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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수당, 영국은 빵도 주고 웃음도 주더라…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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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수당, 영국은 빵도 주고 웃음도 주더라…한국은?

[김성수의 영국이야기] 실업수당, 영국 vs. 한국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학교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때,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내가 느끼는 영국과 한국정부의 실업수당과 실업자 지원정책에 대해 나누고 싶다. (필자 주)

지난 35년 동안 영국과 한국의 실업수당 제도를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밟으며 체험한 나는, 한마디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국은 실업자에게 빵도 주고, 웃음도 준다. 한국은 일단 서류부터 내라 한다."

'괜찮아, 네 잘못 아냐' 라는 말, 돈으로 해주는 나라

영국에서 일하다가 잘리면 다음날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 친구들과 펍(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실직을 자축(응?)하는 것.

둘, 근처 'Jobcentre Plus'(구직소)에 가서 실업수당 신청하는 것.

영국의 실업수당은 Universal Credit(통합복지수당)과 JSA(Job Seeker's Allowance, 구직수당)로 나뉘는데, 이름부터 다정하다. "네가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야" 라는 위로의 기운이 뚝뚝 흐른다. 상담사는 미안하단 눈빛을 보내고, 커피까지 내주며 이력서나 고쳐보자고 한다.

구직수당(JSA)는 25세 이상인 경우 주당 약 84.80파운드(약 16만원). 한 달이면 68만 원 정도다. "이걸로 뭘 하라고?" 싶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소유자가 아니면 집세지원금(Housing Benefit), 과 급식비 지원까지 있다. 또한 영국은 전국민 무상의료, 무상교육과 자녀가 있는 경우 아동수당(Child Benefit)을 받는다.

또한 각자의 형편에 따라 구직수당 이나 집세지원금 대신 아예 통합복지수당(Universal Credit)을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통합복지수당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독신 성인은 연간 최대 1만4753 파운드(한화 약 2천7백만 원), 부부 또는 자녀가 있는 한부모는 연간 최대 2만2020(한화 약 4천91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마치 정부가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느낌

신청과정도 의외로 간단하다. 온라인으로 지원하고, 구직소(Job Centre Plus)에서 상담 받으면 끝이다. 물론 격주로 구직활동 증명을 해야 하지만, 그것도 "지난 주에 구직사이트 5곳 봤어요" 라고 하면 "수고했어요!(Good job!)"하며 스탬프를 찍어준다. 영국답게 매우 젠틀하다.

가장 인상적인 건 태도다. 공무원들이 실업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쯧쯧, 세금 축내는군" 이라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라는 자세다. 35년 살면서 느낀 건데, 영국은 실업을 '개인의 실패' 가 아닌 '사회적 현상' 으로 본다.

"실직했으니 당연히 정부가 챙겨야지" 라는 인식이다. 마치 '잠시 쉼표 찍는 중' 이라는 여유를 사회전체가 공유하는 느낌이다.

한국은 실직하면 먼저 눈치부터 본다

한국은 '고용보험' 이라는 이름부터 진지하다. 실업급여 금액은 이전 임금의 60%, 최대 월 266만 원까지 후한편이다. "역시 한국, 효율적이야!"

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18개월 이상 고용보험 납부, 비자발적 실직, 구직활동 의무. 마치 "실업급여 받을 자격이 있는지 먼저 증명해봐" 라고 하는 것 같다. 영국이 "일단 받고 보자" 라면, 한국은 "자격부터 확인하자" 다.

신청과정도 한국 답다. 서류가 산더미다. 이직확인서, 임금명세서, 통장사본, 구직신청서... 마치 학위 논문 쓰는 기분이다. 영국에서 온라인 클릭 몇 번으로 끝나던 일이, 한국에서는 하루 종일 관공서 돌아다니는 일이 된다.

무엇보다 눈치가 보인다. 실업급여 받는다고 하면 주변에서 "요즘 일자리가 없나?" "빨리 취업 해야지" 라는 시선이다. 한국에서 실업은 여전히 '부끄러운 일' 의 범주에 있다. 거기에 한국에선 실직 소식부터 가족회의 소집이다.

관공서에 가면 "왜 잘렸냐", "노력은 했냐" 는 질문이 줄줄이 쏟아진다. 자칫하면 실업자가 아니라 죄인이 된다.

영국은 '재충전', 한국은 '재기불능?'

영국의 실업자는 아침 9시, 동네 공원에서 개 산책 시키며 자연과 교감한다. 한국의 실업자는 새벽 5시, 구직 사이트에 '경력무관' 세 글자를 넣고 현실과 교감한다.

영국의 구직소(Jobcentre)는 이력서부터 면접까지 다 도와준다. 심지어 교육도 무료, 수당도 지급. 한마디로 "넘어졌으면, 일어나는 법도 같이 배우자" 는 방식이다.

반면 한국의 고용센터는, 일단 "자격요건 통과하셨나요?" 부터 묻는다. 직업훈련도 있지만 어딘가 '구제사업' 같은 느낌이 남아 있다. 실업은 여전히 '부끄러운 일' 이다.

한국 실업급여는 'K-드라마' 같다. 주인공은 고생 끝에 눈물 흘리며 수당을 받는다. 액수는 넉넉한 편이지만, 서류 심사와 눈치 싸움이 힘들다. 그래도 한국만의 따뜻함도 있다. 한국 지인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취업 상담, 심리 지원, 멘토링 프로그램 등 사람을 챙기려는 노력도 느껴진다고 한다.

'피쉬 앤 칩스'와 '비빔밥', 다른 맛, 다른 배려

영국과 한국의 실업정책은 마치 '피쉬 앤 칩스'와 '비빔밥' 같다.

영국은 느긋한 생선튀김처럼 기본적 안정감을 주고, 한국은 매콤한 고추장처럼 빠른 재기를 독려한다.

물론 완벽한 제도는 없다. 영국은 제도는 여유롭지만 장기 실직자에겐 느슨할 수 있고, 한국은 효율적이지만 인간적 따뜻함은 조금 부족하다.

"쉬어 가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실업자는 불가피하게 더 늘어날 것이다. AI, 자동화, 플랫폼 노동…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불안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일자리' 뿐 아니라 '사람을 지켜주는 제도' 다.

실직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직업이 없어도, 당신은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잠깐 쉬어 가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지금 실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영국의 여유와 한국의 따뜻함이 함께 닿기를 바란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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