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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 청구되는 '비급여 진료비', 이대로 둬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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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 청구되는 '비급여 진료비', 이대로 둬도 될까?

[서리풀연구通] 혼합진료 금지로 비급여 진료비 문제 해결될까

얼마 전 2차 병원에서 겪은 일이다. 개인적 이유로 3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는데, 평소 1만 2300원이던 혈액·소변검사 비용으로 1만 3070원이 청구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존에는 채혈 후 알코올 솜을 주며 누르라고 하였는데, 이번에는 비급여 지혈밴드를 붙여준 것이다. 물론 사전 설명이나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없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린 후,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확인하니 "비급여 지혈밴드를 사용하고 싶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병원이 검사비를 먼저 수납한 뒤 채혈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데다가, 채혈 직후 자연스럽게 붙여주는 지혈밴드를 "붙이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혈밴드가 비급여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고, 비급여라는 용어 자체가 낯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비록 환자 개인 입장에서는 소액이더라도, 병원 입장에서 환자 수만큼 곱한다면 그리 작은 금액은 아닐 것이다. 이는 병원이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합리적 경영 전략이다. 매출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환자 유입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방문한 환자를 대상으로 '객단가'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문제의식과 관련된 국내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2021년 시행된 의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제도의 실효성을 평가했다(☞논문 바로가기: 비중증 과잉 비급여 개선방안 연구: 의원급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제도의 효과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진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를 활용해 2020년~2024년 기간 중 9,718개 진료 금액 데이터를 분석했다. 병원급 의료기관(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을 통제집단, 의원급 의료기관(의원, 치과의원, 한의원)을 처리집단으로 설정하여 패널 사건사 분석을 실시했다. 비급여 항목은 전체 항목, 중증 항목(처치 및 수술료, 치과처치, 치과재료, 맘모톰시술, 니프티검사, 양수염색체 검사), 비중증 항목(초첨렌즈, 도수치료, 모발이식술, 시력교정술, 체외충격파치료, 초음파검사, MRI 검사)으로 구분하여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제도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첫째, 진료비용 공개정책 시행 3년 후, 의원급 비급여 진료비는 평균·최고·최저 금액이 모두 상승했다. 둘째, 비중증 항목의 가격 편차는 중증 항목보다 심화되어서, 최고금액은 상승하고 최저금액은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셋째, 의료인 수 증가는 진료비 상승에, 입원 및 외래 환자 수 증가는 진료비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즉, 현행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제도는 진료비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제한적인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연구진은 급여 항목에 비급여 항목을 소위 '끼워팔기'하는 식으로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환자들이 관련 정보를 쉽게 비교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비급여 항목과 용어를 표준화하는 등의 다양한 보완책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과연 새로운 정책을 추가 도입한다고 해서 비급여 항목의 처방이나 비급여 진료비를 줄일 수 있을까? 앞서 소개한 지혈밴드 사례로 돌아가보자. 비급여 진료비 문제는 개별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병원 조직의 합리적 행태라고 보는 편이 맞다. 시장에서 병원과 병원이 서로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체제가 유지되는 한, 단순히 몇몇 규제를 추가한다고 하여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더욱이 환자들도 시장화된 의료 체계에서 상품으로 의료를 구매하는 것이 체화된 상황에서, 채혈 후 알코올 솜만 주는 병원과 20분 후 떼라는 안내 멘트까지 인쇄된 넓은 지혈밴드를 붙여주는 병원 중 어디를 더 신뢰할까? 의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비급여 진료를 오히려 '고급 의료서비스'로 인식할 수 있다.

여러 전문가들이 국민 의료비 증가를 사회 문제로 지적하면서 비급여 진료비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병원과 환자 입장에서는 비급여 진료가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두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떤 제도나 정책이 필요한지 논하기 전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의료를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보장해야 할 공공재로 볼 것인가? 비급여 진료비 억제는 단순한 정책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의료는 무엇인지에 대해 답할 수 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문제이다. 770원의 비급여 지혈밴드가 던지는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화되어 버린 의료의 상품화를 어떻게 바라볼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 서지 정보

김신영, & 이진형. (2025). <비중증 과잉 비급여 개선방안 연구: 의원급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제도의 효과 분석을 중심으로>, 보험학회지, 142, 61~86.

▲병원(사진은 본 글과 무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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