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국은 인구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긴 국가만 가입할 수 있는 ‘3050클럽’에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2023년에는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을 추월하며 아시아 3050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아시아에서 선진국을 대표하는 국가로 자리잡은 상징적 사건이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인프라와 기술력, 종합적인 산업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고성장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선진국 중에서 지속적인 고성장을 유지한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경제 역시 한계에 직면해 있다. 지금까지는 원가 경쟁력, 인력 집중도, 빠른 추격 전략을 통해 제조업 중심의 성장을 이루어 왔으나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와 주요 산업의 포화로 인해 기존 전략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제조업 기반 성장의 한계가 가시화되는 지금,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굴이 절실하며 그 대안으로 관광산업에 주목해야 한다.
관광은 성장잠재력 갖춘 수출 산업이다
한국의 관광산업은 GDP 대비 비중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은 GDP의 7~10%를 관광산업이 차지하지만, 한국은 3~4% 수준에 그친다. 이는 관광산업의 확장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초 자산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를 겪었으며, 그 원인 중 하나는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에서 서비스산업 전환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서비스산업의 부진은 국가 경제 전체에 구조적 타격을 줄 수 있으며 이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2024년 기준으로 외국인 관광객 1인당 평균 소비액은 약 1450달러이다. 반면 자동차 한 대의 평균 수출 단가는 약 2만2300달러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관광객 15명이 한국을 방문해 소비하면 자동차 1대를 수출한 것과 같은 외화 유입 효과가 발생한다.
관광은 단순한 여가가 아닌 외화를 직접 벌어들이는 전략산업인 것이다. 이제 관광은 ‘놀러 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수출 산업으로 재(再)정의 되어야 한다.
자영업과 서비스업의 생존, 관광에 달려 있다
우리는 자영업의 위기를 흔히 ‘경기침체’ 탓으로 돌리면서 더 본질적인 구조 전환을 간과하고 있다. 선진국은 곧 ‘일찍 집에 들어가는 나라’다. 더 이상 야근과 회식이 일상인 사회가 아니다. 개인의 삶과 여가 중심의 생활 리듬으로 전환되면서 전통적인 외식·유흥 중심 자영업 구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관광객이 없는 서비스업은 생존할 수 없다. 관광객만이 주중과 주말, 주간과 야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비를 발생시키고, 지역 경제를 순환시키는 외부 자원이다.
지방 자영업의 생존은 이제 지역 주민의 소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관광객 유입 없이는 식당, 숙박, 문화시설, 상점 등이 살아남을 수 없다. 관광객은 지역경제를 지속해서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이다.
관광은 국가균형발전의 마지막 기회다
관광은 단순히 외화를 벌어들이는 산업을 넘어, 사람의 이동을 유도함으로써 지역의 경제 순환을 일으키는 동력이다. 사람의 이동은 곧 자본과 소비의 이동이며, 이것이야말로 균형발전의 핵심이다.
K-콘텐츠와 한류의 세계적 인기로 인해 한국에 대한 글로벌 관심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의 대부분은 서울과 일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따라 지역의 자영업, 소비, 문화, 고용 등 핵심 지표들은 계속 수도권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
지방에 제조업을 다시 유치하려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관광은 지역이 즉시 실행할 수 있는 현실적 전략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관계인구’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관광을 매개로 지역과 지속적 관계를 맺는 외부 인구를 정책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특히 행정안전부는 ‘생활인구 고도화’ 정책을 통해 관광·체류·이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국가 통계 기준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는 지방교부세 산정과 지역 정책 수립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처럼 관광은 이제 지역 재정과 자치권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
결국 관광산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지역을 변화시키고 자생력을 회복시키는 종합 혁신 도구다. 이제 관광은 지방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마지막 전략적 기회다.
관광수지 적자는 '산업전략 없는 방치'의 결과
2024년, 한국은 약 120억 달러의 관광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유일한 대규모 관광수지 적자 사례로 적자율은 –66.7%에 달한다.
반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주요 관광 선진국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한 관광수지 흑자율이 평균 +80%에 달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시장 여건의 차이가 아니라, 관광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한 결과다.
