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발전소는 멈춰도 우리의 삶은 멈출 수 없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발전소는 멈춰도 우리의 삶은 멈출 수 없다"

[초록發光] 석탄화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다큐 기록

지난 해 12월부터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발전노동자들의 삶과 전환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12월 폐쇄되는 태안화력발전소와 2026년 폐쇄에 들어가는 하동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와 녹색연합,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새알미디어가 공동제작을 맡았고 공공운수노조가 제작후원으로 참여했다.

촬영을 총괄하는 남태제 감독과 태안과 하동을 각각 이인섭, 전찬영 촬영감독이 맡아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살면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을 처음 만나 이야기 나눠 본다는 젊은 촬영감독은 "처음에는 이런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본 적이 없어서 좀 걱정이었는데 우리 동네 평범한 아저씨들이랑 똑같던데요? 그리고 노동조합 하면 막 투쟁 이런 것만 하는 줄 알았는데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눠 보니까 너무 다정하셔서 저 조금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분들과 친해지고 싶어요"라고 했다. 기자회견하고 집회하는 모습, 회의하고 토론회 하는 모습, 잠시 동료들과 수다를 나누는 모습, 담배 한 대 물고 생각에 빠진 모습, 촬영팀과 인터뷰 하는 것들이 차곡차곡 카메라에 담기고 있다.

발전소가 폐쇄되는 과정에서 특히 가장 불안한 위치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행동하고 전환의 주체가 되는지, 기후정의 시민사회와 함께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정의로운 전환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런 과정들이 담길 이 다큐멘터리는 향후 4년 동안 진행될 장기 프로젝트다. 절반은커녕 이제 시작단계인 시점에서 어떤 모습들을 긴 호흡으로 잘 담아낼지,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이 과정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또 참여하게 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이 많은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2025년 6월 2일, 고(故) 김충현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사고 였듯이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우리 역시 예견하지 못한 사고였다. 2018년 12월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가 죽은 현장에서 또 다시 그런 참사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사고 당일 남태제 감독이 급하게 태안으로 내려갔고 이후 감독들은 일주일에 며칠씩 태안과 서울을 오갔다. 대책위 구성과 빈소 마련, 사건조사와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과정, 태안과 서울에서의 기자회견과 추모집회, 동료들의 트라우마 상담치료와 같은 장면들이 카메라에 담겼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하다 숨진 재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충현 씨의 영결식이 18일 오전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엄수된 뒤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와 유족들이 김씨가 일하던 한전KPS 태안사업처를 행진하고 있다. 김충현 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께 태안화력 내 한전KPS 태안화력사업소 기계공작실에서 작업을 하다 공작기계에 끼이는 사고로 숨졌다. ⓒ연합뉴스

N년차 일하면서 N번째 회사가 바뀌었다

촬영을 하면서 우리가 만난 노동자들은 각자가 소속된 회사, 노동조합, 경력, 맡은 업무 파트가 달랐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1년 마다, 3년마다 재계약하는 경쟁 입찰이거나 수의계약 등 회사마다 계약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협력업체 비정규직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은 그러했다.

28년 경력을 가진 정비기술자이자 숙련노동자였던 김충현 노동자는 한국서부발전이 정비 업무를 외주화한 한전KPS의 2차 하청 업체인 한국파워O&M 소속이었다. 그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8번 회사가 바뀌었다. 소속회사는 다르지만 한전KPS의 2차 하청 업체 소속인 그의 동료는 16년 일하는 동안 15번 회사가 바뀌었다. 화력발전소는 아니지만, 이전에 인터뷰 했던 월성원자력발전소의 한전KPS 2차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역시 15년 일하는 동안 15번 회사가 바뀌었다고 했다.

고용은 승계되지만 언제나 고용불안의 현실에 놓여 있고 정규직 노동자와의 차별은 이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사망사고는 거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지난 5년 동안 5개 발전사와 협력업체에서 발생한 산재사망사고의 100%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들이 숙련노동자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더 위험한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가 만든, 회사 이익 때문에 무시되고 생략되는 작업 절차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만난 노동자들은 발전소의 정비 업무 대부분이 다단계 하청으로 외주화되어 있으며, 위험의 외주화가 노동자의 안전뿐 아니라 발전소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상시에는 모든 절차와 과정을 거쳐 작업하라고 원청사에서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입니다. 설비가 고장 나고 발전소를 정지해야 한다면, 원청사는 막대한 페널티를 물게 됩니다. 그러면 설비를 세워야 할 상황에서 규정과 절차가 일부 생략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원청사도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페널티와 제재가 두려워 빠르게 복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이건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해도, 빠른 작업을 종용하거나 부당한 지시가 있을 때도 있죠. 발전소가 모두 정규직으로만 운영된다면 이런 상황은 줄어들 텐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다 보니 회사로 치면 갑과 을의 관계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갑의 부당한 지시를 을이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_하동화력발전소 경상정비 노동자 K (2025년 4월)

"저희 회사가 1차 하청인데, 작업 지시는 원래 우리 회사 소장님이나 관리자에게 직접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원청이 있다 보니 원청 감독들이 현장에 나와 저희에게 직접 지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상당히 불합리하다고 느낍니다."_하동화력발전소 경상정비 노동자 Y (2025년 4월)

위험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절차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결국 설비를 멈춤으로써 발생하는 손해 때문에 규정과 절차가 무시되거나 생략되는 현실이 존재한다. '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사고 원인 역시, 작업 절차 미준수와 기본적인 위험요소 관리 부실, 작업을 위한 안전장치 미비, 2인 1조 근무 원칙 미준수 등이 지적됐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만든 근본 원인이 바로 위험의 외주화다. 외주화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발전소 현장에서의 사고 위험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예상 가능한 불행이 아닐까.

