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문화방송)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어머님께서 농성을 시작한 지 23일입니다. 상암동 MBC 본사 앞 농성장의 하루는 긴 듯하면서도 금방 갑니다. 농성장을 정돈하고, 조문객을 맞고, 하루 세 번 선전전도 하고, 중간중간 회의를 하거나 서면 작업을 하며 이리저리 바쁩니다. 개인적으로 저와 어머님은 호남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어머님과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틈틈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농성장을 만들고 지키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입장 표명, 명예 회복과 예우, 비정규직 고용구조 및 노동조건 개선입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요구는 비정규직 고용구조 및 노동조건 개선으로, 기상캐스터를 정규직화하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오요안나의 죽음은 비정규직, 프리랜서를 쉽게 쓰고 버리는 방송국 생태의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MBC는 지난주에 있었던2차 교섭에서 기상캐스터 정규직화만 포기하면 교섭을 재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조건을 철회하지 않으면 협상하지 않겠다'라는, 사실상 교섭을 거부하겠다는 뜻입니다.
기상캐스터를 정규직화하라는 요구는 타협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저쪽을 보면 엔딩크레딧에서 만든 <방송 비정규직 투쟁사> 현수막이 있습니다. 그간 꾸준히 이어진 다종다양한 직종에 대한 근로자성 인정 결정처럼, MBC에 소속되어 MBC의 이름을 달고 MBC의 지시에 따라 일한 노동자를 MBC 소속 근로자로 인정하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입니다. 정규직을 사용할 업무에 비정규직, 프리랜서를 사용해온 잘못을 이제라도 바로잡으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입니다.
MBC는 기상캐스터 정규직화를 노골적으로 반대하며 ‘고용 공정성’을 들먹였습니다. MBC가 주장하는 ‘고용 공정성’의 진짜 의미는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계속해서 구별하겠다는 것입니다. 안정되고 안전한 일자리를 모두가 아니라 선택된 일부에게만 선심 쓰듯 허락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불평등의 선을 긋고 갈라치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직군을 만드는 것으로는 공정한 고용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 프리랜서를 차별하고 간단하게 치워버린 그간의 악행을 반성하고 개선하지 않는다면, MBC는 어떤 노동자의 고용도 공정하게 할 수 없습니다.
MBC는 기상캐스터 4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방송사 취업에 도전하는 수많은 사회 초년생, 취업 준비생'의 기회를 박탈한다고도 했습니다. MBC는 사회 초년생, 취업 준비생을 운운할 자격이 없습니다. 기만입니다.
MBC는 그 수를 다 파악한 적도 없는, 셀 수 없이 많은 오요안나들의 꿈과 열정을 착취해 이윤을 창출하고 있습니다.방송작가 오요안나, FD, AD, PD 오요안나, 리포터 오요안나, 아나운서 오요안나, CG와 그래픽 디자이너 오요안나가 이 순간에도 정규직 공채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노동자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지금 이렇게 빛나는 MBC의 톱니바퀴, 장작으로 쓰고 버려집니다.
청년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기상캐스터 정규직화가 아니라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MBC, 노동자를 함부로 쓰고 쉽게 버리는 MBC, 질 나쁜 위험한 일자리를 끊임없이 양산하는 MBC입니다.
우리는 MBC가 고인과 유족에게 무례를 범하면서까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기상캐스터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MBC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MBC의 오요안나 투쟁을 시작으로 모든 방송사, 모든 직종이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톱니바퀴가 없으면, 장작이 없으면 비정규직을 갈아 불을 밝히는 MBC는 무너집니다. 방송 노동자들에게 간절히 바랍니다. 오요안나와 함께 MBC를, 방송사를 바꿉시다.
곧 추석 명절입니다. 곡기를 끊은 채 자식을 위한 차례상을 만들어야 하는 어머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농성장을 함께 지키는 이들, 오요안나의 삶을, 열정을, 아픔을, 죽음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이 투쟁을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부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MBC 계속 붙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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