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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의 어둠을 뚫고 빛의 혁명이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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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의 어둠을 뚫고 빛의 혁명이 남긴 것들

[프레시안books] '물민(物民)들의 자기기술지' 조정환, <빛의 혁명183>

<빛의 혁명183 : 12.3 내란의 어둠을 뚫고 물민광장을 밝힌 제헌활력>은 2024년 12월 3일부터 2025년 6월 대선 즈음까지의 국면과 현장에 직접 밀착하여 의미화한 연대기적 기록이다. 동시에 이 책은 '광장'이라는 집합적 공간과 '촛불'이라는 상징적 실천을 한국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맥락화하는 아카이빙이며, 나아가 이 혁명의 의미와 과제를 미래로 열어 독자에게 건네는 한 정치철학자의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에 언표된 시간은 약 반년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시민주권 시대의 개막을 상징하는 '촛불'의 시간과 경과(대략 200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한 정치철학자-문학평론가-출판활동가의 사유의 궤적, 그리고 이 모두에 연동되어온 시민 다중의 신체와 역량이 함께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서평을 위한 수사나 개인적 감상이 아니다. 왜 그러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덧붙여본다. 우선, '나'가 주어가 되어 한 시기의 정치적 국면을 연대기순으로 기록하는 이 구성은 얼핏 다소 익숙한 한 지식인의 현실참여의 기록으로 보이게도 한다. 근대적 저작 및 소유의 권리가 함축된 '저자' 개념 자체가 우리의 개별신체(individual) 단위에 근거하는 것이니만큼 이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책이나 저자를 연결신체(assamblage)로서 사유할 때조차, 구체적 서술은 늘 어떤 단일(하다고 가정된) 시점과 위치를 '경유'하는 까닭에 이 책은 조정환이라는 이름으로 귀속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러한 저자의 고유의 사유나 단상으로 보이는 그것들은 이른바 '개성', '오리지널리티' 같은 근대적 글쓰기의 언어로 설명될 수 없다. 실제 저자는 "이 책은 내가 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의 신체를 통과한 시민들의 자기기록"이라고 명시한다. 이 책이 개인 회고가 아닌 집합적 기록의 문체를 지향함을 선언한다. 1980년대 저자가 실천한 보고문학/역사적 증언의 글쓰기 전통도 여기서 재가동된다. 저자가 말한 보고문학은 단순한 현장 보고가 아니라, 노동 투쟁 현장에서의 경험을 글쓰기로 전환하는 실천적 시도였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집합적 기록'이라는 말로 환원할 수 없다. 부연하자면 이 집합성은, 이질적 존재의 연결, 다양체의 이미지에 가깝다. (실제 책에는 공/사 구분이 불분명한 오늘날 무수한 발화의 온/오프 플랫폼들과 그곳에서 오간 많은 이들의 흔적이 담겨있다. 누군가들의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말들이 아카이빙된 현장이 이 책이기도 하다.) 그러하니 누군가에게 독점적으로 귀속되는 개성이나 오리지널리티라기보다 특이성의 기록에 가깝다. 즉 이 책은 기존 글쓰기의 강력한 내적 표상들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의 저자는 "사건이 나의 사색과 글쓰기를 강제로 추동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것은 '내가 사건에 선행하여 행위한다'가 아니라 '사건이 나를 만들어간다'는 쪽에 가까운 말이다. 즉, 선험적 주체로서 내가 존재한다기보다, 어떤 사건, 행위들이 만드는 주체 쪽의 이미지를 이 책과 저자는 구현하고 있다. 다양한 광장 안/팎에서의 무수한 사건성과 행위성이 저자의 몸을 관통하는 장면 자체가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 서둘러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저자는 과거 저서에서부터 '촛불'을 다중의 절대민주주의적 섭정의 한 사례로 보았다. 그리고 이번 국면에서 그 가능성이 다시 시험되었다는 관점으로 이 책은 서술된다. '섭정'은 "중심에서 질서를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흩어지는 소산의 과정 속에서 어렴풋하게 새로운 질서의 윤곽이 드러나도록 만드는 것", 나아가 "운동들과 투쟁들의 확산하는 연결망을 통해, 새로운 권력의 윤곽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그림자로서 나타나게 하고, 실체로서의 권력 기구들을 그것에 종속시키는" 비위계적 조율이다. 이 섭정은 다중이 권력을 직접 장악하지 않으면서도 위임된 권력이 삶의 필요에 맞게 행사되도록 지휘·통제하는 방식이다. 즉 '섭정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섭정에 기반한 것이고, 이는 "다중이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의 활력적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면서 … (권력이) 자신의 삶의 필요에 맞게 행사되도록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섭정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관련 서술은 대의(위임)와 직접(직행)의 이분법을 넘어서 아래로부터의 자기조직화가 위임 권력을 '섭정'하는 동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자신의 개념적 이동을 "국민 정체성에서 출발하되 국민다중으로, 다시 물민다중으로 열리는 주체성의 확장"으로 묶는다. '국민다중'은 국가-법적 호명으로 환원되지 않는 집합적 실체이며, '물민다중'은 인간을 넘어 비인간·사물·물질적 환경까지 얽힌 다중을 의미한다. 이 확장은 주권을 국가주권으로부터 해방시켜, 다중의 제헌활력과 구성력에 기초해 민주주의를 다시 사유하려는 기획과 결합한다. 이 사유가 장면으로서 입증되는 곳이 바로 광장이다. 그리고 저자는 광장을 '공통장'으로, 그 4개월의 지속을 '광장마을'로, 그 결집을 '물민의회'로 명명한다. 즉, 물민주권, 다중주권, 생태주권으로의 확장을 요청하는 이 책에는, 시대의 변화와 그 변화가 요구하는 주체 혹은 행위자의 문제가 밀도 높게 놓여 있다.

