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유럽의 실패를 똑똑히 보아라" 에너지 연구 학자의 경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유럽의 실패를 똑똑히 보아라" 에너지 연구 학자의 경고

[인터뷰] '에너지 재공영화' 연구자 베라 웨그만 영국 그리니치대학 국제공공노련연구소장

베라 웨그먼(Vera Weghmann) 영국 그리니치대학 국제공공노련연구소장은 "지난 25년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자유화' 정책은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유럽연합은 가스·전력산업을 부문별로 쪼개고 이를 민영화하는 정책을 1998년부터 적극 추진해 왔다. 기업 간 경쟁을 통해 에너지 가격 하락을 유도하고 효율성을 강화하겠단 계획이었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 "가격은 상승했고 에너지 빈곤층이 양산됐으며, 소수 에너지 기업의 '독점 구조'도 25년 전과 그대로"라고 웨그먼 소장은 말했다.

지난 18일 열린 공공재생에너지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웨그먼 소장은 이날 강연에서 '유럽 에너지 자유화의 실패와 공공적 대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프레시안>과 인터뷰한 웨그먼 소장은 "유럽의 민영화 모델은 절대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한국 시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 대안은 "공공이 통제하는 에너지"라고 강조했다.

"에너지 민영화, 가격 못 낮춰" 유럽연합도 안다

유럽연합의 전력 시스템은 1998년 전과 후로 나뉜다. 이전엔 발전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국가가 소유하고 통제했다면, 이후는 발전, 송전, 배전, 판매 등으로 각 부문을 분리하고 민간기업의 진출을 장려했다. 발전과 전력망(송전, 배전)을 인위적으로 분리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전력망은 기술적인 이유로 한 지역당 한 기업이 운영하는 편이나, 발전, 판매 부문은 여러 기업이 동시 진입해 경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들의 시장 진출은 국경을 넘나 든다.

웨그만 소장은 에너지 민영화의 역효과가 가장 선명히 드러난 곳으로 영국을 꼽았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 집권 이후 자유화의 선두 주자가 된 영국은 발전, 판매 부문을 넘어 전력망까지 완전히 민영화했다. 유럽에서 에너지 부문이 완전히 민영화된 곳은 영국과 포르투갈밖엔 없다. 포르투갈은 2011년 IMF 등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으로 강제로 송전망을 민영화해야 했다.

▲베라 웨그만 소자잉 6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재생에너지연대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해 강연을 하는 모습. ⓒ김선철(공공재생에너지연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에너지 빈곤이다. 웨그만 소장은 "내가 겨울에 난방을 할지, 음식을 조리할지를 양자택일해야 할 정도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한 문제를 말한다"며 "유럽의 에너지 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에어컨과 난방을 틀지 못해 여름과 겨울에 사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영국 에너지 관련 단체(NEA)는 한파가 심했던 2018년 겨울 1만5000여 명이 난방하지 못해 사망했다고 분석했다. 영국 로버러(Loughborough) 대학 사회정책연구센터는 2022년 투병하는 말기 환자 중 최소 12만8000명이 에너지 빈곤 상태에서 사망했고, 이 중 11만여 명이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이라고 밝혔다.

웨그만 소장은 "기업 간 경쟁이 도입되면 에너지 가격이 낮아진다는 건 허상이다"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이미 다수의 연구가 쌓여 있고 유럽연합 내부 공식 보고서로도 결론이 난 내용"이라고 했다. 실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3년 유럽연합 내 총인구의 약 10.6%가 자택 난방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보고했다. 2021년보다 1.5배로 증가했다. 국가별로 상이해, 남유럽과 동유럽은 15%를 넘는 국가도 적지 않다.

웨그만 소장은 프랑스를 대조 사례로 소개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민영화가 가장 덜 이뤄진 국가로 분류된다. 전력망과 발전의 대부분을 공기업 EDF(전력공사)가 운영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내 전기·가스 가격은 요동쳤다. 웨그만 소장은 "2022년 10월 기준, 유럽 국가들에서 가스 가격은 111%, 전기 요금은 69% 등으로 급등했으나 프랑스는 전기 요금 인상률을 4%로 통제했다"며 "2023년에도 15%로 요금 상한선을 그었다. 가스 요금은 침공 이전 수준으로 고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 자유화가 시장 독점을 없앨 거라고 했지만, 그것도 깨지지 않았다"며 "즉, 가격 인하도, 경쟁도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현재 유럽 에너지 시장을 지배하는 주요 기업은 과거의 공기업이었다"며 "과거에 '독점한다'고 얘기됐던 공기업이 지금은 민간 기업이 돼 여전히 '독점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에 따르면, 3대 전력 기업의 가정용 전기 시장점유율은 2022년 기준 평균 66% 정도다.

