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정부는 '동맹현대화'라는 명분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함께 한미동맹의 범위 역시 대중국 견제로 확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국방비 및 주한미군 주둔비 부담금(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접한 한국으로서는 안보와 경제에 심대한 위기가 초래될 수밖에 없는 중차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빛의 혁명 이후 맞이한 광복80주년을 기념해 자주통일평화연대(전 6.15남측위원회)는 주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한미동맹의 위험성,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의 필요성,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정부가 지켜야 할 정치적 과제에 대한 전문가 연속기고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해마다 8월이 오면 어떠한 무더위보다 더 뜨거웠을 해방의 환희와 독립의 열망을 되새기게 된다. 그러나 그뿐, 광복 80년이 오히려 회한으로 다가오는 것은 분단 전쟁 독재를 거쳐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일궈낸 화려한 성적표 아래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는 '괴물'이 느껴지기 때문 아닐까. 그 어둡고 희미하고 거대한 무엇이 이 땅의 진정한 자주 평화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바로 한미동맹이다.
한미동맹을 괴물이라 부르는 것은 과장된 비유일 수 있다. 늘 그랬던 것이 아니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구출해 주었고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질 동안 안보의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은덕'도 기실 늘 그랬던 것처럼 자기네의 전략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부분이 컸다.
문제는 그들의 군사전략적 이익이 지금 우리의 핵심 국가이익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을 위해 한반도(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이 방해받았고 좌절을 겪었다. 김대중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30년에 가까운 세월이었다.
7월 말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에서 한국은 동맹국이 아니라 적국에게서나 받을 수 있는 대우를 받았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솔직한 설명은 생략되었고 미국에 대한 어떠한 유감 표명도 국민에 대한 사과도 없이 몇 개의 수치들이 자화자찬 속에 날아다니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는 본질적으로 변명일 뿐이다.) 그리고 지체없이 판을 갈아 협상 테이블에 안보 문제가 올라왔다. 바로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것이다.
대중국 전쟁에 대비하는 한미동맹 '현대화'
한미동맹 현대화 '논란'은 관세협상이 타결되기 전인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대화라는 말 자체는 일반적으로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2000년대 초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가 추진되면서 똑같은 표현이 한미연례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한미동맹일 경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특별히 나쁜 것일 수 있다.
최근의 동맹 현대화 논의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케빈 킴 미국무부 부차관보가 지난 7월 11일 방한하여 외교·국방 국장급 실무회의에서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하여 한미동맹을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강화시키고 변화하는 역내안보환경 속에서 동맹을 호혜적으로 현대화해 나가기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였다고 발표했다.
7월 18일 도쿄에서 열린 한미 외교차관 회의에서 미국이 공식적으로 요구한 것은 단순한 국방비 증액이 아니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인도·태평양 전략에 확대 적용하여 대만 유사시 한국도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라 알려졌다.
7월 31일 관세협상에 이어 한미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미국 측 발표자료에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 유지" 관련 내용이 들어간 데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 측은 (대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구체적인 대책을 이야기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라면서도 한미 장관 사이에 이견이 불거지진 않았다고 전했다.
같은 날 이루어진 한미 국방장관 간의 통화에 대하여 당일 미국방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는 "한국은 북한에 맞선 방어에서 더 주도적인 역할을 기꺼이 맡으려 하며" 더 나아가 "한미는 지역 안보 환경에 대응하고 공동의 위협을 방어할 준비를 위해 동맹(한미동맹)을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논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X'(예전 트위터)에 올렸다.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어쩌면 다 알고 있고 우려해 온 것이다. 새로울 것도 없다. 이는 '현대화'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그동안 한반도 방어에 국한하여 해석되어 왔던 한미동맹의 성격을 대중국 전쟁동맹으로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그에 따라 주한미군의 역할이 변화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주한미군이 자기네 필요에 따라 한반도에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는 '전략적 유연성'이다.
한국이 직면한 난제인 국방비와 주한미군 주둔비의 증액 요구는 당연한 부수적 결론들이고 작통권 환수와 주한미군의 감축 문제 등도 한국의 의사보다는 미국의 필요에 따라 '처리'될 수 있다.
한국군의 역할 변화는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미국이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대북억제와 전시 한반도 전쟁에서 한국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려면 평시 무기와 운영체계를 '현대화'해야 하고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돈 문제만이 아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한국이 동의를 넘어 '동참'한다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역외의 군사적 분쟁에서 연합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흔히 거론되는 대만 관련 군사적 긴장상태가 전쟁으로 비화하면 한국이 중국과 전쟁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위험성은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고 중국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범세계적 전방위적 다차원적으로 기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등에서 친러정부를 전복하고 친서방(친미) 정권을 수립하려는 소위 '색깔혁명'과 유사한 공작부터 이념공세와 관세 및 무역 전쟁, 동아시아에서의 다중적 군사동맹의 확장과 군비강화 등은 이미 진행 중이고 미래에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 '안간힘'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 제국의 운명이고 봉신국(封臣國)들의 비극적 희생을 요구한다. 그렇게 한미동맹 현대화를 통해 한국군은 미국의 전략을 수행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평화가 가장 절실한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이 바야흐로 '전쟁동맹'의 길로 들어선 것인가.

