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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김정은, 적대적 두 국가 표방했지만…못이기는 척하고 남한에 호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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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세현 "김정은, 적대적 두 국가 표방했지만…못이기는 척하고 남한에 호응할 수 있다"

[정세현-박인규의 정세토크 시즌 2] 통일부 명칭 변경에 "이미 1991년에 국호 따로 썼다…북한 도망가는 '통일' 당분간 빼야"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추진하고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자 북한도 여기에 호응하며 접경지역에서의 확성기 방송이 중단됐다. 또 지난 9일 남북은 유엔군사령부를 통한 간접적 소통을 통해 북한행을 희망하는 어민들을 송환하는 절차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남북의 움직임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이재명 정부가 송환을 끝내고 나서 언론에 발표하는 것 보고 '이 정도면 믿을만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란하게 언론을 활용하지 않고, 유엔사를 통해 협의하고 일을 진행시켰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이처럼 이재명 정부가 북한의 자존심이나 체면을 구기지 않는 방식으로 조금씩 남북 화해·협력의 제스처를 취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록 2023년 '적대적 두 국가'를 표방했지만, 못이기는 척 하고 남한에 호응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이재명 대통령이 9.19 남북 군사분야합의도 복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는데, 9.19 합의 일부 효력 정지가 됐을 때 재임했던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은 본인은 계엄과 관련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계엄 선포를 위한 외환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밑자락은 깔아둔 것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비상계엄을 극복하고 새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이를 되돌릴 필요가 있다"며 북한도 내부 경제 때문에라도 9.19 합의의 복원을 원할 것 이라고 예측했다.

정 전 장관은 "우리는 9.19 합의를 평화를 지향하는 목적으로 추진했지만 북한은 한정된 자원을 군사 부문에 쓸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한 것 같다"며 "군사 부문에 자원을 투입하면 사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고 확대재생산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자원을 인민경제로 돌리면 확대재생산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북한은 군사분계선 주변의 긴장을 완화하는 판을 짜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이 북한의 진짜 목표였다면, 9.19 합의 복원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박인규 <프레시안> 고문은 "북한이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가 필요할 수는 있는데, 더 이상의 남북관계 진전은 당장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국제정세가 이전과 다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참전하기도 했고 북한이 남한의 영향력이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도 하니, 그 이상의 남북 간 직접 관계 개선은 어렵지 않나"라는 전망을 내놨다.

정 전 장관은 "민간이 정부보다 앞서서 남북관계 개선으로 가더라도 북한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남북 간 일대일이 아니라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지원하고 접촉하는 방식을 쓸 수도 있다"라며 "이렇게 북한을 안심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평화적 관계 구축 위해 당국 간 국장급 실무회담이라도 하자고 제안해볼 수 있다"라고 제안했다.

한편 미국이 관세와 방위비 분담금 등에서 동맹국인 한국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을 두고 박 고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이 몰락하고 있고 앞으로 미국 없는 세계 경제, 미군 없는 한반도를 상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한국은 미국에 의해 해방되고 나라가 유지돼 왔기 때문에 한미동맹이 나라 유지에 가장 긴요한 요인으로 인식돼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서 미국의 쇠퇴가 한반도의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는 기회라는 인식을 해야 할 필요도 있지 않나? 한미동맹이 흔들릴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구호로 사용하고 있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사실 지금 미국이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중국이 한국에 전승절 참석 요청을 한 것을 두고 "미국에 '너네가 우리에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올려달라고 하는데, 돈을 벌어야 올려줄 것 아니냐, 우리 경제가 어려워서 무역을 늘리고 경제 활성화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너네는 관세 장벽 쌓고 있지 않냐, 중국은 관세가 없으니 중국에서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냐' 라고 말하며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에 너희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중국이 초청하는 전승절에 참석하고 이후 시진핑 주석도 에이펙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해서 한중관계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외교에서는 '자국중심성'을 키워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담은 9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

박인규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이 중단됐고 전단 살포도 금지됐다. 동해와 서해에서 표류해 남한 당국에 의해 구조됐던 북한 어민들도 본인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북으로 송환됐다.

미국과는 관세 문제를 포함해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등 협상이 필요한 사안들이 아직 명확히 해결되진 않은 상황이다. 출범 이후 한 달 동안 이재명 정부의 대외 안보 정책에 대한 총평을 해보자면?

