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회담 개최와 한국정부의 문화재 반환 교섭 최종 방침
한일 양국은 1964년 12월 3일부터 제7차 한일회담을 개최한다. 문화재 반환 문제를 비롯하여 기본관계문제, 청구권 문제, 선박 문제,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문제, 어업 문제 등 주요 의제에 관한 교섭도 그 끝을 바라보게 되었다. 한일 양국은 먼저 기본관계문제를 논의를 마무리 짓고 1965년 2월 20일에 기본관계조약에 가조인한 후 남은 주요 의제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한국정부는 문화재 반환 교섭과 관련하여 '문화재 문제에 관한 훈령'을 작성한다. 이 훈령은 크게 '명목 및 형식', '의정서의 문안', '반환 대상 품목'으로 구성되었다. 일본 측의 의정서 요강안 명칭과 내용은 한국 측이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양국의 의견을 반영한 '문화재 및 문화문제에 관한 의정서'로 했고, '기증하기로 한다' 대신에 '인도(turn over)하는 것으로 한다'라는 표현을 넣었다.
'반환대상품목'에서는 제6차 한일회담 때 제시한 '반환 청구 한국문화재 목록'을 토대로 고고·미술품(도쿄대, 교토대 소장품은 최종 단계에서 철회,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은 최대한 반환), 고서적(최대한 많은 실물 반환), 체신 문화재(최대한 요구), 개인 소장품(일본정부가 '기증'을 장려하도록 합의의사록 등에 규정하고, 오구라 수집품, 데라우치 수집 한적·서화, 국보 지정 한국 문화재, 석굴암 합동불 2구 및 석탑은 끝까지 확보)을 돌려받도록 지시했다.
한국정부는 이와 같은 훈령을 통해 일본 측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자국의 입장도 관철시키기 위해 반환의 명목을 '인도'로 했고,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 등 국유 문화재와 함께 합의의사록을 통해 '기증'이라는 방식으로 개인 소유 문화재도 돌려받는 것으로 문화재 반환 문제를 타결하려고 했다.
4.3 합의와 문화재 반환 교섭
한일 양국은 2월 20일에 기본관계조약을 가조인한 후 남은 의제들을 마무리 짓기 위해 다시 교섭을 진행한다. 그 결과 4월 3일에 청구권 및 경제협력 문제,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문제, 어업 문제 관한 합의사항이 가조인되었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청구권 문제 해석과 관련해서 논의되었다. 이는 제2차 정치회담 당시 김종필과 오히라 마사요시가 합의한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의 해석을 둘러싼 문제였다.

한국 측은 문화재 반환 문제와 선박 문제를 제외한 일반 청구권 문제에 한정해서 이것만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해석했고, 반면에 일본 측은 청구권 문제, 선박 문제,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한국의 대일청구권이 모두 소멸되었다고 해석했다. 이와 같은 '김-오히라 메모'의 해석을 둘러싼 문제는 여러 차례 논의 끝에, 문화재 반환 문제는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사항'의 제6항목으로 다음과 같이 최종 합의되었다.
"한일 간의 문화재 문제 해결 및 문화협력 증진에 관련하여 양국은 품목 기타에 관한 협의를 하고 일본국은 한국 문화재를 대한민국에 인도한다."
인도 문화재 목록 합의
한일회담의 주요 의제들이 4.3 합의를 통해 큰 틀에서 타결되었고, 이제 남은 일은 의제들의 협정안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4.3 합의에 따라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문화재를 '인도'하기로 결정되었고, 이제 어떠한 문화재를 얼마만큼 '인도'할지, 그리고 관련 협정을 어떻게 작성할지가 남겨졌다.
4월 24일에 제1회 문화재위원회가 개최되면서 문화재 반환 교섭이 시작되었다. 한국 측은 다른 의제에 비해 문화재 반환 문제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는 한편 더 이상 새로운 목록을 제출하지 않고, 일본 측이 제출할 목록을 토대로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2회 문화재위원회(4월 28일)에서 일본 측은 향후 제출할 문화재 목록은 충분히 검토한 것이므로 최종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국 측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지금까지 품목에 대한 일본안이 나오지 않았었고, 품목에 대해 협의한 적이 없다."
"협의할 것이라면 최종안이라는 말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한국 측 입장에서는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는 일본 측 문화재 목록을 당연히 최종안으로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일본 측이 이를 또 수정해서 안을 낸다거나 찔끔찔끔 주고받는 일은 하기 싫다"와 같은 발언에서 보듯이 일본 측은 최종안을 되도록 늦게 제출하고 거기에서 인도할 문화재 목록을 결정하고 싶어했다. 이와 같은 인도 문화재 목록 논의에 관한 입장 차이는 한일회담 막판까지 이어진다.

