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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생중계'에 2차례 정신병동 입소한 10대 여성, 유일한 안식처를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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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생중계'에 2차례 정신병동 입소한 10대 여성, 유일한 안식처를 빼앗겼다

[위기의 십대 여성 어디로 ②] 양육자도 담임교사도 "10대 위기여성 마음 붙일 곳 왜 없애나"

10대 위기여성들에게 일상 돌봄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온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이 지난 4일 문을 닫았다. 서울시가 내년 위기 청소년 통합지원을 위한 신규 지원센터를 출범시키겠다며 기존 센터의 위탁 사무를 종료한 까닭이다.

성매매 여성으로 낙인 찍힌 '경의선 키즈'들과 함께 춤추는 등 10대 위기여성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운영을 종료한다. 나무는 청소년쉼터 등과 서비스가 중복된다는 이유로 지난해 서울시의회로부터 재위탁을 승인받지 못하는 등 외부로부터 기관의 필요성을 의심받아 왔다.

연이은 10대 위기여성 지원기관 폐쇄로 여성 청소년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운영 종료로 발생하는 지원 공백에 갈 곳을 잃은 것은 물론 추후 새로 출범한다는 통합센터가 기존 기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이 만난 4명의 위기 여성들은 나는봄·나무와 소규모 10대 위기여성 지원시설로 인해 자신의 삶이 달라질 수 있었다며 연이은 운영 종료 소식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들은 기존에 잘 운영되던 센터를 없애고 통합센터를 개소하겠다는 서울시 주장에 의문을 표했다. 한 개의 큰 나무가 아니라 지역사회 곳곳에 소규모 지원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위기 여성들을 지원하는 더 나은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위기 여성 청소년 네 명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한다.

▲16일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이 운영 종료 후 문을 닫은 모습. ⓒ프레시안(박상혁)

"솔직히 실감 나지 않아요. 아예 문을 닫는 건 아니죠?"

어떤 질문이든 긴장한 모습으로 짧은 답만 내뱉던 박지수(13, 가명) 양의 입에서 나온 단 하나의 반문이다.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이 운영을 종료한다는 기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수 양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 물었다. 서울 동작구의 한 정신병동에 입소해 있는 지수 양에게 나는봄은 병원 밖으로 나가면 곧장 찾아가고 싶은 유일한 안식처기 때문이다.

숨까지 가빠진 지수 양에게 희망찬 답을 주지 못했다. 나는봄을 맡을 신규 위탁기관을 모집해 오는 1월 다시 열겠다던 서울시가 돌연 "2026년 개소 계획"으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지수 양이 퇴소했다가 다시 위기에 처해도 올해 안에는 나는봄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연기된 개소 시기가 언제 또 미뤄질지, 서울시가 전처럼 위기 10대 여성들의 마음을 돌볼 역량을 갖춘 기관을 찾을 수 있을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수 양은 누구도 고치지 못하던 자신의 '비행 행동'을 나는봄 덕분에 크게 줄일 수 있었다며 꼭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집과 학교가 있는데 왜 나는봄에서만 가능했는지를 묻자, 지수 양은 자신이 자살을 시도했던 과거를 풀어내며 천천히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지수(13, 가명)양이 입소해 있는 서울 중랑구 정신병동. ⓒ프레시안(박상혁)

자살 생중계에 성인 남성과의 교제…집도 학교도 어쩌지 못했다

지수 양이 말하는 '비행 행동'은 사춘기에 빠진 초등학교 6학년 시기 '자살 생중계'에서 출발한다. 다문화 가정이자 이혼 가정인 집에서 지수 양은 조부모와 아버지, 오빠, 그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지수 양을 돌볼 여유가 없었고, 할머니가 유일하게 지수 양을 챙겼지만 세대 차이가 심해 옥죄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면서 지수 양은 극심한 정서적 위기에 빠졌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살시도를 생중계했다. 정말 죽고 싶다기보다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립돼 있다는 구조 요청이었다. 다행히 자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지수 양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지수 양은 해가 바뀌며 진학한 중학교도 원만히 적응하지 못했다. 동급생들은 조울증세로 씻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월경혈도 잘 처리하지 못하던 그와 함께 생활하길 꺼렸다. 소외감과 더불어 규칙적인 생활 자체가 버거워진 지수 양은 점차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다. 대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나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걱정 어린 마음으로 지수 양을 혼낼수록 '비행 행동'의 강도가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었다.

이런 지수 양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던 결정적 계기가 있다. 집도 학교도 가지 않으면서 며칠 동안 잠적하길 수차례, 신고를 받은 경찰은 수색 끝에 성인 남성과 함께 있는 지수 양을 발견했다. 지수 양은 SNS와 온라인 채팅 등을 통해 성인 남성들을 만나왔다. 10대 초에 불과한 그가 언제 성착취 피해에 노출될지 모르는 상태였다.

