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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수당, 가장 절실한 사람 배제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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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수당, 가장 절실한 사람 배제하면 안 된다

[시민건강논평] 누구나 '아프면 쉴 권리' 보장 받으려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탁할 수 있는 사람, 10만 원이 훌쩍 넘는 '하루 간병비'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간병을 맡길 수 있는 이가 있더라도 대개는 가족 구성원 내 여성에게 간병 책임이 전가된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 해도 간병비가 가볍게 느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가족 간병과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도입된지도 어느덧 10년이다.

환자 입장에서 이 제도는 분명 큰 도움이 된다. 간병인이 상주할 필요가 없으니 가족이 없거나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는 경우에도 걱정이 덜하다. 누군가가 간병을 위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것을 예방하여 가구소득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유급 간병에 비해 약 5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니 경제적 부담도 크게 낮춘다. (☞관련자료 바로가기) 이 제도는 점차 확대되며 미비한 점들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은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까지 추진한다고 하니 입원 환자와 가족이 처한 상황이 이전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난 9월 1일, 시민사회 단체들이 모여 제도 개선을 촉구하며, '중증장애환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차별 철폐를 위한 시민연대'를 출범했다. 연대체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제도의 차별적 요소가 개선되지 않은 까닭이다.

"모든 생활을 환자 본인이 할 수 있어야 (통합병동에) 입원하게 하는 (정부) 기준이 있어요."

병원은 명백한 거짓말까지 동원하며, 거동을 못하는 중증 환자나 장애인의 간호간병통합병동 입원을 거부한다. 의료법 시행규칙에는 장애가 심하거나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간호간병통합병동에 우선적으로 입원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일부 병원의 일탈이 아니다. 조사에 따르면 50개 병원 중 단지 4곳만 중증환자를 수용하겠다고 응답했다.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에서 이윤을 늘리기 위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도 간호 인력을 충분히 두지 않은 탓이다. 재정적으로 더욱 열악하고 간호인력을 충원하는 데 어려움이 더 커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역의료원들조차 중증 환자를 거부하고 있다. 제도가 존재하고 시행규칙에도 중증 환자를 우선하라 명시되어 있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간호사 적정인력 확보 등을 내세우며 9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 역시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간병 부담만 문제가 아니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플 때 또 다른 두려움도 따라온다. 치료 이후에 일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있을지, 일을 하지 못해 소득이 없어지면 생계는 어떻게 꾸려나갈지 하는 것들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 아플 수 있지만, 생산성, 효율성, 근면성실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한국 사회는 우리가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는다. 각 개인은 그저 소리없이 아파도 참고 일하다가 병을 키워 병원을 찾는다. 그러다 코로나19 유행 시기 '아프면 쉬라'는 보건당국의 메시지가 현실과 마찰을 빚고, 동시다발적으로 쉬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발생하자 사회에 균열이 일어났다. 업무 외의 질병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 소득을 보장하는 상병수당 제도가 논의되었고, 현재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내일(9월 9일) 또 하나의 시민사회 연대체가 출범한다. 그간 상병수당과 유급병가 도입, 누구나 아플 때 쉴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해 온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 준비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하는 것이다. 본 사업이 예정된 상병수당제도가 마냥 잘 만들어지길 손놓고 기다리기만 할 순 없기 때문이다.

2022년 시작한 시범사업은 이미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 은퇴하고도 소득보장이 충분치 않아 일을 해야만 하는 65세 이상 노동자는 제도의 대상이 되지 않고,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신청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며, 이주노동자도 배제되었다. 제도의 대상이 되더라도 최저임금의 60%라는 낮은 수준의 급여는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보장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급여를 받기까지 대기기간을 두고, 그 기간에는 유급병가제도가 소득을 보장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결국 상병수당제도 역시 가장 절실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아플 때 걱정없이 쉴 수 있도록 충분한 소득보장을 구현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

제도를 만들고 보완하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경우 의료법 시행규칙에서 중증 환자 우선 원칙을 명시했음에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상병수당과 유급병가 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현실에서 대체인력이 없다면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제도 마련을 넘어, 사회 전체가 권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실천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당연한 권리로 자리 잡아야만 비로소 현실에서 제도가 역할을 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제도가 반복해서 한쪽으로 기울고, 가장 절실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생산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 구조, 돌봄과 재생산 영역을 주변화하는 문화,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 논리가 제도의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즉 제도의 실패는 사회구조와 권력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활동은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원래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을 권리의 언어로 호명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권리를 둘러싼 인식, 문화, 실천을 변화시키며, 시민권력과 국가권력, 자본권력 간의 관계를 새롭게 재조정해나가는 실천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차별 철폐와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을 위한 연대체들의 출범은 바로 그 변화를 향한 첫 걸음이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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