정세현 : 국민적 관심도로 보면 한미 간 관세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 국방비 증액 등이 주요 이슈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8월 1일(현지시간) 까지 상호 관세 부과 유예 조치를 연장한다고 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시간을 번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협상팀이 미국에서 그런대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조치를 해서 이렇게 된 것 같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방미는 한미 간 정상회담 날짜를 잡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위 실장이 미측에 조기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마코 루비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이 여기에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만약 조기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8월 1일로 예정된 관세 유예 조치가 더 연장될 수도 있어 보인다.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방위비 분담금을 현재보다 약 9배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고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5%를 사용하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을 한 데 모아 소위 '패키지 딜'로 협상하려면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부도 이에 따라 전략을 세웠을 것이라고 본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대미 특사로 결정한 것도 의미가 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보수 측 인사고 미국 공화당 쪽에 인맥이 있다고 하니,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김 특사, 위 실장 트리오가 잘 코디네이션하면 훌륭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인사 활용을 잘 하는 것 같다.

남북관계의 경우 새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 안 된 지난달 9일 통일부 대변인이 전단 살포 중단을 민간단체에 요청했다. 그리고 11일 대북 확성기 방송도 중단했는데 12일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면서 이에 호응하기도 했다. 아직 전직인 김영호 장관이 있긴 하지만,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조치를 시작한 셈이다.

2004년 6월 금강산에서 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이 열렸는데 그 때 북한은 확성기 방송을 꺼달라고 요청했다. 북한이 당시 요구가 매우 간절했는데, 확성기 방송도 결국 전기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24시간 전기가 돌아가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었다. 북한의 발전소 가동률이 낮은데, 일단 수력발전소는 겨울에는 쓰지 못했고, 러시아가 와서 만들어 준 발전소의 경우 수차의 톱니바퀴가 부러져서 이걸 고쳐줄 수 없느냐고 우리에게 이야기할 정도다. 즉 북한은 전기 사정이 열악해서 확성기 방송에 쓸 전기가 나오지 않으니, 제발 남쪽이 멈춰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NLL에서 남북 함정 간 충돌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무선 교신에 동의하면 확성기를 꺼주겠다고 했다.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 내부의 전기 사정까지 알고 조치한 것은 아니겠지만, 확성기 방송을 중지한 것은 일단 남북 간 긴장 요인을 하나씩 줄여 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첫 단추를 잘 꿴 것으로 본다. 실속 있게 잘했다고 생각한다.

▲ 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2월 16일 경기도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 옆에 대남방송 확성기가 보인다. ⓒ연합뉴스

9일에는 북한 주민 6명을 동해상에서 북으로 송환시켰다. 남북 간에는 남북 연락사무소 채널과 군 통신선, 유엔군사령부를 통한 통신 등 세 라인이 있는데, 남북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 채널 모두 북한이 받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이 유엔사와 통신은 하고 있으니 그 라인을 통해 연락해서 동해상에서 인원들을 넘겨준 것이다.

북한은 이재명 정부가 송환을 끝내고 나서 언론에 발표하는 것 보고 '이 정도면 믿을만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란하게 언론을 활용하지 않고, 유엔사를 통해 협의하고 일을 진행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재명 정부가 북한의 자존심이나 체면을 구기지 않는 방식으로 조금씩 남북 화해·협력의 제스처를 취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록 2023년 '적대적 두 국가'를 표방했지만, 못이기는 척 하고 남한에 호응할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9.19 남북 군사분야합의(이하 합의)도 복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는데 이 역시 올바른 방향으로 보인다. 2023년 11월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이 취임 이후 조치한 주요 사항 중 하나가 9.19 합의 1조 3항의 효력정지다.

해당 조항은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모든 기종들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으로, 이는 우리 측에 유리한 조항이기도 했다. 군사분계선에서 북한의 평양까지는 130km가 넘지만 서울은 30~40k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조항으로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 북부 지역의 군사적 긴장도 줄일 수 있었는데, 이를 신원식 장관이 깨버렸다.

