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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우리 안의 제국주의 끊어내야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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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우리 안의 제국주의 끊어내야 완성된다

[시민건강논평] 광복절의 의미와 한국의 책임

80번째 광복절을 맞이했다. 정부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 및 조직,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러나 국가가 특정한 날과 인물을 기리고 기념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고 잊지 않기 위한 장치만은 아니다. 그것은 구성원들이 공통의 기억과 감각, 지향과 가치를 공유하게 만들면서 정체성을 부여하고 강화하며, 자원을 동원하고, 권력관계를 재생산하거나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일부 세력이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기념하고자 하는 사례를 떠올려보자.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규정하는 것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의 의미를 축소하고 초대 대통령을 미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나아가 일본 제국에 협력하여 민중을 고통에 몰아넣었던 친일파 청산의 당위성을 약화시키며, 대대로 이어진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의 8월 15일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날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 되며 권력 투쟁과 저항의 장이 되기도 한다. 현재의 광복절은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된 날을 축하하고, 이를 위해 희생한 선조들을 기리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는 온전히 개인의 성취만이 아니라, 선대의 끈질긴 투쟁과 헌신 덕분이라는 공통의 감각 덕분이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달리하면 광복의 의미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한반도 민중에게는 주권과 영토를 되찾은 날이지만, 세계사적으로는 당시 제국주의의 붕괴와 민족자결주의 확산이라는 맥락 속에 놓여 있다. 이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온 전 세계 피지배 민중들의 오랜 투쟁 속에서, 형식적으로나마 힘의 논리에 따른 식민 지배와 착취에 종언을 고하는 역사적 흐름의 일부였다.

그로부터 80년이 흐른 지금 많은 것이 달라졌다. 흔히 강조되듯 한국은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 가운데 드물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국가가 되었다. 이제는 경제 규모로도 세계 상위권에 속하며, 문화적 영향력 또한 크게 확장되었다. 이는 자부심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국제 사회에서의 권력과 영향력이 더 커졌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과거 제국주의의 희생자였던 한국이 이제는 다른 나라와 사람들을 착취하는 주체가 될 가능성도 커진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가능성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에게 무시와 차별을 가하며, 저소득 국가에 대해 무의식적 우월감을 드러내곤 한다. 한국 기업들 역시 해외 생산 기지 소재국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열악한 노동 환경,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며, 해당 국가의 환경을 파괴하고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난 날을 기념하되, 동시에 오늘날 우리의 위치를 성찰하며 우리 안의 제국주의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한때 피해 집단이 가해 집단으로 바뀐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민간인, 특히 아동을 학살하고, 의도적으로 만든 기근으로 가자 주민들이 굶어 죽게 만들며, 구호품 반입을 막거나 구호품을 받으려 모여든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인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과 병원을 폭격하고, 현장에서 목소리를 전하는 기자들을 사살하며 진실을 은폐하려 시도한다. 과거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이스라엘이 오늘날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모습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 팔레스타인 토착민을 추방(나크바)하고, 그 땅 위에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이후 전쟁과 불법 정착을 통해 토지 소유를 늘려오다가, 2023년 10월 이후로는 아예 민간인 살해, 민간 기반 시설과 주거지 파괴를 노골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오늘날 제국주의가 경제, 문화, 금융, 기술 등의 불균형에 기반해 약소국을 미개한 존재로 취급하며 종속시키고 착취한다면, 전통적인 제국주의는 군사력과 직접적인 영토 지배로 약소국을 종속시키고 착취했다. 이스라엘은 지배와 착취가 아니라 토착민을 아예 제거하고자 하며, 고전적인 제국주의보다도 더 극단적인 형태를 보인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를 단호히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협력하며 이익을 취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수출하고 있으며, 한국석유공사는 자회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지에서 자원을 수탈하며 전쟁범죄에 공모하고 있다(☞관련 서명 페이지). 전통적인 제국주의에서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가 식민지 개척을 이끌었듯 오늘날 제국주의 역시 이윤과 성장, 경쟁 논리가 중심에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제국에 고통받던 한국 민중의 해방이 옳았다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속에서 절멸 위기에 놓인 팔레스타인의 해방도 당연히 옳다. 100여 년 전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일본 제국의 한국 점령을 묵인한 것이 잘못이었다면, 지금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을 묵인하는 것 또한 분명한 잘못이다. 우리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직접 관여된 나라들이 (해결) 해야 한다"고 뒷짐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제국주의 침략에 공모하며 이득을 얻고 있는 한국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무관하지 않다.

광복절은 일본 제국주의의 부당함을 확인하는 날일 뿐 아니라, 오늘 우리가 공모하고 있는 제국주의를 끊어내는 날이 되어야 한다. 한국 안과 밖에서 약소국을 무시하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태, 기업과 정부가 자본의 팽창을 위해 과거 제국주의의 그림자를 좇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나아가서 현실의 제국주의로 고통받는 세계 민중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대해야 한다. 광복절의 의미는 과거를 넘어 오늘과 내일의 해방을 향한 연대 속에서 완성된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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