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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지역화폐'의 정책적 진화…그러나 '그 다음 단계'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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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지역화폐'의 정책적 진화…그러나 '그 다음 단계'가 보이지 않는다

황태규(우석대 미래융합대학 학장·전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

이재명 대통령은 지역경제 정책의 최전선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지도자였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일관되게 추진해 온 지역화폐 정책은 단순히 소비를 촉진하는 행정 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의 중앙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자본 분권 실험이자 지역금융 활성화를 향한 1단계 조치였다.

지역화폐는 지역 안에서 돈이 돌도록 유도함으로써 외부 유출을 막고, 지역 경제 내부에 잠재된 소비·유통 에너지를 복원하고자 한 정책적 선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직시해야 할 더 근본적인 현실이 있다.

자본이 지역 내에서 선순환되지 않으면 지역에서 발생한 소비, 예금, 투자 여력은 결국 서울로, 수도권의 대기업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역 금융기관에 맡긴 예금이 수도권 본사의 대기업에 대한 대출로 흘러가고 지역민이 간접 투자한 자금이 서울의 상장기업과 부동산 시장에 집중되는 구조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자본 왜곡 구조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지역은 항상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자본이 지역에 축적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역화폐는 바로 이 구조를 흔들고, 지역 안에 자본이 머무르게 하려는 ‘정치적 상상력의 이정표’였다.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균형발전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조개혁의 상징적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이 실험은 전국으로 확산되며 지역경제에서 금융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 이정표가 제시한 방향대로 나아가야 한다. 자본이 머물고, 축적되고, 다시 재투자되는 지역금융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2단계 전략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정부와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실천적 책임이다.

지역화폐가 지역경제의 혈류를 확인한 첫 번째 조치였다면, 이제는 그 혈류를 자본의 심장으로 연결할 제도 설계와 시스템 정비가 절실하다. 상징적 선언만으로는 실질적 변화를 이끌 수 없다. 이제는 핵심 동력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시점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책 현실은 여전히 그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에는 ‘지역금융 활성화’가 명시적 정책 항목으로 포함돼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분권과 균형발전 법제를 통합하면서 제정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이 항목이 빠졌다.

법적 근거 없는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나마 2024년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내에 ‘지방금융활성화 특별위원회’가 출범해 혁신도시 공공기관과 지역은행 간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진전이다. 이는 지역에서 분출되고 있는 자본 자립에 대한 요구가 다시 제도화 단계로 연결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분명하다. 국가 예산만으로는 지역의 경제를 구조적으로 살릴 수 없다. 매년 반복되는 중앙예산에 의존하는 사업 설계는 본질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역이 진정으로 자립하려면, 자체 자본을 활용해 필요한 사업을 스스로 기획·추진하고, 그 성과가 다시 지역 내부로 환류될 수 있는 내발적 자본 생태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력이 바로 지역금융 활성화이다.

지역 자본이 지역 안에서 회전하고 성장하는 구조가 없다면, 지방은 끝없이 예산확보 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지역금융 활성화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실질적인 기반이며 지금의 정책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전략적 고리다.

여기에 더해, 디지털 경제 환경에서의 자본 유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의 온라인·모바일 기반 디지털 소비 규모는 세계 5위에 달하며, 1인당 디지털 소비액은 세계 3위 수준이다. 지역 주민들 역시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구매가 일상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지역에서 발생한 소비 자본이 다시 외부로, 특히 수도권 플랫폼 기업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배달앱 플랫폼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로 지역 음식점이 조리하고 지역 배달원이 전달하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주문 결제 과정에서 발생한 금액의 약 20%는 수수료, 광고비 등의 명목으로 서울에 위치한 본사로 즉시 송금된다.

이처럼 생산, 소비, 유통의 전 과정을 지역민이 담당함에도 자본의 상당 부분이 수도권 플랫폼 기업으로 빠져나가는 현실은 구조적으로 불합리하며, 지역경제의 잠재력을 잠식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 실행 전략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두 갈래의 방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기존의 제도와 수단을 더욱 정교하게 설계하고 활용하여 자본의 선순환 구조를 복원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새로운 틀을 구축하여 지역이 혁신적 실험의 전위기지가 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먼저 '기존 제도를 재구성하는 실천 전략'을 살펴보자.

① 지방정부의 재정투자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승인을 기다리는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채권을 발행하고 지역 금융기관과 연계해 재정 투자를 직접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채 자율화와 국고 공동보증 제도 도입, 시민참여형 채권 모델 같은 제도적 수단이 필요하다.

②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된 금융지원 체계를 보다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전북의 농생명 산업, 강원의 헬스케어 산업, 전남의 해양바이오 산업처럼 지역마다 강점을 가진 산업이 존재하는 만큼, 지역 금융기관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해당 산업에 특화된 융자 및 보증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이를 정책금융기관이 보조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③ 국민연금과 산재보험 같은 공공연기금도 수익성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경제 기여 기능을 회복하도록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지역 기반 인프라, 중소기업 펀드 등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공공성과 수익성을 조화시킬 수 있다.

④ 시민이 주도하는 금융운동 역시 핵심 과제다. ‘로컬기업 주주되기’, ‘지역금융 시민펀드’, ‘지역공공배달앱’ 등과 같은 흐름은 제도적 지원과 결합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구조가 된다. 이러한 다양한 제도를 총체적으로 정비하고 실행하는 것이 기존 제도 재구성의 핵심이다.

다음으로는 '새로운 제도를 창출하는 혁신 전략'을 제안해 본다.

⑤ 지역을 선도형 금융정책의 시범 사업지로 지정해야 한다. 디지털 자산 기반 청년 보상이나 ESG 채권 같은 제도를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역에서 먼저 시범 적용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청년과 창의적 기업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을 창업과 실험의 공간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⑥ 대체 투자 시장에 대한 지역 기반 시도도 필요하다. 최근 대통령이 강조했듯, 한국은 부동산과 주식 외에 신뢰할 수 있는 대체 투자 수단이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예술품, 골동품, 비상장 주식, 토큰, 펀딩 등 다양한 투자 형태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초기 단계다. 이를 계기로 지역이 대체 투자 시장의 테스트 베드가 되어야 한다. 예컨대, 지역 예술품 조각 투자, 향토 식문화 기반 브랜드 IP, 건축자산 기반 리츠(REITs), 지역 유산 기반 NFT 등은 디지털 자산과 실물 자산이 결합된 미래형 모델로 주목받을 수 있다.

⑦ 마지막으로, 지역기업 중심의 제3 주식시장 도입도 고민해야 한다. 제도화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역 중소기업의 자본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 자산의 내재화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전되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제도 창출 전략은 단기적 실행보다 중장기적 혁신 과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황태규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장. ⓒ

필자가 제안하는 과제들은 깊은 연구와 정책적 검토를 거친 완결된 해법이라기보다는,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려는 거친 설계도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상력과 제안들이 하나의 출발점이 되어, 향후 보다 정밀한 연구와 사회적 논의, 그리고 실천 가능한 제도 설계와 실행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역경제 철학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을 지향해왔다.

지역화폐가 그 철학을 알리는 첫 이정표였다면, 이제는 지역금융활성화라는 이름의 핵심 동력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때다. 자본이 지역에서 돌고, 기업이 지역에서 자라며, 주민이 그 성과를 자산으로 체감할 수 있는 구조야말로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완성판이며 이재명 정부가 반드시 완수해야 할 다음 국가전략이다.

이제 상징을 넘어, 실질적 동력이 작동해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그 일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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