학교의 특별관리와 지역 상담기관의 가족 상담이 이뤄졌지만 지수 양에게는 모든 게 형식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이에 당시 지수 양의 담임교사였던 박모 씨는 더 이상 일반적인 방법으로 교육할 수 없다고 판단, 10대 위기여성들을 전문적으로 돌본다는 나는봄에 연락을 취해 지난해 5월 지수 양을 연계했다.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주방에서 보이는 앞마당. ⓒ나는봄 제공

10대 위기여성에게 필요한 건 '강압' 아닌 '다정함'…안정 찾자 진로 탐색도

"밥이 진짜 좋았어요. 집에서 먹을 때보다 편하고 맛도 좋았어요." 지수 양이 인터뷰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낸 순간이다. 마당이 펼쳐진 주방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어른들과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지수 양에게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바깥이 보이지 않는 집안에서 가족과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항상 같은 반찬을 먹는 일상이 답답했었기에 나는봄에서의 식사 시간은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지수 양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다정함과 화목함을 나는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집처럼 엄격하지도, 학교처럼 규칙이 많지도 않았다. 사회복지사들은 지수 양이 해온 일들을 꾸짖기는커녕 "그럴 수 있다"며 너그럽게 대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회복지사들의 격려에 지수 양은 용기를 내어 술을 끊고 학교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갔을 때에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말도 잘 못했는데, 화목하고 가족같은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껴서 천천히 스며들었어요. 일상적인 조언도 좋았어요. 주5일 전부 학교에 가지 않아도 좋으니 천천히 출석 주기를 늘리자거나 궁금하면 술을 마셔볼 수 있지만 가급적 어른이 되면 마시라는 식이었어요. 집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규칙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 빠지지 말아라', '술·담배 당장 끊어라' 혼내는 게 너무 강압적이어서 힘들었어요."

일상생활과 함께 건강과 위생 문제도 크게 나아졌다. 지수 양은 나는봄이 제공하는 여성의학과 진료를 통해 다낭성난소증후군을 발견하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한의 진료에서는 항상 뭉쳐 있던 어깨를, 치과 진료에서는 충치를 치료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주요 이유였던 악취 문제도 사회복지사들의 도움으로 목욕하는 횟수를 늘리면서 개선해 나갈 수 있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자 그간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진로도 찾기 시작했다. 지수 양은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묻자 "홍대입구 근처에서 작은 꽃집을 열고 선물상자에 꽃다발과 간식을 담아 팔고 싶다"고 답했다. 나는봄에서 플라워테라피 수업을 들으며 꽃꽂이가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 꽃향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지 배웠다며 평소 '비행 행동' 장소로 삼아온 홍익대학교 인근을 일터로 삼아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나는봄 제공

"이런 결정 내린 서울시장 대통령 나온다면 반대 운동이라도 하고 싶다"

나는봄에서의 1년으로 일상을 회복하던 지수 양은 지난 5월 다시 정신병동에 급하게 입소했다.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던 스트레스와 조울 증세가 겹쳐 미처 손 쓸 틈 없이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잠시 병동을 나온 지수 양은 어째서 자살 시도를 했는지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처음 입소한 2년 전보다 병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퇴소 후 가족관계와 학교생활 모두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병원 밖 생활을 기대하고 있는 지수 양의 유일한 걱정은 나는봄 운영 종료다. 특히 지수 양은 그간 정들었던 사회복지사들이 서울시의 고용 미승계 결정으로 모두 나는봄을 떠나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가장 슬퍼했다.

"만날 다니던 곳이 문을 닫는다니 막막하고 속상해요. 그래도 정이 있는 곳인데, 선생님들도 너무 좋으셨는데 못 만난다고 하니 아쉬워요.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죠? 나는봄이 재정비해서 돌아오면 좋겠고, 할 수 있으면 선생님들이 꼭 돌아오면 좋겠어요."

지수 양의 변화를 지켜봐 온 가정과 학교도 나는봄 폐쇄에 반대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수 양의 할머니 김모 씨는 <프레시안>과 만나 "집에서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던 아이가 나는봄 선생님들과 대화하는 건 좋아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는 모습이 참 좋았다"라며 "우리뿐 아니라 저소득층이나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많이 찾는데 갑자기 문을 닫는다고 해버리면 어디로 가라는 것이냐. 마음 같아서는 이런 결정을 내린 서울시장이 대통령 한다고 나오면 찍지 말라고 반대 운동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성토했다.

박 교사는 <프레시안>에 "아이들이 엄청난 시스템을 갖췄거나 거대한 예산을 지원해줘서 나는봄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 나는봄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이라며 "지수 양을 비롯한 위기 학생들이 정말 많은 상황인데, 이 아이들이 마음 붙일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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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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