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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의 세상읽기]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영상증거의 과학과 법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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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의 세상읽기]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영상증거의 과학과 법의 만남

“두 번 반짝였다.”

수사기관은 CCTV 영상 속 두 차례의 반짝임을 ‘불꽃’이라 단정했다. 그 장면 하나가 화재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확대된 영상의 픽셀 값은 일정했고, 색상비율은 금속 반사광과 유사했다. 법정에서 논쟁은 시작됐다. “그것이 불꽃이었는가, 아니면 단지 빛의 반사였는가.”

오늘날 영상은 ‘진실의 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과학수사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 영상보정, 명도 조절, 프레임 추출, 필터 적용 등 분석의 모든 단계에는 해석자의 선택이 개입된다.

이처럼 보정이나 분석 과정을 거친 영상은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석자의 조정과 판단이 누적된 결과물에 가깝다.

따라서 법정에 증거로 제시되는 보정·분석 영상의 신뢰성은, 분석자가 판단하여 제시한 영상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그 영상을 도출한 분석 과정의 객관성과 검증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법은 오래전부터 ‘보이는 것의 진실성’을 경계해 왔다. 보정·분석을 거쳐 증거로 제시된 영상이 존재하더라도, 그 내용이 불명확하거나 분석의 기준과 절차가 검증되지 않았다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력은 인정되기 어렵다.

형사재판의 원칙은 명확하다. 의심이 남는다면 유죄를 선언할 수 없다. 이 원칙은 영상증거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보이는 것’의 힘은 크다. 그러나 법은 그 힘을 의심함으로써 정의를 지킨다. 과학수사는 진실을 밝히는 유력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과학이라는 이유로 절대적 신뢰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법이 주목해야 할 것은 보정·분석을 거쳐 증거로 제출된 영상의 시각적 인상이나 외형적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가 도출된 분석 절차와 기준의 객관성과 검증 가능성이다.

보정·분석 영상은 법이 진실을 단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분석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검증해야 할 대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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