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한국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에서 인권침해 사례로 인정된 56명의 해외입양인 가운데 한 명이다. 수십 년 동안 나는 가족과 나라로부터 강제로 잘려나간 사실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이었다는 걸 알고 살아왔다. 진화위의 결정은 늦게나마 확인이었지만, 동시에 깊은 공허함을 남겼다. 이제 무엇이 이어질 것인가?
이번 결정은 한국 해외입양제도에 뿌리 깊게 자리한 불의를 드러낸 출발점일 뿐이다. 여전히 300건 이상의 사건이 미해결 상태이고, 수만 명의 해외입양인, 특히 서류조차 없는 이들은 이 과정에서 배제됐다. 진화위의 권고는 상징적으로 의미 있으나, 구조적 폭력과 사회적 소멸을 직면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절차는 정의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압박 수단일 뿐이며, 가족·문화·정체성과의 단절을 복원할 수 없다. 잃어버린 세월, 문화적 고립, 국가가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역사를 되찾기 위한 지난한 수고를 돌려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소송이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한국정부가 실질적 배상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진화위가 ‘문서’를 피해증거로 요구한다는 사실은 잔혹한 아이러니다. 바로 그 제도가 기록을 조작하고 파기하며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해외입양인들은 부모가 살아 있었음에도 가짜 출신지를 부여받아 고아로 분류됐다. 기록은 가족관계를 지우기 위해 조작되거나 완전히 파기됐다. 피해를 입증하기 위한 문서를 요구하는 것은, 피해자를 철저히 기록 밖으로 몰아낸 제도가 의도적으로 없애버린 증거를 제출하라는 요구다.
그 결과 다수의 해외입양인들이 인정과 배상에서 배제된다. 피해가 덜 유효해서가 아니라, 국가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의는 서류로 판단될 수 없다. 구술증언, 제도적 유형, 역사적 맥락이 함께 증거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화위는 자신이 드러내려 했던 폭력을 반복하게 된다.
해외입양은 인도주의나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추방이다. 조선시대 추방은 사형에 준하는 중형이었다. 사회적 지위와 가족, 공동체, 정체성을 박탈당한 채 먼 곳으로 내몰려 생을 마치는 사회적 사형선고였다.
해외입양은 이보다 더 가혹하다. 추방된 자들은 이름과 역사, 출신만큼은 보존했지만, 해외입양인들은 이름이 바뀌고 정체성이 위조되며 역사가 지워졌다. 국적마저 박탈당했다. 단절만이 아니라, 복원이 불가능하도록 뿌리를 없애려는 시도가 제도에 내장되어 있었다.
우리는 고아로 재분류되어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새로운 정체성에 동화되기를 강요받았지만, 원래의 정체성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폭력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재구성을 원천 차단한 관료적 장치 속에 있었다. 이는 자비가 아니라 죄 없는 형벌이었다. 그렇기에 연민이 아니라 책임이 요구된다.
회복적 정의는 피해의 깊이에 비례해야 한다. 상징이 아니라 재구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모든 해외입양인들에게 서류 여부와 관계없이 국적을 회복시켜야 한다. 모든 입양기록을 공개하고, 가족찾기와 접근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귀환 해외입양인들에게는 주거, 언어, 취업지원이 제공되어야 하고, 강제나 기망으로 자녀를 잃은 가족에게는 보상이 필요하다.
정의는 또한 기록 정의를 포함해야 한다. 한국정부가 조작하고 은폐한 기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진실 검증은 문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구술사, 공동체 증언, 해외입양인 주도의 조사가 모두 진실을 밝히는 정당한 경로가 되어야 한다.
공적 교육, 국가 추모 공간, 해외입양인과 친 가족이 주도하는 진실포럼도 배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배상정책 수립과정에 해외입양인과 친가족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목소리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증거 그 자체다.
한국 민속에서 귀신은 미완의 일을 풀지 못해 이승을 떠도는 존재다. 해외입양인은 이와 비슷하다. 가족과 단절되고, 이름과 역사를 빼앗겨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가 되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온다. 복수가 아니라 필요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이를 상품화하고 정체성을 지우며 시민을 수출한 제도의 산증인이다. 우리의 존재는 한국사회의 양심을 불편하게 만든다. 한국이 외면했던 진실과 직면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설 속 귀신과 다르다. 저승으로 보내는 제례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정, 책임, 복원이다. 우리의 미완의 일은 영적이지 않다. 역사적이고, 법적이며, 도덕적인 것이다. 한국은 해외입양인의 추방된 삶, 파괴된 가족, 매장된 진실과 마주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 해외입양인들은 유령이 아니다. 우리는 시민이다. 그러나 우리의 권리가 회복되고 역사가 되찾아지기 전까지, 우리는 여전히 변두리에서 떠돌 것이다. 그것은 원한이 아니라 기억 때문이다.

(번역 :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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