▲풍력 발전소 단지 풍경. ⓒ연합뉴스

"재생에너지 전환, 시장에 맡겨선 절대 못 이뤄"

그는 그럼에도 유럽 전반은 "에너지 민영화 체제 자체에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진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랜 역사와 관성 때문에 '에너지 시장'을 상수처럼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했다. 웨그만 소장은 "한쪽에선 '우리가 제대로 규제를 못 해서 그런 거니,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보조금 제도 때문에 우리가 '진짜 시장'을 못 가져 봐서 그렇다며 더 자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이 논의 구도가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웨그먼 소장은 이 틈새로 "'재공영화 물결'이 일고 있다"고 했다. 논의가 활발한 국가 중 하나가 독일이다. 연방제인 독일은 주별로 전력 부문 소유 체계가 다 다르다. 기후·에너지 등을 연구하는 단체 TNI에 따르면, 독일에서 2005~2017년간 에너지 인프라가 재공영화된 사례는 284건이다. 웨그만 소장은 이 중 함부르크 사례를 설명했다. 함부르크는 2013년 민간기업에 넘겨졌던 송전망을 주민투표를 통해 다시 주 공기업 소유로 바꿔냈다. 2019년엔 가스망도 100% 주 소유로 바꿨다.

배경엔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적 각성이 있었다. 먼저, 시민들은 민간기업에 맡겨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재생에너지는 이윤율이 원자력, 화력 발전소만큼 담보되지 않기에, 당시 함부르크 주 전력 시장을 지배한 민간 기업은 재생에너지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기후 위기 대응과 시민의 삶보다 이윤만 우선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기본 공공 서비스인 에너지 공급이 다국적 기업에 좌우돼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퍼졌다.

웨그만 소장은 "에너지 전환은 시장에 맡겨선 불가능하다는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허상'을 짚었다. "재생에너지는 오로지 국가의 보조금 정책을 통해서만 발전됐지, 단 한 번도 시장에 던져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발전차액제도'와 '의무인수계약'이 대표적이다. 발전차액제도는 쉽게 말해 실제 거래 가격이 정부가 정한 표준 비용보다 낮을 때 정부가 그 차액을 보전해 주는 제도다. 의무인수계약은 전력이 다 팔리든, 아니든 생산된 양에 대한 값은 다 지급해 주는 제도다. 둘 다 '손실이 발생하면 국가가 다 메꿔주는' 보험과 같다. 웨그만 소장이 공공 소유의 '공적' 재생에너지를 주장하는 이유다.

그는 "유럽의 에너지 민영화 정책은 실패한 게 맞고, 민간은 제대로 된, 장기적인 에너지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며 "모두가 접근가능하고 저렴한 에너지,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위해서도 공공 소유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 방향은 "반드시 '전체 계통'을 공공이 소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전, 송전, 배전, 판매 등으로 나뉜 부문 중 어떤 부문은 민간 기업들 소유에 두고, 어떤 부문은 공공 소유로 둬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는 현재 한국의 현황이기도 하다. 2003년 전력 민영화를 시작한 한국은 전력망(송전, 배전) 부문만 공기업(한국전력)이 지배하고, 발전 부문은 민영화됐다. 역대 정부는 전력망과 판매 부문도 시장에 개방하려고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웨그먼 소장은 반면교사로 영국 노팅엄의 '로빈훗 에너지'(Robin Hood Energy)를 소개했다. 노팅엄은 영국에서도 에너지 빈곤 문제가 심각한 지역이다. 로빈훗 에너지가 설립된 2015년 전엔 6개 에너지 대기업이 전력 요금을 대폭 인상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팅엄시가 비영리 에너지 공기업을 설립했고 실제 전기 요금도 낮출 수 있었으나, 2020년 재정난으로 종료됐다. 이유는 '배전' 부문만 소유했기 때문이었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사고, 송전망을 쓰는 망 사용료도 따로 내야 하는 구조 속에서 결국 파산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웨그만 소장은 "민간 기업이 시장에 한 번 들어오면 제거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시장에 진출한 후 추후 정부 정책으로 손실을 보면 다 소송으로 다툴 것"이라며 "한번 시작된 민영화는 멈추기가 어렵다"고 경고했다. 그는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이 지구 위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 절실하다는 점에 동감한다"며 "한국의 공공재생에너지 입법운동을 진심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2022년 9월 24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인근에 3만50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기후정의행진'을 진행했다. 환경단체 뿐만 아니라 농민,노동자, 장애인 등 400여 개가 넘는 단체가 행진에 참여했다. ⓒ프레시안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손가영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