선진국들은 수십 년간 관광산업에 대해 지속적인 공공 인프라 투자, 관광기업에 대한 기술지원, 전문 인력 양성, 국가 마케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왔다. 오늘날의 성과는 축적된 전략과 집중 투자의 산물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관광을 기업 중심 산업이 아닌 관광객 유치 행사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관광객 수 증가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 관광기업의 서비스 고도화나 관광 콘텐츠 경쟁력 강화는 소외되었고 관광기업의 기술 투자와 시설 현대화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국 관광산업은 수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외국인은 오래 머물지 않으며 국민은 해외로 나가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관광은 한국경제의 구조 전환을 이끌 수 있는 대표적인 서비스 수출 산업이자, 국가균형발전과 자영업 회복의 열쇠다. 지금처럼 전략 없이 방치한다면, 관광은 국가의 적자를 계속 확대시키는 비효율 산업으로 남을 것이다.
따라서 관광을 명확히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법 제도와 예산, 조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산업육성기에 제조업을 키웠듯 관광도 전략적 육성이 필요한 국가 산업이다. 전략이 없는 관광에 미래는 없다.
'관광전략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중화학공업, 반도체, 정보통신과 같은 핵심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법·제도·예산을 집중하여 지원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이들 산업은 기업의 노력만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전략적 판단과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관광도 그 수준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관광은 저성장 시대의 마지막 성장엔진이며 자영업과 지역경제를 지탱할 현장 밀착형 산업, 미래 서비스 수출의 주력 산업군이다. 하지만 아직 관광산업은 국익 차원의 주력 산업군으로서 체계적인 법제도 기반 없이 민간의 자생력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광전략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관광을 명시적 국가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다음과 같은 중요한 과제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산업 고도화 지표 및 단계별 로드맵 수립=관광산업의 성과는 관광객 수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과 산업의 고도화로 측정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관광은 산업 자체보다 ‘유치 규모’ 중심으로 성과가 관리되어, 관광기업의 역할은 등한시됐다.
앞으로는 관광상품의 혁신, 업종의 다양화, 서비스기술의 고도화, 시설의 현대화 등 세부 항목별 발전 지표를 개발하고, 각 지역과 업종별로 단계적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도화 수준에 맞춰 맞춤형 지원과 규제 완화를 병행해야 한다.
△국가 재정투자 확대 및 성과 기반 인센티브 도입=현재 관광기업에 대한 지원은 소규모 보조금이나 제한적 융자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관광산업을 수출형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면 디지털 기반 상품 R&D, 인프라 고도화, 글로벌 진출을 위한 대규모 재정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은 관광 정보 플랫폼, 숙박 체인, 여행 기술 등에서 중국·미국의 빅테크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려면 경쟁력 있는 토종 관광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출국세 조정 등으로 재원을 확보하고, 정부 재정을 관광객 유치를 가장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닌 산업 투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성과 중심의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한 기업에는 세제 감면, 마케팅 지원, 해외 진출 가점 등 가시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국가관광전략산업진흥위원회 설치=관광은 교통, 외교, 환경, 지역개발, 금융 등 복수 부처와 연결된 복합산업이다. 이에 따라 기존 문화체육관광부 중심의 구조만으로는 산업전략 수립과 조정에 한계가 있다.
관광을 수출 산업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의 관광산업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이 위원회는 ▲국가 관광전략 수립 ▲법령·예산·조직의 조율 ▲부처 간 협력 구조 설계 ▲성과 지표 설정과 부처별 평가 ▲민관 협력 및 규제 혁신을 총괄한다.
이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직접 챙겼던 대통령 주도 산업전략처럼, 관광도 정권 최고 수준의 리더십 아래 관리되어야 한다.
△관광직 공무원 직렬 신설=현재 관광 행정은 대부분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하고 있어 전문성이 누적되지 못하는 구조다. 일부 지자체는 별정직·계약직을 활용하고 있으나, 제도화되지 않아 지속성이 떨어진다.
관광직 직렬을 신설하고 관광 전문 공무원을 통해 지역 맞춤형 정책을 수립하고 사업을 안정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행정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인구감소 지역, 접경지, 특별자치도 등에는 단계적 시범 도입이 가능하며, 이는 제도 정착과 지역 불균형 해소에 모두 기여할 수 있다.
