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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이후 희생된 공공돌봄, 해고노동자의 다짐 "끝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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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이후 희생된 공공돌봄, 해고노동자의 다짐 "끝내지 않겠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공공돌봄 사례 수기' 수상작 연속기고 ②] 노동자 부문 대상작 <끝나지 않은 짝사랑>

오는 10월 24일,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 이후 서울시 공공돌봄에 대한 시민공청회가 열린다. 서울시가 서사원을 해산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서사원은 민간기관이 기피하는 돌봄대상자 등을 주로 맡아 온 서울시의 공공 돌봄 기관이었다. 이에 서울 시민 6000여 명이 서사원을 일방 폐지한 서울시의 책임을 묻고 공공 돌봄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서명을 모아 공청회를 요구했다. 행사를 앞두고,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가 네 편의 글을 보내왔다. 지난해 말 열린 '서사원 공공돌봄 사례 수기' 공모전의 수상작들이다. 공공 돌봄 이용자와 노동자의 수기를 통해, 돌봄 서비스 공공성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절대로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처럼 유난히 기세를 떨치던 무더위가 샛바람 한줄기에 밀리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겨울이 바짝 뒤쫓아와 연일 제자리를 내놓으라 하고 있다. 회사 근처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도 지금쯤이면 겨울 채비에 한창일 터이고, 사무실에서 내려다보이던 붕어빵 장수는 이맘때쯤이면 여느 해 겨울처럼 붕어빵 굽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엊그제까지 내 노트북의 잠금번호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서의 마지막 근무일인 '0731'로 되어 있었다. 새로운 마음다짐으로 운동을 시작하며 만든 사물함 비밀번호 또한 그러하였으며, 여행을 계획하며 회원가입을 한 여행사이트의 비밀번호도 역시 그러했다. 그렇게라도 나는 서사원을 기억하고 싶었고 내가 서사원의 식구였음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석 달이 훌쩍 지나버린 최근까지도 나의 모든 일상에는 아직 서사원이 함께 하고 있었으며, 마지막 근무일에 느꼈던 감정의 잔상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떠올라 점차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잊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과 기억함으로 인해 더욱 또렷해지는 그날의 아픈 기억들, 마지막 날 다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어야 했던 인사들이 서로 부딪혀오며 많은 날을 불편한 꿈자리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나는 그렇게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이별을 통보받았다. 그리고 무심하게도 시간의 흐름이란 내가 잊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고 있다.

설레는 마음 한가득히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 첫 출근 하던 날이 떠오른다. 당시만 해도 앞으로 내게 어떠한 일이 펼쳐질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미용실에 가서 염색도 새로 하고 사무실에서 쓸 개인 컵도 고민해 가며 장만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 위탁 운영한 공공어린이집 아침 풍경.(자료사진) ⓒ공공운수노조서울사회서비스원지부

물론 출근 첫날부터 그러한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으며,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분주한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반 년 넘게 공석이었던 업무의 공백을 채우느라 사무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며, 팀원들은 수시로 지원 중의 매뉴얼 등을 질문해 오고, 돌봄 현장에서는 잠시도 쉴 틈 없이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기곤 했다.

이용자들은 툭하면 서울시에 민원제기를 무기처럼 들이댔으며, 본부에서는 그에 대한 대응을 소속기관의 몫으로 떠넘기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용자를 방문하여 사정하고 읊조렸으며, 팀원들을 설득하고 달래다 보면, 늘 허기진 속에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붓곤 했다. 하루하루가 치열하고 촘촘하였으며, 그럼에도 하루 8시간 중에 최소한 8시간 이상, 즉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진심이었다.

그렇게 4년 6개월을 서사원과 함께 고민하고 또 성장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좋았고 행복한 날들이었다. 일하고 당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음에 순간순간 감사하였으며, 근로자 뒤에 노조가 버티고 있다는 믿음에 한없이 든든했다. 민간에서 하던 돌봄의 영역이 체계화되고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 공공 돌봄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자부심에 늘 자랑스러웠으며, 그에 따르는 책임감 또한 무겁게 가져가기 위해 항상 자신을 담금질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막 어설픈 첫발을 뗀 어린아이에게 주변에서는 왜 더 빨리 달리지 않느냐고 늘 채근하였고, 첫걸음을 시작한 우리는 그 기대에 따라가기 위해 잰걸음을 재촉하기 바쁜 날들이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고 확실한 건 그 어디에도 없었으며 작은 샛길만 마주쳐도 잘못 들기 십상이고, 그러다가 다시 돌아 나오고를 반복하곤 했었다. 참으로 수고로운 날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자부한다. 그때 그 순간, 그 자리에 함께했던 나의 동료들, 현장에서 뜨겁게 땀 흘리며 공공 돌봄을 위해 진심을 다해 노력했던 모두의 수고로움이 우리의 이용자들에게는 공공 돌봄이 가져다주는 체계적이면서도 안전한 더없이 소중한 경험의 순간들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결국에는 공공돌봄의 완성을 위한 소중하고 단단한 주춧돌이 되어줄 것이리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충분히 수고하였으며 그 수고로움에 대한 대가가 지금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한들 서운해하거나 애석해할 일은 아닌 것이다. 지금껏 나는 장애인활동지원사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니, 그저 지금처럼 나는 그렇게 또 내 길을 향해 가면 될 일이다. 나의 사랑은 잠시 숨 고르기를 할 뿐 결코 멈추는 게 아니니 이제 다시 그 길을 나설 때이다.

<심사평>

<끝나지 않은 짝사랑>은 계절의 흐름과 지나온 세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서의 마지막 근무일을 기억하며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소속 노동자였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회고하는 글이다. 마치 이별을 통보받은 연인처럼 느닷없는 해고가 글쓴이의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섬세한 감정선을 잘 포착하고 있다. 분주하고 고된 노동의 시간과 치열했던 나날들이 화자에게 고통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을 일으키는 성장의 자산이 되었다는 화자의 고백 서사원 졸속 폐업이라는 극악무도한 정치 행위에도 부서지지 않는 화자의 주체적 태도를 보여준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의 연대를 잊지 않고 공공 돌봄이라는 가치를 사수해 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억압받는 노동자, 해고자 되기를 거부한 화자는 이미 노동해방의 통로에 서 있다.

화자의 '끝나지 않은 짝사랑'은 장애인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유일무이한 힘이자, 공공 돌봄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갈 단초이다. 화자의 자기 노동에 대한 긍지 그리고 일련의 과정 속에 가미된 내적 떨림과 울림이 독자로 하여금 돌봄노동의 가치를 새삼 재확인 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상기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 여미애 심사위원장(YM고전읽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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