이후 일본 측은 인도 문화재 목록을 계속 제출하지 않았다. 6월 22일에 한일회담이 타결되기 겨우 11일을 남겨둔 6월 11일이 돼서야 인도 문화재 목록을 제출했다. 이 목록은 외무성과 문화재보호위원회가 각각 한국 측에 증여 가능한 문화재 목록을 작성하고 논의한 후 완성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도자기 72점, 고고자료 291점, 석조미술품 3점, 도서 163부 852책, 체신 관계 문화재 35점이 있었고, 한국 측이 요구했던 북한 출토 유물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 측은 제4회 문화재위원회(6월 15일)와 제5회 문화재위원회(6월 6일)에서 양산부부총 유물, 가와이 고민(河合弘民) 장서, 오구라 컬렉션, 북한 출토 유물 등 중요한 품목이 없다는 점, 제1회 전문가회의(5월 17일) 이후 전문가 논의가 없다는 점, 회담 막판의 일방적인 목록 제시 등을 지적하며 불만을 표했고, 이토 히로부미의 고려자기, 경상남북도 소재 분묘 등에서 출토된 것 등을 요구했다.
한일 양국은 6월 18일 자정부터 인도 문화재 품목에 관한 회의를 열었다. 회담 종료까지 나흘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한일 양국은 철야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양산부부총 유물을 제외하고, 이토 히로부미의 고려자기 6점, 경상남북도 소재 분묘 그 외 유적에서 출토한 것 6점, 고려시대 분묘 그외 유적에서 출토한 것 4점을 추가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인도'할 문화재가 확정되었다.
문화재 협정 합의

한편 한일 양국은 제4회 문화재소위원회에서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문화재 문제 해결 및 문화협력에 관한 의정서 요강(안)'과 '문화상의 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안)'을 제시하고 협정안을 논의에 들어간다.
한국 측은 '문화협력만의 문제로 인도를 취급하는 일은 동의하기 어렵다', '<가능한 한 빨리>라는 표현을 <6개월 이내>로 했다', '<일본국 정부 소유의 문화재>라는 표현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등의 의견을, 일본 측도 '<대한민국의 문화재>라는 표현은 곤란하다', '인도 문화재 취급에 관한 합의의사록, 토의의 기록, 왕복서간 작성해야 한다' 등의 의견을 개진했다.
협정안 논의가 좀처럼 마무리되지 않자 한일 양국은 6월 17일 밤부터 다시 철야로 논의를 진행한다. 일본 측은 한국 측이 제시한 의정서 요강을 수정한 '일본국과 대한민국 간의 문화협정(안)'을 제시했다. 이 논의에서 한국 측이 요청한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이라는 협정 명이 합의되고, 아래와 같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이 작성되면서, 문화재 반환 교섭도 종료되었다.
한일 양국은 문화재 반환 문제를 비롯하여 주요 의제들을 둘러싸고 수많은 회의와 길고 긴 시간을 들여 1965년 6월 22일에 한일기본조약과 네 개의 부속 협정을 체결하면서 한일회담을 마무리했다. 1952년 10월 21일에 시작한 한일회담은 여러 차례 난항을 거듭하면서 막을 내릴 때까지 무려 14년간의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문화재 반환 문제도 한일회담 초기에 청구권 문제와 함께 논의되다가 제4차 한일회담부터는 문화재소위원회와 전문가회의에서 논의되는 등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한일 양국은 제7차 한일회담에서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체결했고, 이후 일본정부가 동 협정에 따라 1,326점의 문화재를 한국정부에 '인도'했다. 이 문화재들이 1966년 5월 28일에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문화재 반환 교섭의 후속 절차도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까지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1부에서는 한일회담의 문화재 반환 교섭에서 한일 양국의 입장이 무엇이고, 어떠한 논의 과정을 거쳤는지 등을 살펴봤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화재들이 등장했는데, 제2부에서는 그러한 문화재들이 어떠한 인물들과 관계되었고, 어떻게 반출되었는지, 한일회담에서는 어떻게 다뤄졌는지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2부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 참고문헌
한국정부 및 日本政府(일본정부) 공개 한일회담 관련 외교문서.
엄태봉,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한일회담과 '문화재 반환 문제의 구조'>, 경인문화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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