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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졸업 후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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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졸업 후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일반고 진로교육과 불평등

미래를 두려워하는 학생들과 함께 길을 잃다

수저계급론·헬조선 담론이 퍼져 있던 2015년, 교사가 되어 처음 부임한 학교에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요)!"을 외치던 학생들을 만났다. 그 중엔 '일베'에 심취해 있던 학생도 있었다. "너는 평생 노가다나 하면 살 거다!"라는 친구의 말에 분개한 학생이 펀치를 날렸고, 복도에서 치고 받는 싸움이 벌어졌다.

고 3 담임이던 2020년엔 코로나와 함께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담론이 창궐했다. 여기저기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어요"라며 유독 미래를 불안해하던 학생이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려다 가까스로 구조됐다.

그리고 2025년, 교육과정 부장으로 수많은 학생들의 질문과 맞닥뜨렸다. "저는 아직 진로를 못 찾았는데 어떡해요?", "나중에 뭐 해 먹고 살죠?"

일반고에서 진로·진학 지도를 하며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성적 중하위권, 진로 미결정, 대학 비진학 학생들이었다. 상담은 종종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등급을 높여라"라는 공허한 결론에 이르렀고, 대학 비진학 학생에겐 그 말조차 해 줄 수 없었다. 이미 진로 방향이 설정된 학생을 코칭하면 교사로서 효능감을 느꼈지만, 진로 미결정 상태이거나 진로 성숙도가 낮거나 진로 불안이 높은 학생과 상담할 때면 무력감의 늪에 빠져들었다.

노하우를 얻으려 사방팔방 수소문했다. 상위권대 진학 지도를 위한 자료와 정보는 넘치지만 취약한 학생들을 위한 진로 지도 방법이나 정보는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진로교육이 가장 절실한 학생들이 가장 진로교육에서 소외되어 있는 아이러니. 지난 10년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 있다. '이 아이들의 졸업 후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진로'라 쓰고 '진학'이라 읽는다

산업의 고도화, 미래 직업 세계의 다변화에 맞춰 우리나라에서도 학교 진로교육이 도입되고 꾸준히 발전되었다. 2001년 국가 차원의 진로교육 방안 수립된 이래, 2011년 진로전담교사가 배치되고 2015년에는 진로교육법이 제정되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도입으로 진로 중심 교육과정이 강화되고 2016년 교과 연계 진로교육이 확대됐다. 특히 2017년 고교학점제 추진 방향 발표와 2022 개정 교육과정 도입으로 고등학교 진로교육이 더욱더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진로교육은 일반고의 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진학 지도로 바뀌어버린다. 일반고에서 진로란 대입의 수단으로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입시 전략으로서 진로활동이 의미있는 건 일부 상위권 학생일 뿐이다. 성적 중하위권 또는 대학 비진학 학생들에게 학교 진로교육은 자신의 '진짜 진로'를 찾는 것과 무관한 것이 된다.

교과 연계 진로교육의 방향은 거꾸로다. 학습과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로를 발견하는 대신 처음부터 진로를 정해놓고 그것에 학습을 인위적으로 끼워 맞춘다. 이미 진로를 결정한 학생들이 관련 탐구를 심화해나가는 데 유용하지만, 진로 미결정 학생은 소외와 불안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이는 학교 부적응과 자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최근 인위적 진로 연계보다 교과 성취기준상 역량을 보여주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대학이 그런 것은 아니다. 주요대 입시 준비를 위해 진로 연계 활동을 하는 것은, 전국 고교에서 이미 10여 년 가까이 이뤄져 온 관행이 되었다. 어느 진로교사의 표현대로, 일반고에서는 '진로'라 쓰고 '진학'이라 읽는다.1)

물론 진로와 진학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진학은 원래 전 생애 진로를 설계하는 과정 속에 위치해야 함에도 현실에서는 진학 자체가 목표가 되어 기술적·전략적 접근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진학과 직접 연결되지 않거나 진학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진로를 가진 학생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일반고에서는 상위 개념인 진로가 하위 개념인 진학에 종속되면서, 진로교육이 배제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의 이행, 그리고 불평등

문제는 '진로교육에서 주변화'가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여러 연구에서는 고교 시절 적절한 진로 지도의 결핍이 노동시장 이행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음을 지적한다.2), 3), 4)

특히 진로 미결정 상태의 대학 비진학 청소년들은 고교 졸업 후 비경제활동 인구나 니트(NEET)로 이행하게 될 확률이 높다.2) 취업을 하더라도 단기적이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일반고 출신 비진학 청소년의 경우 대학 외 진로에 대한 준비 없이 노동시장에 내던져지므로 사회 취약 계층으로 전락하기 쉽다. 대학 비진학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학교 진로교육에서 비진학 청소년의 주변화는 이들의 불리한 위치를 재생산하거나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3일 대구 경북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학을 위한 진로교육에서 삶을 위한 진로교육으로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 진로교육을 진학의 프레임에서 꺼내오자. 진학을 위한 진로교육을 넘어 삶을 위한 진로교육을 하자. 모든 학생의 졸업 후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기 위한 관점에서 진로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풍부한 경험의 장으로서의 학교 △학교 안팎 졸업 전후의 연결 △ 다양성 고려가 필요하다.

