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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해준 '친정'을, 일상 돌봐준 '엄마'를 왜 없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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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해준 '친정'을, 일상 돌봐준 '엄마'를 왜 없애나요?"

[위기의 십대 여성 어디로 ①] "엄마처럼 여기던 기관이었는데 그간 쌓은 유대감을 왜 지우나"

10대 위기여성들에게 일상 돌봄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온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이 지난 4일 문을 닫았다. 서울시가 내년 위기 청소년 통합지원을 위한 신규 지원센터를 출범시키겠다며 기존 센터의 위탁 사무를 종료한 까닭이다.

성매매 여성으로 낙인 찍힌 '경의선 키즈'들과 함께 춤추는 등 10대 위기여성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운영을 종료한다. 나무는 청소년쉼터 등과 서비스가 중복된다는 이유로 지난해 서울시의회로부터 재위탁을 승인받지 못하는 등 외부로부터 기관의 필요성을 의심받아 왔다.

연이은 10대 위기여성 지원기관 폐쇄로 여성 청소년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운영 종료로 발생하는 지원 공백에 갈 곳을 잃은 것은 물론 추후 새로 출범한다는 통합센터가 기존 기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이 만난 4명의 위기 여성들은 나는봄·나무와 소규모 10대 위기여성 지원시설로 인해 자신의 삶이 달라질 수 있었다며 연이은 운영 종료 소식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들은 기존에 잘 운영되던 센터를 없애고 통합센터를 개소하겠다는 서울시 주장에 의문을 표했다. 한 개의 큰 나무가 아니라 지역사회 곳곳에 소규모 지원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위기 여성들을 지원하는 더 나은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위기 여성 청소년 네 명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한다.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에서 봉사하는 전문의가 위기청소년을 진료하고 있다.ⓒ나는봄 제공

"아무리 밖에서 지친 일이 있어도 여기 오면 회복이 됐는데, 이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서울시가 우리 엄마를 없애겠단 말과 같아요."

경기 파주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박예솔(21, 가명) 씨는 <프레시안> 기사에 이 한마디를 꼭 넣어달라며 인터뷰를 위해 서울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집에도 학교에도 마음을 정착하지 못해 방황하던 예솔 씨에게 친정이자 엄마가 돼준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이 운영을 종료한다는 소식에 어떻게든 반대 의견을 내기 위해서다.

예솔 씨는 '나는봄을 각별하게 여기는 이유를 자세히 말해달라'는 요청에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이를 설명하려면 나는봄을 만나기 전 겪었던 학대들을 되짚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모자를 쓰고 고개 숙이기를, 생각을 정리한다며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천천히 자신의 생애 전반을 풀어낸 예솔 씨는 "여러 위기청소년 지원기구 중에서 오직 나는봄에서만 받을 수 있는 돌봄이 있었다"며 이야기를 풀었다.

가정폭력·학교폭력·성폭력 겪은 위기청소년, "더는 맞고 살고 싶지 않다" 탈가정 결심

예솔 씨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을 정도로 장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아주 어렸을 때는 대체로 화목한 가정이었지만, 예솔 씨가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면서 가족 간 소통은 줄고 그 공백을 물리적 폭력이 메웠다. 그의 눈에 아버지는 항상 화난 모습이었고, 아버지의 분노는 이상하리만치 예솔 씨만을 향했다.

가정폭력도 버거운데 학교폭력에 성폭력까지 시달렸다. 예솔 씨는 중학교 2학년 당시 교내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친구와 거리를 두지 않고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이른바 '일진'이라 불리는 무리의 타깃이 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괴롭힘에 그간 쌓아 온 친구 관계는 모래처럼 흩어졌다. 이 와중에 겪은 성폭력과 고등학교까지 이어진 또래 학생들의 위협에 예솔 씨는 도망치듯 학교를 떠났다.

이 모든 폭력의 배경에는 지정성별(태어날 때 외관상 보이는 1차 성징을 통해 의사에게 지정받은 성별)과 다른 성 정체성을 지닌 사람, 즉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가 있었다. 예솔 씨의 경우 지정성별은 남성이었지만 유년시절부터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라 여겨 온 예솔 씨가 딸로 정체화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또래 학생들은 예솔 씨의 성 정체성을 먹이 삼아 폭언과 괴롭힘을 정당화했다. 단 한 명의 청소년에게 이런 혐오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 구조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예솔 씨는 이대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직업체험학습 등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구하는 한편 검정고시 공부, 영단어 학습처럼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유명한 정신병원들을 찾아 심리 상담을 부지런히 받으며 마음 회복에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혼자 힘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았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은둔생활, 지정 성별과 다른 성 정체성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감, 아버지의 폭력이 이어지면서 예솔 씨는 점점 한계에 부딪혔다. 특히 코로나 시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정폭력이 견딜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예솔 씨는 "더는 맞고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19세 나이로 집을 뛰쳐나왔다.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주방. ⓒ프레시안(박상혁)

"'난다 긴다' 유명 병원 진료, 나는봄에서의 일상이 더 와 닿았다"

거리로 나온 예솔 씨에게 쉼터는 갈 곳이 못됐다. 꾸준히 호르몬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 성별 정정은 하지 못했기에 쉼터에 들어간다면 또래 남성들과 지내야 했다. 이는 학창시절 남성에게 성폭력을 겪은 그에게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었다. 예솔 씨는 살아남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지원기관에 연락을 돌렸다. 한 기관으로부터 "나는봄에서는 여느 센터와는 다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천을 받고는 곧장 나는봄으로 향했다.