물민주권, 다중주권, 생태주권으로의 확장은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본 대목이었다. 오늘날 가장 강력하게 요청되는 근본적 전환의 과제에는 생태적 전환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존재론적 전환을 매개로 사유하지 않을 때 여전히 민주주의는 인간만의 것, 그리고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를 구분하며 착취와 수탈을 정당화한 자본주의와의 제휴 역할을 넘어서기도 어렵다. 주권이 더 이상 인간 국가의 틀 속에서만 규정될 수 없다는 점은, 저자의 관점처럼 이번 광장 이후 더욱 사유하고 고민해야 할 또 다른 출발점이자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때의 핵심으로 제안되는 제헌활력이, 헌법 개정의 협의적 의미를 넘어 살아 있는 몸들의 정동·감각이 응집하는 창발적 힘으로 규정되는 것에서도 이 주권 확장의 힘의 원천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국민을 통·뼈가 아니라 '살'로 이해해야 한다'는 이 책의 대목이 바로 그러한 원리의 강렬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근대적 대표-위임 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집회의 활력 속에서 '수평적 의사결정의 구조', '리더 없는 운동'이 단순한 "수평주의의 물신화"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자기조직화'(A. Negri, M. Hardt)나 '자기구성'(J. Butler)이라는 과제를 강조한 논의가 실제 어떻게 지금 이곳 안쪽에서부터 구현되어왔는지 생생하게 환기시켰다. 번역된 저 말의 추상성은 <빛의 혁명183>에서 육체성을 가진 말들이 되었고, 온전히 번역될 수 없을 지금 이곳의 생생한 현장이 곧 내가 서 있는 곳임을 확인시켰다. 이 책의 '섭정' 개념이 바로 그러한 현장을 매개하는 말이기도 했다. 즉, <빛의 혁명183> 속 광장과 우리는 구체적인 이곳의 역사와 정동과 언어를 매개한 살(flesh)의 언어로 와 닿았다. 그리하니 이제 이 책의 글쓰기 방식(참여관찰, 르포, 단상, 보고 등 어느 하나로 범주화할 수 없는)에 대해서도 좀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3. 오늘날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 '자기이론(autotheory)', '자기서사(self-narration)'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일련의 글쓰기 논의였다. 얼핏 '나' '자기'를 쓰기의 원천이자 동기로 삼는듯 보이는 이러한 글쓰기는 마이너리티, 비주류 등의 위치에서 스스로가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밖에 없음을 가시화하는 의미를 지녀왔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글쓰기가 미래의 유력한 글쓰기 형식의 하나여야 하리라 고민하는 중이기도 해서 다소 무리하게 보일지라도 반드시 연결점을 찾고 싶었고, 실제로 이 책과 '자기'와 관련된 글쓰기와 말하기는 분명 충분히 접속하는 것이었다. 이 '자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단지 글쓰기가 아니라 오늘날 이미 광장과 촛불의 현장에서 자기를 말하는 형식(예컨대 집회의 한 형식으로서의 자유발언들)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지난 2016년 촛불의 국면에서도 그러했지만 이번 2024-25년 촛불에서도 '왜 내가 이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나에게 이 자리는 어떤 의미인지' 등의 내용은 단지 '자기소개'가 아닌 이 광장의 핵심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지금 내가 말하는 광장은 온-오프라인 모두를 의미한다. 오프라인에 대해서는 남태령, 한강진이 상징적이었지만 온라인은 무수한 주최, 성격의 온라인 집담회를 지칭한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이 집회의 형식으로서의 '자유발언'은 여성, 트랜스젠더,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 장애인, 청소년, 남성 페미니스트, 전세사기 피해자, 이주노동자 2세, 성노동자, 플랫폼 배달노동자 등등의 무수한 자기 정체성을 먼저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째, 최근 12.3 이후 광장은 2016년보다 훨씬 다양한 정체성의 자기 가시화가 수행되는 자리였다는 것. 둘째, 이들이 선명하게 자기가 누구이고 왜 나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단지 개별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으려는 일종의 연대와 확장에의 바람이 각별히 의식되는 모습이 자주 엿보였다는 것. 즉, 이번 광장은 '개별 당사자주의'로 환원할 수 없는, 좀더 다양한 사건과 상황들의 존재들이 각별히 연대를 요청하고 도모하는 장면이 두드러졌다고 생각한다. 광장에서의 자기를 말하는 형식 및 내용과 <빛의 혁명183>은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앞서 적었듯, 저자는 과거 '보고문학'의 제안자이기도 했고, 기존 학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 책은 일종의 '참여관찰' 형식을 띠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 볼 것은 이 책에는 그러한 기존의 학적 언어 안에 다 담길 수 없는 어떤 연결신체적 정동과 지향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것이 개별신체(조정환)를 경유하면서, 그 개별신체로 표출되는 경험적 순간이 오늘날 '자기'에 대한 말과 글의 또 하나의 양태(특이성)로 발현된 것이다.