신 장관은 본인은 계엄과 관련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계엄 선포를 위한 외환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밑자락은 깔아둔 것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내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고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비상계엄을 극복하고 새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이를 되돌릴 필요가 있다. 실제 이럴 경우 북한의 호응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경제난이 계속되고 있는데 2018년 당시 9.19 합의에 호응한 것은 적어도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어떻게든지 피해야만 군사부문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을 인민경제에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이 합의를 만들었다고 본다.

우리는 9.19 합의를 평화를 지향하는 목적으로 추진했지만 북한은 한정된 자원을 군사 부문에 쓸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한 것 같다. 사실 군사 부문에 자원을 투입하면 사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고 확대재생산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자원을 인민경제로 돌리면 확대재생산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북한은 군사분계선 주변의 긴장을 완화하는 판을 짜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진짜 의도와 김정은 정부의 진짜 의도는 달라도 어쨌든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결과였다. 물론 윤석열 정부는 국내 정치 때문에 이를 깨려고 했고.

한정된 자원을 인민 경제로 돌리려고 했던 것이 북한의 진짜 목표였다면, 이재명 정부가 9.19 합의 효력을 복원하자고 했을 때 북한이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북한은 지난해 1월부터 10년 동안 매년 20개 군(郡)에 지방산업기지를 건설한다는 이른바 '지방발전 20X10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 보도를 보면 정책 실현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2017년 6차 핵실험까지 진행했고 그 와중에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비롯해 많은 무기를 시험 발사하면서 지금 북한에 적용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만 16개다. 북한은 수출도, 수입도 잘 못하게 됐는데,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미국과 함께 G2인 중국도 눈치를 보고 있어 북한과 경제협력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인민경제가 어려워지는 가운데 정권을 유지해야 하는 김정은은 집권 이후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인민들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이를 통해 김정은에 대한 지지와 우상화를 끌어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자원을 인민 경제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9.19 합의 복원이 필요할 수 있다.

다만 북한이 헌법까지 고치면서 '적대적 두 국가'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북한에 "이제 협력적 두 국가로 가자"라고 쪼아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럴 때는 민간을 앞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선이후난(先易後難 : 쉬운 것부터 풀어간다), 선민후관(先民後官 : 당국간 대화보다 민간인 접촉부터 시작한다), 선경후정(先經後政 : 정치보다 경제적 접근을 먼저 추진한다), 선공후득(先供後得 : 먼저 주고 후에 받는다)의 원칙으로 일단 민간이 나서는 모양새를 만드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동북아의 냉전구조를 해체해서 북미 수교로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 때 정부가 앞장서기 보다는 1998년 현대가 금강산 사업을 하면서 민간부터 관계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현대가 금강산 사업을 앞세워 북한도 경제적 이익을 보도록 하고, 정부는 북한 주변의 국가들을 설득해서 북한을 어떻게 끌어낼지 이야기하는 등 노력을 하다 보니 2000년 3월 정상회담 제안에 이어 6월에는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다.

▲ 9일 통일부는 북한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북한 어민 6명을 동해상으로 송환했다. ⓒ통일부

박인규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직접 대화는 안했지만 행동 대 행동으로 사실상 소통을 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를 통해 남북 간 최소한의 신뢰 등이 나타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세현 : 북한의 내부적 고민을 파악하고 거기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문제를 풀어가려 한다면 북한도 신뢰를 가질 수 있다.

통일부와 국방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9.19 합의와 관련해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선제적으로 제안할 필요도 있다. 그 정도를 띄워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로 하여금 북한과 대화하도록 만드는 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박인규 : 9.19 합의 복원은 정부가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그 이외의 남북관계는 미국과 일본 등을 이용해 우회해서 접근한다는 구상인가?

정세현 : 그렇다. 9.19 합의를 복원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 남북 장관급 회담을 하기는 어렵다. 워싱턴과 도쿄를 돌아 평양으로 들어가자는 것이다.

박인규 : 북한 입장에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가 필요할 수는 있는데 그 이상의 남북관계 진전이 당장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제정세가 이전과 다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참전하기도 했고 북한이 남한의 영향력이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도 하니, 그 이상의 남북 간 직접 관계 개선은 어렵지 않나?