▲석탄발전노동자 다큐멘터리_"우리의 삶은 멈출 수 없다". ⓒ석탄발전노동자 다큐멘터리제작 홈페이지

보람과 자부심의 현장, 석탄화력발전소

'늘 가장 먼저 출근해 사무실을 정돈하고, 조용히 하루를 준비하던 사람', '작업에 있어 언제나 꼼꼼하고 절차를 철저히 지키던 숙련된 기술자', '책읽기를 좋아하고 다양한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계속 나아가기를 노력했던 사람', '다정하고 살뜰했던 동료' 동료들이 기억하는 故김충현 노동자와 같이 우리가 만난 석탄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그랬다.

"제가 현장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해 봤지만 기계가 문제가 생기면요, 항상 문제가 생겼던 게 생기지 않아요. 대부분 처음 겪는 일이거든요. 처음 겪는 일을 해보다 보면 상당히 난감할 때가 많아요. 어려운 과제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국산화가 좀 많이 되어 있지만 하동화력발전소 1~6호기는 다 외국산 자재를 쓰고 있거든요. 엄청 어려운 작업이 잘 되고 설비가 잘 돌아갔을 때 엄청난 보람을 느끼죠. 설비가 또 잘 돌아서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했다는 그게 제일 큰 보람인 거죠. 누구나 다 똑같겠지만 제가 맡은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에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어요."_ 하동화력발전소 경상정비 노동자 K (2025년 4월)

"잘 몰랐던 설비에 대해 알아가게 됐을 때, 결함이 생기면 그것도 알게 되고 후임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이 보람된 것도 있었고요. 대한민국의 전력을 공급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큰 자부심이라고 생각합니다."_하동화력발전소 경상정비 노동자 S (2025년 5월)

"발전소 현장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기계 정비를 마치고 시운전하고 기계가 잘 돌아갈 때 그때 참 보람을 느낀 느끼고 있습니다." _하동화력발전소 경상정비 노동자 C (2025년 4월)

"저희들 밖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든 지인들을 만나면 회사 이름을 이야기 하지 않고 화동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거든요. 저희들은 나름대로도 전력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박근혜 정부 때 하동화력이 블랙다운 근처까지 간 적이 한 번 있었어요. 블랙다운이 되면 어느 한 지역에 올 정전이 돼버리잖아요. 그걸 복구하는 데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서 저희들이 새벽까지 이틀간 철야 근무를 하고 발전소 안정화를 위해서 일했을 때 그때 뿌듯함을 많이 느끼죠." _하동화력발전소 경상정비 노동자 J (2025년 5월)

그들의 처지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공통점만큼이나, 어느 현장에서나 만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석탄화력발전소라는 공간은 외부에서 보면 그저 거대한 건물로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설비가 있고, 다양한 업무 파트가 있으며, 아무리 환경이 개선되었다 해도 여전히 열악한 노동 현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열악한 현장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었다. 발전소라는 거대한 현장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설명하고, 그 일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느끼는 뿌듯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노동자들의 눈빛은 빛났다.

모두의 전환을 위해, 노동자들이 나서서 시작하는 공공재생에너지 운동

"발전소 폐쇄 계획에 대해서 폐쇄가 된다는 걸 생각하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음주를 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라는 고민을 말하는 조합원들도 많고, 조합원들 다수가 아직 가족한테 이 문제를 털어 놓지 못하고 있어요." _하동화력발전소 경상정비 노동자 K (2025년 4월)

본격적인 폐쇄를 앞두고 현장 노동자들의 고민과 불안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아직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노동자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고용이나 전환 문제에 대해 정부, 원청사, 소속 회사 어디에서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 "발전소는 폐쇄되어도 노동자의 삶마저 폐쇄할 수는 없다"는 노동자들의 외침은 이제 구체적인 대안으로서 공공재생에너지 전환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위험과 불안을 감내하며 일해 온 노동자들이 이제 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정의로운 전환 2025 공동행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기본법' 제정을 목표로 5만 국민동의청원의 시작을 알렸다. 대표 청원인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 집행위원장은 "기후위기 대응도, 에너지 전환도, 에너지 문제도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다시 설계돼야 한다"며 "우리가 말하는 전환은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위험을 나누며, 모두가 함께 안전해질 수 있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공재생에너지는 공공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재생에너지 설비를 공적으로 소유하며,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전환의 방식"이라고 청원의 취지를 밝혔다.

27일부터 국민동의청원 페이지가 열렸고, 현재(7월 2일)까지 4800여 명이 참여했다. 오는 7월 27일까지 5만 명의 동의를 모아야 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공공재생에너지법은 단순히 석탄발전 노동자들의 전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포함해 누구도 공공재인 에너지로부터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위한 약속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연대다. 우리는 4년에 걸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환 과정을 기록하고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한다.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정의로운 전환이 노동자들의 안전과 권리,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 모두의 삶을 지켜낼 수 있도록 국민동의청원에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 발전소는 멈춰도, 우리의 삶은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청원 바로가기)

▲공공에너지법 국민동의청원 촉구 포스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