또한, 이번 계엄, 내란은 조금 과장하여 일종의 '알고리즘'에 이끌린 '또 다른' 연결신체들의 종착지이기도 했다. (단적으로 극우 유투버와 극우 선동가에 빠진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의 이미지-팩트를 떠올려 보자) 아마도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신은 계속 발빠르게 몸을 바꾸며 변태하는 자본주의×국가의 여러 형상들의 국면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안의 취약함을 공략하고 누수되는 지점을 파고들 것이다. 우리의 글쓰기, 말하기, 사유, 감정, 감각 등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급속하게 알고리즘에 재편되고 있음을 개인적으로 다소 위기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특이성들의 얽힘이 공통의 힘을 이루는 장면이 지워지고, 점점 하나의 '회로' 안에서 비슷한 것을 각자 말하거나, '공통장'의 의미가 침탈되고 있다고까지 여겨질 때가 많다. 우리는 쉽게 데이터로 환원되고 구체적 몸의 감각, 정동의 흔적, 동일화할 수 없는 특이성은 자꾸 길을 잃는다. 그랬을 때 미래의 글쓰기, 말하기의 형식은 어쩌면 쉽게 매끈한 데이터 조합으로 환원되지 않을 구체적 몸들의 거친 흔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내내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 독자로서의 감상과 별개로 다시 이 책의 의미를 환기해본다. 이 책은 세계의 제도와 삶을 만드는 '물민다중'과 '제헌활력'에 대한 믿음을 북돋는다. 그리고 남는 과제(이 책은 해리 클리버의 <파시즘이 도래했다>의 "공부하고, 배우고, 조직하라"는 말로 의미심장하게 마무리된다) 앞에서 우리 스스로 어느 쪽을 향해 길을 만들어 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기를 청한다. 과거 근대적 계몽의 중요한 상징이었던 '빛'이, 오늘날 우리 스스로의 활력이나 구성력을 증거하는 빛(촛불, 응원봉)으로 전화된 장면을 <빛의 혁명183>은 강력하게 증거한다.

* 출간 기념 집담회(2025.8.17.)에서 이 글을 함께 읽은 저자가 '물민기술지'라는 말을 고안해주셨는데, 그 말이 이 글의 취지를 적확하게 담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부제에 반영해 보았다.

▲ <빛의 혁명 183>, 조정환 지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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