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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살아야 하나" 매일같이 고민하던 환자를 바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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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살아야 하나" 매일같이 고민하던 환자를 바꾼 의사

[서리풀연구通] 치료를 넘어 존엄한 동행으로서의 정신의학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고령 빈곤과 정신건강 위기가 겹친 현실 속에서 환자의 의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지역사회 기반의 정신건강 정책이 확대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교차할 수 있다.

오늘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차라리 죽고 싶어요": 일본 지역정신의학에서의 환자 의지와 의사결정 실천). 이 논문의 저자는 도쿄 근교의 빈곤 지역 고토부키에서 운영되는 사쿠라 클리닉(가명)의 사례를 통해, 사회적으로 배제된 환자들이 의료 규범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의지와 그것에 대응하는 정신과 의사들의 실천을 탐구한다.

이 논문은 자율성과 합리적 선택을 중시하는 서구의 생명윤리 모델을 비판하며, 특히 '공유 의사결정(Shared Decision-Making) 모델'이 실제 임상현장에서는 한계에 부딪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의료제도에 대한 불신, 인지적 어려움, 사회적 배제 등이 만연한 이 지역의 정신과 환경에서는 이 모델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클리닉의 환자들은 종종 분노, 침묵, 무관심 등으로 강한 의지를 표현한다. 이러한 태도는 공유 의사결정 모델이 의도하는, 합리적이고 정보에 기반한 대화나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 등을 막는다.

이러한 괴리로 인해 의사들은 조율 기반의 의지 작업에 의존하며, 환자의 실질적 조건과 의지를 점진적으로 재조정하는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한다. 이는 환자와 의사가 단기간에 합리적인 결정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의 정서와 시간을 맞춰가는 과정을 뜻한다. 이러한 접근은 환자의 변화하는 삶의 역사와 사회적 소외를 고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 예컨대 "병원에 가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말하는 70대 남성 다구치(가명) 씨는 삶의 피로, 자존심, 그리고 사회적 배제 속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그의 치료 거부나 죽음 선택은, 병리라기보다는 오랜 사회적 낙인과 삶의 의미를 상실한 현실에서 비롯된 복합적 감정의 표현이다.

의사들은 이처럼 복잡하고 양가적인 환자의 의지를 단순히 병리적 증상으로 단정할 수도, 완전히 자율적인 선택으로 존중할 수도 없는 윤리적 딜레마에 놓인다. 특히 의사들은 이러한 딜레마와 더불어, 환자의 거부 의지를 수용하는 것이 사회적 배제와 빈곤을 경험한 그들을 죽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상 구조적 폭력에 동참하게 되는 것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은 자율성과 위험 예방 사이의 균형을 요구하며, 결과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모호성과 양가성을 직면하게 한다.

40대 남성인 오다(가명) 씨의 사례는 조율 기반 의지 작업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오다 씨는 몇 년 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은 뒤 거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망이 모두 끊긴 상태에서 그는 "계속 살아야 하나, 이제 그만둬야 하나"를 매일같이 고민했다. 그의 주치의는 오다 씨가 높은 자살 위험군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다 씨를 단순히 치료해야 할 환자라기보다는 죽음과 삶 사이를 오가는 사람으로 바라봤다. 그는 매주 10분 정도,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오다 씨를 만나 그의 일상을 묻고, 단지 살아 있음을 함께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오다 씨는 여전히 "죽고 싶다"고 말했지만, 의사는 그 말을 증상으로서 다루지 않았다. 대신 오다 씨의 정서적 리듬과 시간의 감각에 맞추어 천천히 관계를 이어갔다.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신뢰와 반복된 일상적 접촉은 오다 씨의 '조율 상태'를 서서히 바꾸어 놓았다. 오다 씨는 점차 자신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몇 년이 흐른 뒤, 오다 씨는 의사의 권유로 정신재활 데이케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처음에는 단지 무료 식사를 이유로 참석했지만 그곳에서 자신처럼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변했다. 오다 씨는 어느 순간 "그래도 살아 있는 게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오다 씨의 이러한 변화를 의지의 회복으로 보기 보다는 삶을 조금이라도 견디게 만드는 감각의 회복, 즉 조율의 이동으로 이해했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정신의학의 역할이 단지 증상을 제거하거나 환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함께 견디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오다 씨의 변화는 자율적 의지의 발현이라기보다는 의사와의 오랜 조율 속에서 다시 세상에 연결되는 감각이 형성된 결과였다. 즉, 의지라는 것은 한 개인의 내부에 고정된 내적 속성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천천히 빚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쿠라 클리닉의 의사들은 완전한 치료나 순응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장기적인 만남과 일상적인 교류를 통해 환자가 조금씩 세계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데에 집중했다. 이러한 관계의 지속은 때로 의사에게 의료적 패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의료의 목적이 생명 연장만이 아니라 관계의 끈을 유지하며 삶의 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정신과 치료에서의 의지와 의사결정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며, 특히 빈곤과 배제의 맥락 속에서 조율을 통한 장기적 의지 작업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여준다. 의지 작업이란 단기간에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협상적인 과정이며, 사회적 소외 속에서도 관계를 이어가며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고자 하는 지속적 실천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개인 중심의 의사결정 모델이나 치료의 달성이 아닌, 불확실성과 고통 속에서도 함께 버티는 윤리적 역량의 구축을 제안한다.

본 논문은 한국 사회의 의료현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령화, 비자발적 단절, 자살 위험이 만연한 한국의 현실에서 의지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선택의 자유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조율 기반 돌봄, 즉 관계의 지속을 통해 서서히 삶의 감각을 회복시키는 구조적, 윤리적 대응이 아닐까. 위 연구가 보여준 일본의 사례는 한국의 (정신)의학과 복지정책이 치료보다는 존엄한 동행으로 나아가야 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 서지정보

Kano, Y. (2025). "I'd rather die": Patients' will and decision‐making practice in Japanese community psychiatry. Medical Anthropology Quarterly, e70021.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병원(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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