정세현 :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계속됐던 남북 교류 과정 속에 남한의 문화가 북한에 들어갔다. 북한에서 남한의 것들이 암암리에 유행하면서 북한 정권은 2020년 이후 이를 막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제정했다. 사회주의나 주체사상 등을 버리고 이상한 문화에 물들면 김정은 체제의 밑바탕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민간이 정부보다 앞서서 남북관계 개선으로 가더라도 북한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남북 간 일대일이 아니라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지원하고 접촉하는 방식을 쓸 수도 있다. 이렇게 북한을 안심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평화적 관계 구축 위해 당국 간 국장급 실무회담이라도 하자고 제안해볼 수 있다. 북한의 내부적 필요 때문에라도 남북관계를 평화·협력의 관계로 가져 가야할 필요가 있지 않냐, 긴장 완화시켜서 피차 국가 자원을 낭비하지 말자고 설득하며 안심시키는 것이다.

박인규 : 이런 와중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통일부의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세현 : 북한을 안심시키고 남북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기한 이후 통일을 연상시키는 단어와 구호들을 모두 없앴다. 이는 북한이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인데,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 명찰을 달고 북한에 다가가면 북한은 도망갈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해야 하지만 남북관계를 복원해 평화적 관계로 구축하려면 '명찰'은 바꿔야 한다. 그래서 남북관계부로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서독은 분단 초기에 동독과 관계를 다루는 부처를 '전독문제성'이라고 불렀다. 이는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조건 하에서 통일하겠다는 뜻이었다. 또 '적의 친구는 적'이라며 동독과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와는 수교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할슈타인' 원칙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 1969년 사민당이 집권해 동서독 기본조약을 맺으면서 동독을 국가로 인정했고 이후 '전독문제성'을 '내독관계성'으로 바꿨다.

우리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을 때 '남과 북은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지만 각자의 국호를 사용하면서 이미 두 국가를 공식화했다. 이후 나온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들(6.15, 10.4, 4.27, 9.19)에서도 국호를 그대로 썼다.

남북이 30년 이상 정식 국호를 쓰면서 두 국가로 살아온 역사가 있는데, 북한이 최근 들어 '적대적 두 국가'를 언급하니까 우리가 거기에 맞춰서 통일부 이름까지 바꾸고 따라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은 역사적 맥락으로 봤을 때 앞뒤가 틀린 것이다.

부처 이름을 바꾼다고 목적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과거 내무부는 행정안전부로 이름을 바꿨고, 체신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부처 이름이 바뀌었다. 이건 기술발달과 사회구조 변화 등 등 상황 변화에 따라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름 바꿨다고 목적이 달라졌나? 그렇지 않다. 부처 이름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헌법 이야기를 하는데 통일부 이름을 바꾼다고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어느 정도 내부 사정이 나아져서 남한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 때까지 '통일'이라는 이름을 당분간 빼자는 제안이다. 통일부 명찰 달고 나가면 북한이 도망갈 텐데, 그렇게 되면 우리가 북한을 상대할 수 없게 된다.

▲ 정부서울청사 본관에 위치한 통일부. ⓒ프레시안 자료사진

미국 요구하는 방위비 올려주기 위해서라도 중국 전승절 참석 필요해

박인규 : 미국과 관세 협상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예상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일단 미국이 영국과 중국, 베트남 등과는 협상을 마무리했고 그 다음이 한국과 일본이 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이 어떻게 협상을 할지가 이후의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정세현 : 미국은 일본, 한국과 무역 비중이 크다. 이 두 국가는 미국이 쉽게 다룰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와 상황이 좀 다르다. 2주 후에 상원격에 해당하는 참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에 일단 버티는 쪽으로 가야 국내 정치적으로 승산이 있다. 국내 정치 때문에 일본은 일단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우리는 이재명 정부가 새로 출범했고 지지율이 높다. 어쩌면 일본이 가고 싶어하는 길을 우리가 먼저 닦아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본이 우리를 따라올 수밖에 없도록 길을 개척하면, 앞으로 한일관계에서도 우리가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이시바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위상이 다르다. 이시바는 위기를 맞고 있고 이재명은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국민적 지지가 크다는 것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

한국은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 외교 협상에서 외교관의 세치의 혀 보다 더 위력적인 것은 국민의 여론이다. 미국에 6.25 때 한국을 생각하고 상대하면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미국에도 대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외교부는 그렇게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직접 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보수에서는 트럼프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한미 우호 관계가 유지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 떳떳하게 이야기하다가 설사 당장 한미 정상회담을 열기 어렵다고 해도, 정상회담을 당장 한 번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박인규 : 중국에서는 계속 이재명 대통령의 전승절 기념식 참여를 타진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상대로 오는 10월 에이펙(APEC,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나?

