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자살을 하나의 선택지로 받아들였나
얼마 전 한 유명 배우가 또다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슬프고 힘든 일이다. 한편, 그 분의 죽음은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 중 한 부분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분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오늘도 유명 또는 무명의 생명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24년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8.3명으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OECD 평균(10.7명)의 2.6배에 달하는 수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우리 사회가 자살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자살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살은 때때로 관련된 사람들에게 구제책이 될 수 있다'는 문항에 동의하는 비율이 2018년 25.0%에서 31.2%로 6.2%포인트나 증가했다. '자살만이 유일한 합리적 해결책인 상황이 있다'는 문항에 대한 응답 역시 24.5%에서 27.4%로 높아졌다
정부는 이를 두고 "자살을 하나의 선택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인식 변화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시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구조적 문제의 결과일까?
절대적으로 높은 자살률, 정부는 무엇을 했나
한국이 OECD 자살률 1위를 차지한 지 20년 이상이 흘렀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그리고 2018년부터 현재까지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리투아니아에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있지만, 이는 한국이 나아진 것이 아니라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이 더 높았을 뿐이다.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정부 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주는 지표다. 20년이면 한 세대가 지나는 시간이다. 그동안 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가장 직접적인 답은 예산에서 찾을 수 있다. 2024년 정부의 자살예방 관련 사업 예산은 고작 603억 원이다. 이는 국가 총예산 677조 원의 0.009%에 불과하다. 하루 40명이 죽어가는 문제에 투입하는 예산이 이 정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자살 문제를 '관리 가능한 수치'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매년 자살예방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캠페인을 벌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기존 시스템 내에서의 미세 조정에 불과하다.
근본적 질문을 피하고 있다. 왜 한국 사회에서만 자살이 이렇게 '합리적 선택지'가 되었는가? 다른 OECD 국가들은 어떻게 자살률을 절반 이하로 유지하는가? 정부는 이런 질문 대신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번 홍보'나 'SNS 상담서비스 개통' 같은 기술적 해법에만 매달린다.
더욱이 자살의 근본 원인을 파악할 데이터조차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수집하는 자살사망자 데이터는 성별, 연령, 지역 등 기초적 정보에 그친다. 소득구간별 자살률, 사회보장 수급 현황, 복지서비스 이용 여부, 자살 시도 이력 등 정책 수립에 핵심적인 정보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현 실태로써는 자살률 OECD 1위를 유지하면서도 왜 죽음을 택하는지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실시하기 어렵다.
부실한 사회 안전망과 비과학적 비체계적 접근의 한계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한국 정부의 소극적 자세가 더욱 도드라진다. 핀란드는 1986~1996년 10년간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실시해 남성 자살률을 45%, 여성 자살률을 31% 감소시켰다. 호주는 'Living is For Everyone(LIFE)' 프레임워크를 통해 전국 400여개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체계적 접근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의 GDP는 2560조 원 수준이다. 체계적 자살예방에 필요한 최소 투자 규모를 고려할 때, 현재 603억 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더욱이 지방정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역설적 현상이 발견된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자살예방예산이 가장 많은 충북도에서도 작년 자살자 수가 10.8% 증가했고, 예산이 가장 적은 전북은 오히려 2.4% 감소했다. 이는 현재 정부의 자살예방 정책이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비체계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예산을 많이 쓴다고 해서 자살률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예산이 적다고 해서 반드시 자살률이 높은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정부가 자살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예산 투입' 자체를 성과로 착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학적 분석 없이 이루어지는 정책은 결국 예산 낭비일 뿐이다. 충북도의 사례는 단순한 예산 증액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명확히 시사한다.
자살률 1위 고착화의 근본 원인은 부실한 사회안전망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고립도는 2019년 27.7%에서 2023년 33.0%로 급증했다. 가계부채비율은 같은 기간 188.2%에서 203.7%로 치솟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만도 2017년 69만 명에서 2021년 93만 명으로 35% 증가하는 등 정신건강 악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의존할 수 있는 공적 지원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번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전국에 몇 개나 있고, 위기개입팀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결국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절망에 빠지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자살도 하나의 선택지'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구조적 결과다.

자살률 감소를 위한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
자살률에 있어서 20년 이상 OECD 1위를 유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정부의 체계적 무관심과 정책적 방치가 만든 결과다.
첫째, 과학적 분석을 위한 데이터 수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처럼 성별, 연령, 지역 등 기초 정보만 수집할 것이 아니라 소득구간별 자살률, 사회보장 수급 현황, 복지서비스 이용 여부, 자살 시도 이력,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성 등을 체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또한 자살 사망자의 생전 마지막 1년간 공적 서비스 이용 내역을 추적해 어떤 지점에서 지원이 실패했는지 분석하는 '사망사례 검토(Death Review)' 시스템을 전면 확대 적용해야 한다.
둘째, 예산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하루 40명이 죽어가는 문제에 전체 예산의 0.009%만 투입하는 것은 명백히 부족하다. 최소한 현재의 3~5배 수준인 2000억~3000억 원 정도는 확보해야 실질적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예산 증액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선별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충북도와 전북의 상반된 결과는 '돈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셋째, 자살예방을 범정부 차원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단독 사업이 아니라 교육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이 참여하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 모니터링 체계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처럼 매년 계획만 발표하고 성과 평가는 형식적으로 하는 방식으로는 실패를 반복할 뿐이다. 실시간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통해 어떤 정책이 효과가 있고 없는지를 즉시 파악하고, 효과 없는 정책은 과감히 중단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충북도처럼 예산을 늘렸는데도 자살률이 증가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정책 실행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고 평가하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신문에 보도된 안타까운 자살 사건들을 마주하며 우리는 또다시 안타까움을 표한다. 하지만 이런 안타까움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지표다. 이제는 정부의 정치적 의지를 물어야 할 때다. 하루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며, 그러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구조화 된 사회분위기를 정상화 시키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