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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실용' 사이에 선 이재명 정부, 비핵화 '무음' 처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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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실용' 사이에 선 이재명 정부, 비핵화 '무음' 처리부터

[정욱식 칼럼] 한미 정상, 한미연합훈련 유예 선언으로 돌파구 만들어야

"한반도 비핵화"는 1991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채택 이후 역대 정부가 견지해온 '원칙'이다. 이재명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유엔 총회 연설에서 'E.N.D'를 앞세워 비핵화의 전망을 되살려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교류(Exchange)와 관계정상화(Normalization)를 통해 비핵화(Denuclearization)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은 2021년 이래 비핵화는 끝난 얘기라는 입장을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핵무력은 '국체'이자 '국법'이기 때문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조선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입장까지 내놨다. 그리고 한국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바로 이 대목에 이재명 정부의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와 '비핵화 원칙'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이 대통령이 9월 22일자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미정상회담에서 "핵무기 생산을 동결하는 내용에 합의하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러한 고심의 발현이다. 하지만 동결 자체도 쉽지 않은 과제일뿐더러 이것이 '단계적 비핵화'의 일환으로 거론되면, 조선과의 간극을 줄이는 것은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나는 '침묵이 금'이라고 본다. 이재명 정부가 가급적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거나 묵인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이재명 정부의 입장은 뭐냐'가 묻는다면, '핵위협과 핵무기 없는 한반도와 세계를 향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일반론적인 언급으로 갈무리하는 게 좋다고 본다.

비핵화라는 원칙은 '무음'으로 설정해놓고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조건과 환경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것이 실용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핵화 '벨소리'가 울릴수록 비핵화는 멀어진다는 점은 톡톡히 경험해왔다. 더구나 조선은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자신한다. 비핵화 요구를 핵무력 증강의 기회이자 시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방식으론 조선의 결심을 되돌릴 방법도 마땅치 않다.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여 이재명 정부는 비핵화를 무음 처리하고 동결부터 추진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에이펙(APEC) 정상회의 즈음 열릴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연합훈련 유예를 선언하고 조선에 대화를 제의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잡을 수 있다. 현재 구도에서 이보다 현실적이고 유용한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이 최근 연합훈련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데에도 '대화 여건을 조성해달라'는 무음의 외침을 깔고 있다.

또 북핵 동결의 상응조치를 한미간에 긴밀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대개 대북 제재 완화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바로 한미동맹도 조선의 핵동결에 상응하는 군사적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한미일 연합훈련 조정, 미국의 전략 자산 전개 축소, 유사시 조선 점령과 통일을 목표로 삼아온 한미동맹의 목표 배제 등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조선도 군비통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요구를 내려놓으면 만날 의사가 있다고 말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9차 당대회에서 '국방분야에서 핵무력 건설과 상용무력(재래식 군사력) 병진노선'을 선포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핵군비통제 협상에 대비한 포석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재명 정부가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백미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삼기를 바란다. 실용은 국익, 실현가능성, 미래지향성을 두루 갖출 때 그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나는 평화협정이 이에 해당한다고 본다.

"평화가 경제"인 시대에 평화협정이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또 조선의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도 평화협정이다. 평화협정은 "적대 관계와 교전(혹은 휴전)의 종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평화협정은 '핵위협과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데 강력한 추동력을 부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평화협정은 전시작전권 환수를 위한 조건 충족과 남북관계의 악화 사이의 '악순환'을 끊고 전작권을 환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자 환경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이재명 정부는 평화협정을 비핵화 완료나 그 이후에 체결할 '상응조치'로 간주해온 오랜 관성을 깨고 '2027년 이내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평화를 정착하는 것은 한미가 조선에 주는 선물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이어질 글 : 2027년 이내, 평화협정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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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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