첫째, 학교가 풍부한 상호작용과 경험의 장이 되어야 한다. 크럼볼츠와 바비노는 '만족스러운 진로를 찾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즐거움을 추구하다 찾아오는 우연한 기회를 포착한 것'이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작용와 경험이 실제적이며 풍부해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고 여러 분야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정의 문화와 환경이 이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정 간 격차를 생각할 때 학교와 지자체,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즐거움과 우연한 기회는 의외로 많은 순간에 찾아온다. 학생들이 스스로 주도하고 협력하여 활동할 때, 혹은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눈을 반짝일 때다. 교과, 창의적 체험활동을 넘어 선배, 또래, 교사와의 상호작용과 모델링 등 잠재적 교육과정이 진로 선택의 우연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성향이 다른 다양한 학생들이 진로 설정과 설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학교가 우연한 기회가 풍부하게 포진된 플랫폼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학교 안팎 졸업 전후를 연결하자. 일의 감각, 진로의 지평은 학교 밖 '진짜 세상'을 만날 때 활짝 넓어진다. 프로젝트 학습, 문제 기반 학습(PBL) 등을 통해 교과 연계 진로교육을 할 수도 있고,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방과후, 방학 프로그램을 통해 현직자와의 만남과 협업, 멘토링, 인턴십 등을 진행할 수 있다. 지역사회와 연계도 좋은 방법이다. 세종시 해밀초중고가 연합하여 진행한 '해밀마을 진로인턴십'처럼, 지역의 가게, 기업, 공공기관 등에 학생들이 찾아가 인턴십을 할 수 있다. 학교 밖 현직자와의 만남은 청소년들에게 사회자본을 형성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졸업 전후 청소년 진로교육과 청년 정책의 연계도 중요하다. 학교와 지역 청년 센터가 협업하여 '예비 청년' 대상 전환교육을 강화하자. 고등학교-기업, 고등학교-대학 간의 연계도 가능하다. 특히 대학 비진학 청소년은 졸업 전에 개인정보 동의를 받아두면, 졸업과 동시에 청년 정책 대상자로 전환되어 맞춤형 지원을 지공함으로써 소속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줄일 수 있다.

셋째, '모든' 학생의 진로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학생들의 다양성이 중요하게 고려하자. 다양성을 포용하며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지원하는 진로교육을 모색하자. 이는 일반고 내 비진학 청소년뿐 아니라, 저소득층 청소년, 이주 배경 청소년, 장애 청소년 등 기존 진로교육에서 누가 주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피는 일에서 시작된다. DEI(다양성, 평등, 포용)와 같은 사회정의의 원칙을 학교 진로교육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학생들 내 다양한 특성이 진로교육의 방법과 과정에서 고려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자.7)

이는 고교 체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대다수 학생이 일반계고에 가며 직업계고에 대한 낙인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일반계고에 부적응하는 학생들은 뚜렷한 대안 없이 부유한다. 특히 일반고 출신자들은 입시 중심의 일반고 시스템에서 주변인으로 존재한다. 이들을 위한 거의 유일한 제도는 직업위탁교육 제도이지만, 이마저도 낙인과 참여 시기 제한, 지역적 불균형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제도의 보완과 함께, 일반고와 특성화고 간 학점 교류나 공동교육과정의 직업교육 강화 등 일반고에 진학했지만 당장 특성화고 전입은 어려운 학생들, 직업교육을 고민하며 경험해보고 싶은 학생들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고정되지 않은 미래,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상상하는 교육

불안정한 미래의 직업세계에서 남는 건 '나의 브랜드' 뿐이라며 각자도생을 강조하는 시대, 청소년에게 '진로'는 원자적 개인의 생존 경쟁이자 공포의 키워드가 된다. 하지만 미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아세모글루와 존슨이 말한 것처럼 '인간이 어떤 내러티브와 규범, 길항권력,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 나가느냐'에 따라 기술의 경로도 달라질 수 있다.5)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행위 주체이다. 미래 직업세계에 일방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넘어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청소년이 직접 탐구하게 하자. 인공지능 시대, 일자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어떤 노동시장을 만들어갈지 청소년이 함께 상상하는 기회와 장을 마련하자. 학교 밖 사회로 진입하기도 전에 불안으로 고립되거나 진입 후 부유하다 삶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 참고문헌

1) 남재욱, 김영진, 박나실, 서명희 (2024). 세종 맞춤형 진로교육을 위한 중장기 계획 연구.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

2) 윤민종, 김기헌, 한도희 (2015). 대학 비진학 청소년 역량개발 정책사업 추진방안 연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3) 은기수, 박건, 권영인, 정수남 (2011). 청년기에서 성인기로의 이행과정 연구II_취약위기계층 청년의 성인기 이행에 관한 연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4) 홍진주 (2020). 청년니트의 사회적 배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5) <권력과 진보>(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펴냄)

6) <빠르게 실패하기>(존 크럼볼츠·라이언 바비노 지음, 도연 옮김, 스노우폭스북스 펴)
7) Manning‐Ouellette, A., Dickinson, L. Y., Gutierrez, K. J., & Gilly, E. F. (2024). The mirage of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Exploring career development professionals’ pedagogy and praxis. The Career Development Quarterly, 72(4), 366-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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