△AI 기반 관광 혁신 모델 구축=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관광산업에 접목할 경우, 관광산업 전반을 고부가가치의 지능형 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특히 ▲개인맞춤형 관광 추천 시스템 개발 ▲AR/VR 기반 몰입형 관광 콘텐츠 확산 ▲다국어 AI 관광 안내 및 자동 번역 서비스 구축 ▲공공·민간 협력형 AI 관광 인프라 확산과 같은 전략적 추진 과제를 통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관광 혁신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AI 관광 혁신은 단순한 자동화 수준을 넘어서 관광객의 행동 데이터를 학습하고 이를 기반으로 실시간 반응과 예측이 가능한 지능형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결국 관광은 단순한 체험 중심 소비산업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성장산업으로 재정의되며 한국 관광의 미래 경쟁력을 견인하는 전략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글로컬 복합문화관광특구’ 구축(직접적인 사업 예시)=기존 관광특구는 외국인 대상 쇼핑과 숙박 중심의 단기 소비형 개발도상국형 모델에 머물러 왔으며 이는 지역 고유의 문화와 콘텐츠, 일상 생활 기반과의 연계가 미약하고 장기 체류형 관광으로의 전환에 한계를 노출해 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지역 고유 자산과 글로벌 문화 요소를 융합하고 관광·교육·생활이 통합된 체류형 거점을 육성하는 복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시로 ‘글로컬 복합문화관광특구(Glocal Cultural Complex Tourism Zone)’를 제안한다.
이 특구는 단순한 인프라 중심의 개발을 넘어 지역 정체성과 세계 문화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권역을 조성하고 관광의 질적 전환과 지역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활력을 함께 추구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이다.
예컨대, 경남 남해군의 독일마을은 독일풍 건축과 이민자 역사를 중심으로 조성된 관광지이지만 현재는 독일문화원 등과의 협업을 통해 교육과 생활 기능이 확장되고 있으며 '한독 공동체'와 '창작마을'로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전북 임실은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정착하여 치즈 문화를 도입한 지역으로, 현재 운영 중인 ‘임실치즈테마파크’는 관광·체험·축제를 아우르는 복합시설로 성장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벨기에 문화와 유럽식 생활양식을 접목한다면, 초콜릿 제조, 벨기에 전통 유제품 제조 및 체험, 공예 창작 등이 결합된 새로운 체류형 관광특구로 확장 가능하다.
이러한 공간은 단순한 방문지를 넘어 농촌 유학, 국제교류 교육, 귀촌 체험의 장으로도 기능하며 청년과 가족 단위의 유입을 유도하는 지역 정주를 위한 새로운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결국 '글로컬 복합문화관광특구'는 단순 관광 기능을 넘어 문화, 교육, 창작, 생활이 융합되는 지역 중심형 새로운 관광산업생태계로 설계되어야 하며 이는 ‘가보고 싶은 관광지’에서 ‘살아보고 싶은 지역’으로의 전략적 전환을 실현하는 핵심 사업 유형이 될 것이다.

이제는 대통령이 관광산업을 직접 챙겨야 할 때
지금은 대한민국이 관광산업에 국가적 명운을 걸어야 할 시점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산업을 진두지휘했던 것처럼, 이제는 서비스산업의 핵심이자 국가 브랜드의 상징인 관광산업에도 그에 준하는 전략적 리더십과 실행력이 필요하다.
2024년 세계여행관광협회(WTTC)는 한국 관광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와 경제적 기여도가 뚜렷하게 상승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관광이 한국경제에서 단순한 여가산업이 아닌 실질적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광은 제조업과 달리 지역 기반의 산업이다. 소수의 대기업이 아닌 수많은 중소 관광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함께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국 어디서든 즉시 실행 가능하다. 이는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청년 일자리 부족, 자영업 위기라는 한국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다.
정부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단체관광객 대상 비자 면제와 같은 과감한 정책 조치는 관광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신호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관광산업을 전면적으로 재정의하고 산업전략으로 체계화하는 국가적 선언이 필요하다.
관광은 더 이상 단순한 ‘놀러 오는 것’이 아니다. 관광은 돈이고 일자리이며 국가의 미래다. 관광산업은 제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며, 청년과 자영업자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핵심 산업군이다.
이제 정부와 지방, 공공과 민간 모두가 관광을 ‘수출형 전략산업’으로 재인식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법으로 보호하고 제도로 뒷받침하는 전환이 절실하다.
과거 우리가 포항제철을 세우고 반도체를 수출 1위 산업으로 키워냈던 것처럼 이제는 관광이 새로운 국가 산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관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반드시 붙잡아야 할 필연적 국가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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