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고 대통령실·정부도 동조하고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압박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도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9개 조간 종합일간지 중 8곳에서 정부·여당의 사법부 압박을 비판하는 사설이 실리는 등 여론 악화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박용진 전 의원은 16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단 전제해야 할 것은 지금의 사법불신은 사법부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며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석방 결정을 언급하면서도 "그러나 신중해야 될 필요가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의원은 "대법원장 사퇴를 언급한 경우의 사례를 역사적으로 뒤져보면 1993년 김덕주 대법원장이 사퇴한 게 거의 마지막"이라며 "그때도 사법파동이라고 하는,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내부의 에너지가 넘치고 또 본인의 부동산투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물러난 것인데, 이 문제가 집권 여당의 요구에 의해서 사퇴론이 거론되고 커지게 되면 이건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박 전 의원은 또 "대통령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며 "대통령은 민생, 한미 관세협상, 규제개혁, 산재 등 우리 생활에 밀착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국정을 제대로 만들어가고 풀어가고 있는 중인데, 지금 오늘 모든 신문의 사설 톱이 이 문제가 되고 또 1면에 배치되게 되는 건 여의도발 정치이슈가 대통령에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날 <한겨레>를 제외한 8개 신문은 모두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이 사태를 1면 기사로 다룬 곳은 <한겨레>를 포함한 9곳 전부였다.
보수 성향 일간지들은 물론,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경향신문>도 '여당·대통령실 대법원장 사퇴 압박 부적절하다' 제하 사설에서 "여당 대표와 사법부를 담당하는 상임위원장이 사법부 수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도, 대통령실 대변인이 그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한 것도 매우 부적절하다"고 정면 비판했다.
<경향>은 "조 대법원장 사퇴론은 자칫 사법개혁에서 사법독립 침해 논란으로 쟁점을 옮기고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이 결집할 명분과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지적하고 나아가 이번 사태가 "헌정질서를 회복하자면서 헌정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사설 제목은 '대통령·여당의 사법부 인식과 조희대 사퇴 압박, 위험하다'였다. 신문은 "삼권분립 훼손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언"이라며 "국회가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발상은 역사에서 드러난 권한 남용과 과오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정치적 개입을 막기 위해 법으로 임기를 보장하는 법관을 정치적 압력으로 물러나게 한다면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신문>은 '與 사법부 겁박, 선을 넘는다' 제하 사설에서 "조 대법원장의 다분히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에 여당이 이 정도로까지 집중포화에 나서야 하는 것인지 고개를 젓는 사람이 많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재판 독립을 강조한 것을 정권에 맞서는 정치 행위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며 "사법부 수장의 거취를 정치적 이해관계나 감정에 따라 흔든다면 국민은 재판의 공정성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는 조 대법원장 사퇴 압박을 넘어 '탄핵'까지 거론되고 있다. 박상혁 민주당 원내소통수석부대표는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을 지키는(것)"이라고 하면서 "탄핵은 항상 최종적이고 최후적인 수단"이지만 조 대법원장이 "(탄핵소추) 대상임은 명백하다. 지금처럼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시킨다면 거기에서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했다.
박 수석부대표는 조 대법원장의 경우 탄핵소추 사유가 될 만한 위헌·위법한 행위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 정치에 개입하려고 했던 것만큼 반헌법적이고 위헌적 행동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 판결을 들었다.
박용진 전 의원은 당 내에서 탄핵까지 거론되는 현 상황에 대해 "대법원장 탄핵도 헌법 65조 2항에 따라서 (국회 재적) 과반이니까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탄핵소추가 가능하다"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이전에 탄핵을 했을 때는 다 야당 시절이다. 정부 여당이 탄핵을 하는 경우는 야당 시절에 했었던 탄핵과는 그 무게와 파급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도 많은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전 의원은 나아가 "강성 지지층은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불가피한 힘이지만, 진정한 지도자는 지지층의 요구에도 '노(NO)'라고 얘기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전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 지지층과 우리 진영의 요구·분노를 자제시킬 때도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민주당에 그런 지도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고언했다.
라디오 진행자가 '현 지도부가 그런 용기를 보이고 있다고 보느냐'는 취지로 되묻자 박 전 의원은 "그 진정한 용기를 맨날 발휘할 수는 없지 않느냐. 결정적일 때 그렇게 해 주리라고 기대하고 응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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