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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현상'? 불모지 국힘이 만들어낸 '병리적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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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현상'? 불모지 국힘이 만들어낸 '병리적 증상'

[박세열 칼럼] '전한길 현상'은 누가 주물해냈나

유튜버 전한길 씨가 '핫'하다. 전한길은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장동혁을 밀었다. 장동혁은 당대표 결선투표에서 득표율 50.27%를 얻어 당선됐다. 김문수는 49.73%로 두 후보 표차는 불과 2300여표 차이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결선투표 전 이미 장동혁(36.85%)과 김문수(31.54%)의 합이 68%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적극 지지층은 '반탄파'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전한길은 거기 바람에 올라탄 일개 유튜버다.

장동혁과 김문수의 결선투표가 정해졌을 때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지만, 전한길은 조금 더 영악하고 스마트했다. 그에게는 자신이 콕 찍어 밀었던 사람이 당선됐다는 '스토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장동혁을 찍었고, 장동혁이 실제 당선되며 '킹메이커' 타이틀을 획득하게 됐다. 그는 기고만장해졌다. 이번 당대표 선거 의미를 "전한길을 품은 장동혁 후보가 국민의힘 대표로 당선됐다"고 규정했다. 전한길이 당을 장악했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대구시장 경선을 두고 '장사'를 하고 있다. "대학 선배인 이진숙 방통위원장에게 양보"하겠다고 선심을 쓴다. 총선이 한참 남았는데도 "전한길 품는 자가 향후 국회의원 공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남했고 나아가 "전한길을 품는 자가 다음에 대통령까지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건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종교 지도자의 언어다. 전한길은 이미 정치인을 넘어섰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전한길을 '보수의 김어준'에 빗대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틀렸다. 전한길은 김어준도 하지 않은 걸(하지 못한 걸) 하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지지자)를 당원으로 가입시켜서 당을 직접 움직인다(고 믿는다.) 아무리 민주당 내에 영향력이 크다고 하는 김어준이라도 이런 식으로 당에 난입해 분탕질치지 않는다. 김어준은 '종교'라기보단 '팬덤'이다. 하지만 공무원시험 강사였던 전한길은 윤석열을 타고 올라가더니, 반대 진영의 '팬덤 정치'에서 가장 나쁜 것들만 떼어내 기술적으로 극대화 하는 카피캣이 됐고, 급기야 정치와 종교를 결합해 신도를 부리는 '정치 주술사'로 다시 태어났다. (전한길이 낸 책 <너희가 역사의 주인이다>는 거의 '기독교 신앙 고백서' 수준이다.)

그렇다면 '전한길 현상'은 왜 나타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전한길 현상'의 선후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전한길이 국민의힘의 '구원자'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망가진 국민의힘이 전한길이라는 현상을 잉태한 것이다. 요컨대 유튜버 전한길은 국민의힘이 겪는 질병의 '증상'이다.

정치적 발언을 삼가야 하는 자리에 있는 공직자가 최근 사석에서 "국민의힘엔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느냐"는 말을 푸념처럼 했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새로운 집권 세력의 정책을 수행하는 공직자 입장에선, 민주당 뿐 아니라 국민의힘에도 '묵직한' 정치인들이 중심을 잡아줘야 집행의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선 그래도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등 계보를 이어가는 인물들이 꾸준히 나오는데 반해, 국민의힘에선 그런 '인재 양성'이 없다는 것인데,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국민의힘의 '인물난'은 고질적이다. 이명박이 사석에서 "왜 여권(당시 한나라당)쪽에는 이광재,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는가"라면서 노무현에 대한 부러움을 토로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박근혜는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정치를 했고, 문재인 정부를 거쳐 집권한 윤석열은 옛 측근이든, 당대표든 자신에 대항할만한 '싹'을 모조리 잘라버렸다.

보수 정당은 지난 17년간 사람을 키우지 않았다. 아니, 자라나려는 새싹을 아예 잘라버렸다. 박근혜가 '친박계'였던 유승민을 쫒아내고 '가신 정치'로 망한 후에, 국민의힘이 겨우 찾아냈다는 인물이라는 게 공안 검사(황교안)나 특수 검사(윤석열)였다. 심지어 박근혜를 수사하고 감옥 보낸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영입한 것은 사실 엽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메마른 토양에서 무게감 있는 정치 지도자가 자라나긴 힘들다. 판사 출신 장동혁 대표는 정치 초보 1.5선 의원이다. 김문수는 오래 전에 당을 떠나 전광훈류의 '아스팔트 세력'과 10년동안 길거리를 헤맸던 '올드보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건너와 보수 정당에서 살아남은 5선의 조경태, 4선의 안철수와 같은 관록 있는 정치인들을 죄다 날려버렸다. 전한길 현상 또한 국민의힘의 고질병인 '업둥이 정치'의 증상일 뿐이다. 전한길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한길은 이 당이 불모지라는 걸 입증하는 표식같은 것이다.

병리적 현상을 목격했으면 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걸 이용하고 있는 게 바로 국민의힘에서 정치 깨나 했다는 의원들이다. 아마 전한길이 계속된 '아무말'로 신뢰를 잃거나, 지지자들이 떨어져나가거나, 지겨워지거나 하면 그들은 또 장외에서 누군가 '신성'을 찾아낼 것이다. 국민의힘은 항상 그래왔듯이, 또 '오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나마 '검사 출신'까지는 그럴듯 하기라도 했다. 앞으로는 '유튜버'를 찾아내 대선 주자로 세울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상상으로만 끝나지 않을 거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방해 논란 당사자인 전한길 씨가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절차가 시작된 1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에 대한 징계 요구서를 전달하기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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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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