"저는 진짜 여기 없었으면 자살했을 것 같아요. 삶의 전환점이 됐다고 할 정도로 저는 다방면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예솔 씨는 나는봄에서의 경험을 설명해달라고 묻자 곧바로 이렇게 답했다. 소위 '난다 긴다' 했던 유명 정신과 병원을 돌아다닌 것은 물론 탈가정 이후 많은 기관에서 지원을 받았지만,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받기보다 단순 치료대상으로 여겨진다는 생각에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던 그였다. 그런 예솔 씨가 일상적인 돌봄과 의료 지원을 함께 제공하는 것은 물론 힘들 때면 언제든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나는봄에서만큼은 '힐링'을 경험했다.

"따듯한 밥을 먹으면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일상 얘기하는 게 가장 좋았어요. 집밥 먹는 동안 '오늘 하루는 어땠니', '너무 덥진 않니', '더 필요한 건 없니'하고 선생님들이 물어주셨어요. 엄마가 해주는 듯한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치과 진료로 넘어가곤 했는데,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제게는 '이게 친정인가?' 느낄 정도로 따듯한 식사와 시선이었어요. 꼭 피가 섞여야만 가족은 아니잖아요?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는데 이 정도 온기를 느끼면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내일을 살아가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거든요."

돌봄에서 이어지는 의료지원은 예솔 씨의 삶의 질을 크게 끌어올렸다. 예솔 씨는 나는봄이 제공한 한의 진료에서 '화병' 진단을 처음 받았다. 갖은 폭력으로 시름하던 과거는 물론 탈가정 이후 생계를 위해 과로하다 보니 항상 긴장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얻은 병이었다. 진단 이후 예솔 씨는 침술 등의 진료를 받으면서 심신의 피로를 해소할 수 있었고, 육체노동에 부담을 주던 허리 통증까지 해결해 보다 쾌적하게 생계비를 벌 수 있었다.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던 정신과 상담도 나는봄에서는 달랐다. 그간 예솔 씨가 다닌 정신과 병원들은 딱딱한 분위기의 건물 내부에서 정해진 형식하에 이뤄지는 상담으로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반면 나는봄은 밖을 거닐거나 서점에서 책을 읽으며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 상담을 진행해 예솔 씨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했다.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가진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는 점도 예솔 씨가 나는봄에서 얻은 큰 소득이다. 예솔 씨는 "이곳에서 만난 청소년들 중에서는 같은 경험이 있으면서도 잘 맞는 친구들이 있었다. 소울메이트 같은 친구도 만나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며 "여기서 만난 친구들은 지금도 밖에서 자주 만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폐쇄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프레시안(박상혁)

"엄마처럼 여기던 기관이었는데 그간 쌓은 유대감을 왜 지우나"

예솔 씨는 나는봄을 다니는 2년 동안 꾸준히 돈을 모아 성별 정정과 성전환 수술까지 마쳤다. 나는봄 사회복지사들은 예솔 씨의 성별 정정 소식에 "서울대 붙은 듯" 기뻐했다고 한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그는 이제 연극영화과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봄의 심리치료 지원을 받으려던 예솔 씨는 운영 종료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을 포함한 위기 청소년들에게 나는봄에서만 받을 수 있던 지원을 끊는 것이 큰 위협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센터를 친정에, 사회복지사들을 '엄마'에 빗댈 정도로 각별한 유대감을 형성했던 예솔 씨는 사회복지사들의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서울시가 우리 엄마를 없애겠단 이야기"로 들렸다고 한다.

운영 종료 기간 동안 의료·상담기관 15곳과 연계해 위기 청소년들에게 지속적인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서울시 설명도 예솔 씨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의료·상담기관에서 큰 도움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이 다른 형식의 지원을 받고자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나는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봄은 가정과 가족, 학교가 합쳐진 정체성을 가진 센터예요. 내년에 똑같이 운영한다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른 기관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계신 선생님들이 사라진다는 것도 좋지 않아요. 다른 기관에 가면 내가 어떤 상담을 받아왔는지 수천 번 이야기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 없었거든요. 그동안 쌓아온 유대감이 사라진다는 건 나는봄의 강점을 지워버리는 것에 가까워요."

특히 그는 자신보다 어린 10대 위기 청소년들이 당장 갈 곳을 없애버린 서울시의 결정이 문제라고 했다. 예솔 씨는 "나는 지금 나는봄 덕분에 가정에서 나와 자취하고 있고. 나는봄에서 받은 상담을 토대로 가정과 교감해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는데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어떻게 하느냐"며 "지금도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은 10대 여성들이 계속 생기고 있을 텐데, 이들은 대체 어디로 가면 좋을지가 가장 걱정"이라고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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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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