정세현 : 에이펙 주최국가인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중 하나가 중국인데 시진핑 주석이 여기에 오고 싶지 않게 만들어도 될까? 에이펙을 망치더라도 미국이 싫어할 테니 중국 주최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면 안된다는 의견도 있는데,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이후 벌어진 상황 때문에 이런 관측이 나오는 것 같다.

당시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이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까지 이어지면서 사실상 미국이 원하는 대로 모든 일들이 진행됐는데, 전승절 참석이 일종의 구실이 된 셈이다.

박근혜 정부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자국의 판단을 미국에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한중, 한러 관계를 소홀히 하면서 세계 10위 경제 강국이었던 한국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를 복원하려면 한중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미국에 "너네가 우리에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올려달라고 하는데, 돈을 벌어야 올려줄 것 아니냐, 우리 경제가 어려워서 무역을 늘리고 경제 활성화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너네는 관세 장벽 쌓고 있지 않냐, 중국은 관세가 없으니 중국에서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냐" 라고 말하며 설득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너희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중국이 초청하는 전승절에 참석하고 이후 시진핑 주석도 에이펙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해서 한중관계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1, 2차관을 다 역임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위성락 안보실장과 대통령까지 모두 이러한 논리를 공유하고 대응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때는 논리적 설득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한미관계를 한국이 주도해서 갈 수 있는 인적 구성이 마련되기도 했다.

▲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찬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박인규 : 북한과 러시아가 상당히 가까워지고 있는데, 러시아는 그래도 '비우호적 국가' 중에 그나마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한국을 꼽고 있다. 한러 관계는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전쟁이 끝나야 가능한 것인가?

정세현 : 그래야 북러 군사협력이 좀 수그러들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북한이 인민경제를 돌리기 위해 물자가 필요한데, 이를 줄 수 있는 곳이 그나마 러시아다. 이미 북한이 군인 등을 러시아로 보내기도 하지 않았나. 당분간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갈증을 조금 해소할 수는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러시아가 한국에 대해 우호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연해주 개발 문제 때문인데, 만약에 이 개발에 중국이 참여해서 1980년 이전까지는 중국 땅이었던 연해주가 사실상 중국 영향권으로 편입돼버리면 러시아는 타격이 크다. 그렇다고 북한이랑 하자니, 북한은 연해주 경제를 발전시킬 여력이 없다. 일본의 경우 러시아와 북방 4개 도서 문제가 있다. 이런 부담 없이 동아시아에서 연해주 개발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박인규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이 몰락하고 있고 앞으로 미국 없는 세계 경제, 미군 없는 한반도를 상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에 의해 해방되고 나라가 유지돼 왔기 때문에 한미동맹이 나라 유지에 가장 긴요한 요인으로 인식돼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서 미국의 쇠퇴가 한반도의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는 기회라는 인식을 해야 할 필요도 있지 않나? 한미동맹이 흔들릴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이 구호로 사용하고 있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사실 지금 미국이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체제론'의 창시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2003년 미국의 패권 몰락을 이야기했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2012년 저서인 <온차이나>에서 미국을 '쇠퇴하는 국가'라고 했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것이 트럼프의 선거 구호인데, 이런 미국을 계속 믿고 따라갈 것인가 질문해 봐야 한다.

한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미국이 계속 패권국이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제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식의 외교를 펼칠 것인지와 관련해 지금부터 여러 군데 손을 뻗어놓아야 한다.

서양 세력이 밀고 들어오는데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 조선왕조였다. 그러다가 일본에 식민지배를 당하게 됐다. 자기가 얼마나 컸는지도 모르고, 국제정세 감각도 없이 임시방편으로 이리저리 붙다가 식민지가 되는 이런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국제정세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

물론 중국도 언젠가 미국의 자리를 대체하고 우리를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 힘이 더 빠지고 중국이 세계 1등이 되면 무슨 패악질을 부릴지 모른다. 그래서 외교에서는 '자국중심성'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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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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