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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조희대와 대법원이 너무나 이상하다

[박세열 칼럼] '악의 평범성'을 제거할 수 있는 재판이 되기 위해선

법원이 요새 이상하다는 건 다들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말처럼, 사람들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불안해 하고 있는데 조희대 대법원은 엉뚱하게 사법부의 '독립'이 필요하다 외치고 있다. 영점이 엇나간 느낌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윤석열의 12.3 불법 비상계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공식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12월 3일 내란의 밤,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4일 오전 1시 2분) 전에 대법원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지시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배형원 차장, 실장급 간부와 관련 심의관 등이 모여 계엄 관련 상황을 논의했다고 한다. 조희대는 공관에서 관련 사항을 보고받다가 4일 새벽 청사로 출근해 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에서는 무슨 내용이 논의됐을까? <조선일보>가 12월 4일 보도한 데 따르면 대법원 관계자는 "비상계엄에 따라 사법권의 지휘와 감독은 계엄사령관에게 옮겨간다"며 "계엄사령관 지시와 비상계엄 매뉴얼에 따라 향후 대응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KBS 보도도 보자. 4일 새벽 보도에 따르면 "회의에서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관련 규정을 검토해 향후 대처 방안을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계엄법에 따라 비상계엄사령관의 지시를 불이행하거나 내란·외환의 죄, 공무 방해나 공안(公安)을 해치는 죄,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의 재판은 군사법원이 한다. 이에 따라 해당하는 죄목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재판도 군사법원으로 이송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비상계엄이 합법적임을 가정하고 계엄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5월 2일 국회에 출석해 "비상계엄 당일 저희들 간부회의에서 제일 먼저 (비상계엄이) '위헌적'이라는 발언을 꺼낸 분이 바로 대법원장"이라고 말했다. 무려 6개월 만에 밝혀진 사실이다. 앞서 천대엽이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와 관련해 처음 '위헌'이라는 공식 입장을 낸 것은 비상계엄 8일만인 지난해 12월 11일이었다. 천대엽은 국회에서 "저희는 지금 이 사태가 위헌적인 군 통수권 행사"로 보고 있다고 규정했다. 대법원의 첫 공식 입장이었다.

그러나 간부회의에서 가장 먼저 '위헌적'이라는 인식을 보인 조희대 대법원장, 그리고 <조선일보>에 나온 '대법원 관계자' 발언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전자는 계엄 자체가 위헌이라는 것인데, 후자는 대법원이 그 '위헌적 계엄'의 매뉴얼에 따라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오보를 냈든지, 대법원장이 하지도 않은 말을 법원행정처장이 전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왜 이런 판단에 8일이나 걸렸는지 알 도리가 없는데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위헌을 제일 먼저 지적했다'고 한 말이 왜 쿠데타 6개월 만에 비로소 밝혀진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은 그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하자. 현직 대법관이 설마 거짓말을 했겠는가. <조선일보>가 말도 안 되는 오보를 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현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시스템을 의심하는 순간 무간지옥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의문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 최근 내란 관련 재판관들은 대법원의 인식과 결이 다른 판단을 연이어 내고 있다.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로 계산해 윤석열 석방을 결정한 지귀연 재판부도 그렇고, 최근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박성재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하며 내세운 논리도 그렇다. 계엄 후속 조치 이행 방안을 지시한 의혹을 받는 박성재에 대해 박정호 판사는 "피의자가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나 인식한 위법성의 구체적 내용, 피의자가 객관적으로 취한 조치의 위법성 존부와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했다.

천대엽에 따르면 조희대는 12월 3일 밤 간부회의 자리에서 "위헌"이라는 말을 제일 먼저 꺼냈다고 했다. 그리고 8일 후 천대엽은 계엄을 "위헌"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최고 사법기관의 규정에 따라 '불법 계엄'의 '불법 포고령'을 실행하려 한 행위 역시 '위헌'일 것이다. 하지만 영장판사의 논리는 위헌적 행위에 가담한 것은 위법이지만, 그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따져보자고 한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박성재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준 것이다.

"기계(윤석열 정부)의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했을 뿐인 자신은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과거 나치 전범 재판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은 말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을 '죽음의 열차'에 실어 나르는 '기계'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 결과 600만 명이 죽었다. 악은 적극적 광기가 아니다. '적극적 광기'에 주체성과 책임을 떠넘긴, 충실하고 영혼 없는 '법무 비서'의 행위에서도 악은 태어날 수 있다. '악의 평범성'이다.

법원의 논리에 따르면 위헌적 행위에 따른 것이 위법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긴다. 위헌적 행위에 따르지 않은 고위공무원들과 박성재의 차이가 제거되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당일 사표를 낸 류혁 법무부 감찰관, 정치인 체포의 위헌, 위법적 명령을 받고 실행을 거부한 홍장원 국정원 1차장과 계엄 합수부 검찰 파견 검토 지시를 내린 박성재의 차이는 사라진다. 만약 박성재, 이상민 같은 인간들이 계엄 포고령에 따라 언론사를 폐쇄하고, 전공의를 처단하고, 정치인을 체포한 후에도, 나중에 '위법성 인식이 없었다'고 하면 처벌하지 못하는 것인가?

'위헌위법'을 인지하고 이를 막기 위해 적극적 행위를 한 자나, '위헌위법'을 인지하지 못했다면서(박성재의 주장) 불법 포고령을 실행하려 한 자가 같은 취급을 받는다면, 앞으로 '비상계엄' 같은 사태가 났을 때 어떤 공무원이 나설 수 있겠는가.

박성재는 지금 뻔한 법기술을 부리고 있다. 비상계엄 후 열린 법무부 실국장 회의에서 승재현 법무부 인권국장은 "일체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령 1호 1조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 시 계엄을 해제한다고 명시한 헌법 77조에 반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면전에서 그런 말을 듣고도 묵살한 박성재가, '위법인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판사들이 이런 주장을 인정해주고 있다. 이건 '내란에 가담해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윤석열과 한덕수에게 던져주는 꼴이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에 거수기로 가담한 국무위원들에 대해서는 그 경중을 따질 필요는 있을지언정, 전원이 법적 단죄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국무위원은 헌법기관인 국무회의를 구성하는 구성원이고, 헌법을 수호하며 국가와 국민 전체에 봉사해야 한다. 대통령의 불법 무도한 비상계엄에 들러리를 선 것 자체가 위헌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교수형을 당할 때까지도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법원은 그를 단죄했다.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사악한 괴물이 아니라, 그 괴물의 '영혼없는 손발'이다. 악의 평범성을 제거해야 '악행'도 제거된다. 이스라엘은 이걸 알았다.

비상계엄을 '위헌'이라고 즉시 판단했다는 조희대와 대법원의 주장을,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이 시스템의 안녕을 위해서 믿고 싶다. 내란특별재판부도, 내란전담재판부도 싫다고 한다면, 최소한 '내란 사태'의 엄중함을 재인식하고 재판에 임해주길 바란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내란 재판의 성격에 대해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변인'을 통하지 말고 본인의 육성으로 '독립된 사법부'의 입장을 명확하게 다시 한번 밝혀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조희대와 사법부를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식에 앞서 세종대왕 관련 전시물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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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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