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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사건 사형 구형에서 비자금 수사 스타 검사까지, 안강민의 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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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사건 사형 구형에서 비자금 수사 스타 검사까지, 안강민의 세 얼굴

[기고]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안강민, 공안조작의 집행자에서 '스타 검사'까지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안강민(安康民, 1941~) 항목의 부제가 눈을 사로잡았다.

"'박동운 간첩조작사건'과 '학림사건' 담당 검사로 고문 묵인하고 사형 등 구형."

그리고 같은 항목 말미에는 괄호 안에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1995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수사 지휘하며 스타 검사로 활약)."

괄호가 중요하다. 고문을 묵인하고 간첩을 만들던 사람이 나중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면서 '스타 검사'가 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공안검찰의 묘한 속성이다. 권력이 바뀌면 같은 손으로 다른 일을 한다. 그리고 새 일을 잘하면 과거의 일은 지워진다.

1973년 남산 부활절예배, 기도를 내란음모로

안강민은 1941년 태어났다. 검사로서 그의 행보가 처음 뚜렷하게 기록에 남는 것은 1973년이다. 그해 4월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부활절연합예배에서 유신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유신체제에는 내란음모로 둔갑했다. 안강민은 이 사건을 내란음모로 조작하는 데 관여했다.

이 장면을 영국에서 바라보면 기묘한 기시감이 든다. 17세기 영국의 종교재판에서 청교도들이 신앙을 이유로 반역죄로 몰렸던 장면과 구조가 닮아 있다. 물론 1973년 한국은 17세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검사의 공소장 한 장이 예배를 내란으로 만드는 데는 단 며칠이면 충분했다.

1981년 학림사건, 고문은 보았지만 눈을 감았다

안강민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중대한 것은 1981년 학림사건이다. 전두환(1931~2021) 정권 출범 직후, 사회과학 서적을 출판하던 광민사 대표 이태복을 비롯해 서울대와 각 대학의 학생운동·노동운동 활동가 수십 명이 영장도 없이 잡혀갔다.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등지에서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이 자행됐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활약한 현장이었다.

안강민은 이 사건의 수사 주임검사이자 1·2심 공판 검사였다. 피의자들은 법정에서 고문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나 안강민은 이를 묵살하고 이태복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사형을 포함한 중형 구형이 잇따랐다. 이후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는 학림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부당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들은 2010년 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안강민이 구형했던 무기징역과 중형들이 30년 만에 무죄로 뒤집힌 것이다.

세계사 속의 동류, '무죄'를 '유죄'로 만드는 기술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인물이 떠오른다. 소련의 로만 루덴코(Roman Rudenko, 1907~1981)다. 스탈린(1878~1953) 시기 검찰총장으로서 대숙청 재판을 주도했고,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을 법적증거로 활용하는 데 전문성을 발휘했다. 그는 나중에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소련 수석검사로 나치전범들을 기소하기도 했다. 어제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쪽에서, 오늘은 죄인을 처벌하는 쪽에서. 같은 손, 다른 역할. 안강민의 궤적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미국에서는 J. 에드거 후버(J. Edgar Hoover, 1895~1972)를 떠올릴 수 있다. FBI 국장으로 48년을 재임하며 공산주의자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시민의 인권을 짓밟았다. 그러나 닉슨(Richard Nixon, 1913~1994) 같은 대통령들도 후버의 약점을 잡아두었다. 권력은 서로를 이용하며 공생했다. 한국의 공안검찰과 권력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1992년 초원복집, 수사의 방향을 비틀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부산 초원복집 사건'. 부산지검장, 경찰청장, 안기부 지부장 등 국가기관 핵심인사들이 모여 대선에 개입하는 모의를 한 것이 도청으로 드러났다.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었다.

당시 서울지검 1차장검사였던 안강민은 이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그런데 수사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선거개입의 본질을 파고드는 대신 수사의 초점이 엉뚱한 방향으로 비틀렸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는 다름 아닌 고영주(1949~)였다. 훗날 『반헌법행위자열전』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될 두 사람이 같은 사건에서 수사를 왜곡하는 편에 함께 섰다.

'스타 검사'의 탄생, 권력이 바뀌면 역할도 바뀐다

1995년, 정권이 바뀌었다. 김영삼(1927~2015) 정부 시절, 노태우(1932~2021)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대검 중앙수사부장 안강민이 이 수사를 지휘했다. 전두환(1931~2021)과 노태우를 구속 기소하는 역사적 장면의 주역이 됐다. 언론은 그를 '스타 검사'라고 불렀다.

여기서 잠시 멈춰야 한다. 1981년 학림사건에서 고문을 묵인하고 무기징역을 구형하던 검사가, 1995년에는 군사쿠데타 수괴들을 구속하는 검사가 됐다. 같은 사람이다. 권력만 바뀌었다. 이것이 한국 공안검찰의 본질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권력을 따른 것이다. 그 권력이 민주화된 권력이 됐을 때 그는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검사가 됐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정의는 눈이 멀어야 한다(Justice must be blind)."

권력을 보지 말고 오직 사실과 법만 보라는 뜻이다. 안강민은 눈이 멀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권력을 보았다. 권력이 고문을 묵인하라 할 때 묵인했고, 권력이 전직 대통령을 잡으라 할 때 잡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국검찰은 다시 한 번 권력과 법 사이에서 어느 쪽을 볼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았다.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그 반복이 비극이냐 희극이냐는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안강민의 이름 앞에 "고문 묵인"을, 이름 뒤 괄호 안에 "스타 검사"를 나란히 적었다. 그 괄호가 이 나라 검찰의 자화상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2008년 한나라당 공심위원장 시절 안강민. ⓒ연합뉴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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