위험을 구조화하는 동맹 딜레마
너무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라는 경구를 짧게 줄이면 '항상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된다. 한미동맹 현대화를 통한 전쟁동맹이 결성되면 실제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위 '동맹 딜레마'가 심화되고 위험이 구조화될 가능성이 크다. 안보를 강화하기 위하여 군사동맹에 의존할 경우 안보가 오히려 약화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는 말이다.
가장 흔한 동맹의 딜레마는 약소국과 강대국 사이의 비대칭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방기(abandonment)와 연루(entrapment)' 위험성이다. 동맹의 하위 파트너인 한국 편에서 본다면 미국으로부터 방기당하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요구가 원치 않는 전쟁에의 개입이라면 연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안보를 희생해야 할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예컨대 앞에서 논의한 대만 분쟁 발생 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발휘되고 한국군이 동참하는 경우다. 평시 그러한 사태 발생에 대비하려면 외교정책, 군사전략, 작전개념, 무기체계, 부대구조 등 제반 분야가 조정되어야 한다. 요컨대 동맹의 현대화는 위험을 구조화하고 제반 국가정책을 왜곡하여 국익에 치명상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뜻이지만 표현이 약간 다른 또 하나의 동맹 딜레마는 '안보(security)와 자율성(autonomy) 교환'이다. 약소국이 동맹의 강대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는 대가로 자국 정책의 자율성을 일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소국은 안보를 위해서 강대국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아야 하고, 원치 않는 연루를 거부하는 자율성을 발휘할 수 없다. 한국은 대북억제에서 그동안 미국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연루 여부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주한미군 기지와 범죄 관련 행정협정(SOFA), 주둔비, 작전통제권, 연합작전계획의 수립과 훈련 등의 문제에서 자율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군사주권이 '없다'고 해야 할 정도다.
한쪽의 동맹은 상대쪽의 동맹을 유발하게 되는 것도 일종의 딜레마다. 한미동맹과 함께 한미일 3자 협력의 제도화(사실상의 동맹), 미국과 일본을 매개로 한 필리핀과의 동맹화, 나토와의 협력, 유엔사의 기능 회복과 회원국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재활성화' 등은 중국과 북한의 대응을 부를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포괄적 전략동맹 조약'(2024)을 통해 대열에 참여했다. 한반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냉전적 대결 구도가 재형성되었고 동아시아 전지역에서 평화와 안보가 위태로워졌고 전쟁 위험성이 구조화되고 있다.

정부-군대-국민의 삼위일체적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때
이재명정부가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하여 어떤 세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대선에서부터 일관되게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기치를 내걸었고 한미동맹과 관련된 사안은 거의 모두 "굳건한 한미동맹 기반" 위에 다루겠다고 천명했다. 어느 정부나 내걸 수 있는 무난하고 모호한 표현이다. 그 모호함 속에 얼마나 깊은 전략이 담겨 있을까.
조만간 열릴 예정인 한미정상회담은 처음 맞게 될 '진실의 순간'이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한미 간 동맹 현대화에 대한 큰 틀에 이견 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 동맹의 호혜적 현대화' 원칙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기에 어느 수준까지 구체적으로 합의할지, 그것이 과연 미측이 제시한 동맹 현대화 개념 속에 담긴 위험요소들을 제거하고 국익을 지킬 것인지 우려가 많다.
한갓 희망사항으로 끝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칭 '국민주권 정부'에 한미동맹 현대화에 대한 최저 요구선을 제시해 보자. 주권과 평화라는 진실을 위해서다.
첫째,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한국이 전쟁에 연루될 위험성은 거부해야 한다. 이는 2006년 1월 한미 외교장관이 합의한 바 있으며 그것을 재확인하면 된다.
둘째, 한국이 외부의 무력공격을 받지 않는 한 제3국을 겨냥한 미국의 군사행동에 동참하지 않는다. 이를 명시적으로 발표문에 넣지 못하더라도 불리한 해석을 배제할 근거는 숨겨(또는 밝혀)두어야 한다.
셋째, 한국 방위는 한국이 전담하되 필요한 국방비(소요)는 한국이 주권적으로 결정한다. 넷째, 한국의 작전통제권을 임기 내 조기에 환수한다. 다섯째,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은 일단 2024년 11월에 합의한 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대로 시행하되 역할 및 규모 변경에 따라 조정한다. 주한미군 감축 '위협'에 까무러치지 말고 주둔비 축소 또는 철군 요구 '암시'로 대응해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진실을 말하려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군은 그런 용기를 뒷받침할 책임이 있고 정부와 군대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그런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용기는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이고 트럼프대통령과 같은 부류의 인간에게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무기'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왜 '사랑'까지 하는지 보라.) 물론 협상에서는 기본적으로 적절한 표현과 치밀한 논리를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용기 못지않은 지혜를 요한다.
19세기에 클라우제비츠라는 사람이 전쟁은 정책(정치)의 연속이라 했다. 그는 또한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정부와 군대와 국민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아마 궁극적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 '국민'일 것이다.
90% 가까이가 미국을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여기고 세계경제를 선도하고 있다고 믿는 국민이지만(2025년 2월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 정부가 국민과의 솔직한 소통을 통해 정책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하여 때로 정책이 전쟁이다. "진짜 대한민국"이 해야 할 진정한 '전쟁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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