엿이나 쳐 드세요.”, “엿이나 마~~이 드이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설에 의하면 ‘엿’이라는 말이 남사당패의 은어로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것으로‘뽁’이라는 용어와 같이 쓰였다고 한다. 즉 ‘엿 먹어라’는 ‘남녀 간의 성적인 관계를 표현한 것으로, 여자한테 잘못 걸려서 된통 당하듯이 혼 좀 나 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다음 백과 어학사전 참조). 즉 먹는 엿에 빗댄 것이 아니라, 성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을 비웃는 전형적인 욕설이라는 말이다(이재윤, <우리말 1000가지>).
이러한 말을 통해 우리는 우리말의 융통성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인은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민족이다. 욕을 할 때도, 분노를 표출할 때도, 농담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엿 먹어라’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말이 지닌 풍부한 유머와 정서가 들어 있다.
조선 시대 과거를 보러 갈 때도 엿을 가지고 갔고, 요즘도 입시철이면 엿이 불티나게 팔린다. 엿은 합격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결혼, 폐백, 새해맞이, 제사 등에서도 쓰이는 기쁨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린이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묘약이다. 엿 먹으라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들리기는 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우리의 정서는 욕을 농담으로 보낼 줄 아는 지혜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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