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123개 국정과제 공개, 상당 규모의 정부 조직 개편, 그리고 2026년 예산안까지 공개되면서 앞으로 5년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에 대한 대강의 윤곽이 확정되었다. 이전 정부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AI 3대 강국'을 중심으로 한 산업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AI는 경제·사회는 물론 외교·안보 전반에 대변혁을 일으키는 범용기술이자 국가 전략자산으로, 범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하여 독자적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국가 AI 대전환을 추진"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의지는 말할 수 없이 비장하다.
'AI 고속도로', '세계 1위 AI 정부', 'AI 기본사회', 'K-AI 시티', 'AI 디지털시대 미래인재' 등 그야말로 정부 혁신과 경제 성장, 도시, 복지, 교육에 이르기까지 거의 만능에 가까운 해법의 지위에 AI가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공개했던 326쪽의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에는 'AI'라는 단어가 58번, 그리고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12번 모두 합쳐서 무려 70번이나 언급된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무리 미래 범용기술로서의 잠재력을 갖더라도 특정 기술 용어가 국가의 총괄적 국정과제의 중요 지점에 이토록 빈번하게 언급된 전례가 있을까? 참고로 사회 분야에서 가장 흔하게 합성어 일부로 나왔어야 할 '복지'는 58번, '성장'은 39번, '에너지'도 39번, '노동'은 29회, 그리고 '권리'는 26회였다.
경제 성장과 복지의 보증수표로 간주된 AI
무엇보다 AI는 한국경제를 되살릴 마법의 지팡이로 간주 되었다. 국정과제에 이어 발표된 기획재정부의 경제 성장전략 'AI 대전환·초혁신경제 30대 선도프로젝트'의 절반 이상은 모두 AI와 직접 연관된 과제다. 정부는 AI를 "인구충격 등에 따른 성장 하락을 반전시킬 유일한 돌파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30대 선도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AI 복지와 고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자리 매칭, 직업교육, 복지지원 등 AI를 활용해 그 지역에서 가능하고 개인 상황에 적합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계획한 점이다. 우리 복지의 최대 이슈가 신속하게 개인별 맞춤 정보를 제공해주는 거라는 주장의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연장선에서 이번 정기국회 역시 어느 정도는 'AI 국회'가 될 전망이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공개한 올해 정기국회 입법과제 목록을 보면, '인공지능데이터센터 진흥법', '인공지능산업 인재육성 특별법', '인공지능산업 육성 및 강국 도약 특별법', '데이터산업진흥 이용촉진법',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 등 이른바 'AI 입법'이 줄줄이 대기하는 상황이다. 2026년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GPU 1만 5000장 구매예산 2.1조 원을 포함하여 AI 직접 예산만 10조 원 이상으로 전년 대비 무려 3배가 늘었다. 한마디로 정책도 입법도 예산도 AI를 위해 올인하겠다는 것이다.
AI의 사회적, 생태적 리스크 대처는 준비되어 있을까?
그런데 과연 AI가 약속한 강력한 경제 성장과 더 나은 복지사회에 대해 시민들은 그저 확신에 찬 기대만 하면 될까? AI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발생할 충격과 리스크는 무시할 수준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AI가 바꿔줄 것이라는 새로운 경제와 전환된 사회, 편리한 일상은 생각보다 근거가 취약하고, 오히려 해로운 충격을 줄 가능성은 생각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복지 분야에서 그렇다.
우선 고용부터 살펴보자. AI를 경제와 산업, 사회와 복지 전 분야에 걸쳐 신속하게 적용하여 생산성을 올리겠다고 하지만, 이는 상당한 고용 충격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에서 대부분 기업은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한 채, 추가로 AI 투자를 통해 노동자들의 업무능력 향상을 도모하려는 유인이 적다. 그보다는 AI 투자를 통해 기존 노동자들을 대체함으로써 당장 '비용을 줄이는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생성형 AI가 주로 에이전트 AI로 진화하고 자동화 로봇에 탑재되는 쪽으로 진화하는 추세를 보면 이 방향은 강력하다.
둘째로, 소비자 개인들이 AI를 이용하여 그 어느 때 보다 편리한 일상을 누리게 해줄 거라는 기대는 어떤가? 정부는 '모두를 위한 AI'를 통해 모든 사람이 배경이나 기술적 전문성과 관계없이 AI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서비스를 시민들이 누리게 해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사실 현재의 생성형 AI는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디지털 기술보다 배우고 익히기 쉽다. 일반 소비자는 음성이나 이미지, 문자를 통해 대화 형식으로 쉽고 저렴하게 AI 채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개인 소비자들이 주로 접하게 될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에 통합된 AI는 기존의 가전제품보다 더 사용하기 쉽다. 문제는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노동자로서 업무 과정에서 생산성 향상 도구로 AI를 이용하는 경우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기업에서 직업 훈련 등을 통해 해결할 문제다.
AI 국가가 당연하게 더 복지국가가 되는 건 아니다
세 번째로 하루빨리 누구나 자주 일상적으로 AI를 사용하도록 촉진하는 것이 공공 서비스나 복지 서비스에서 급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매우 신중하게 공정성과 형평성을 고려해서 공공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해주어야 하는 영역에 충분한 검증 없이 AI를 서둘러 도입하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바로 이 때문에 OECD도 정부가 AI 도입으로 "효율적인 내부 운영과 보다 효과적인 공공 정책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 하면서도, 편견의 증폭, 시스템 설계의 투명성 결여, 데이터 프라이버시 및 보안 침해등 공공 부문에서 통제되지 않은 AI 배포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공적 책임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복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뛰어난 소통 능력과 표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장애인을 안내하는 로봇이나 노인 돌봄 로봇 등을 도입해서 고달픈 돌봄 노동을 보완하는 건 돌봄 노동 제공자나 수혜자 모두에게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섣불리 돌봄 노동을 대체할 목적으로 AI 로봇 등을 개발하여 투입하거나 AI 서비스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발생할 위험과 부정적 영향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거나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AI가 아무리 큰 잠재적 능력을 보유했다고 해도 결국 우리의 삶을 도와주는 도구 가운데 하나다. 인간에 버금하는 인공일반지능(AGI)는 아직 연구실을 넘어 공공 정책에서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 AI가 다른 범용기술과 마찬가지로 우리 삶을 도와줄 가장 최신의 도구라면, 강력한 잠재력에 비례해서 오용의 위험 역시 작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사적 수익성을 추구하는 극소수 빅테크의 결정이 아니라 공적인 가이드라인과 사회적 이익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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