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만 사람들이 한국을 싫어하지 않아? 거기에도 혐한(嫌韓)이 있지 않나?"
대만으로 이주하기 전 몇 명에게 들었던 질문이다. 아마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대만 사람들이 가진 한국에 대한 인식, 호불호(好不好)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에 대한 호감을 먼저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고, 다르면 배척한다. 대만과 한국은 공통점이 많다. 일단 생김새부터 구별이 어렵다. 지금까지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아본 대만 사람은 없었다. 어딜 가도 100% 중국어로 말을 걸어오고 그때마다 '한궈런(韓國人, 한국인)'이라는 어설픈 중국말로 국적을 밝혀야 했다. 물론 관광객 차림으로 관광지에 갔다면 반응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화산(華山)1914'의 디자인샵에서 일했던 아내의 동아시아인 구별법은 이렇다. 중국 본토 사람들은 같은 중국어지만 억양이 드세다. 대만인들 입장에서는 좀 무례하고 교양 없는 말투로 들린다고 한다. 광둥어(廣東語)를 쓰면 홍콩 관광객이다. 한국인과 일본인 관광객 비중이 비슷한데, 화장법이나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서 구별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 여하간 외모만으로 한국인을 구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이나 대만이나 다양한 얼굴 생김새가 있다. 대만에는 오스트로네시아 계열의 원주민 느낌이 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한국인은 백인이나 인도인처럼 누가 봐도 외국인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가 가본 외국 중에 도저히 외모로 한국과 구별이 안 되는 나라가 있다면 몽골 정도다. 처음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충격이 아직도 기억난다. 공항은 체취에서 나오는 양고기 냄새로 가득했고, 분명 한국 사람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몽골어를 쓰고 있었다! 일주일 후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한번 놀랐다. 이번에는 분명 몽골사람들처럼 보이는데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인천공항에 가득했다. 그리고 은은한 마늘 냄새가 풍겼다. 대만과 한국이 그 정도로 비슷하진 않다.
다시 대만으로 돌아와서, 두 나라는 경제력과 생활 수준이 대등하다. 2025년, 20여 년 만에 대만에게 일인당 GDP를 역전당할 거라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바꿔 말하면 2000년대 초반까지는 줄곧 대만이 우리보다 일인당 GDP가 높았다. 한 세대인 대략 30년 정도를 놓고 보면 두 나라의 경제 수준은 서로 엇비슷했다. 실제 생활 수준에도 큰 차이가 없다.
문화에서도 공통점도 많다. 젓가락을 쓰고 전통 한자를 쓴다는 점이나, 가족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비슷하다. 간단한 사자성어도 서로 통한다. 미국의 영향으로 생활양식, 사고방식이 서구화된 것도 비슷하고,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도 비슷하다. 야구와 핸드드립 커피를 즐기는 것도 그렇고, 일본 만화와 그 캐릭터도 인기가 많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2025년 기준 대만 사람들이 호감을 갖고 있는 나라 2위가 한국이다. 1위 일본과 엄청난 차이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두 번째로 좋아하는 나라다.
사실 한국과 대만은 사실 서로 싫어할 이유가 없는 나라다. 우리 주변 나라 중에 서로 전쟁이나 침략으로 불행한 과거를 겪지 않은 나라는 대만이 유일하지 않은가? 우리는 참혹한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북한, 중국과 전쟁을 치렀다. 제법 떨어진 베트남과도 총부리를 겨눈 적이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대만과 경쟁이 있다지만 말 그대로 산업경쟁일 뿐이다.
이런 두 나라 사이의 공통점과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호감이 나의 연애와 결혼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십 년 전, 마침 K컬처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었고, '꽃보다 할배 대만편' 이후 양국 간의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었다. 아내 가족이나 친구들과는 내가 한국인이라서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박근혜 아버지에 대해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 "연예인 누구누구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런 식이었다. 특히 20~30대 젊은 대만인이 한국 관련 뉴스에 관심이 컸다.
소위 한류는 지속적인 흐름이었지만 가장 큰 차이가 생긴 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었던 것 같다. 그전까지 중년 여성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10대 여성이 한국 아이돌을 좋아하는 정도였다면, '오징어게임' 이후로 확실히 보편적인 흐름이 됐다.
정작 아내는 K팝이나 K드라마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달랐다. 한 친구는 '세븐틴'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팬이었다. 내가 세븐틴을 모른다고 하자 '왜 우리 오빠들을 모르냐?'며 억울해했다. 하루는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는 중에 화면 뒤로 장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국인 친구라고 나를 소개하자 "한국 남자? 그럼 오빠네?"라고 하더니, 나에게 "오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게 장모와의 첫인사였다.
'안녕하세요' '김치' '빨리빨리'와 더불어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어 단어가 '오빠'인 듯싶다. 처음 한류에 빠져든 게 아무래도 여성들이었고, 여성들만 쓰는 표현이 로맨틱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모양이다. 중국어에서는 형이든 오빠든 모두 '거거(哥哥)'라고 부른다.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한국 남자(?)인 우리 아이를 '오빠'라고 부른다. 나이를 떠나서 한국 남자는 모두 '오빠'라고 부르고 본다.
오빠 얘기가 나온 김에 한국인 특히 한국 남자에 대한 대만 여성들의 호감에 대해 말해 보자. 대만에서는 한국인이라면 남녀불문하고 '건강하고 잘생겼다.'는 편견이 있다. 건강하고 잘생긴 아이돌과 배우들을 먼저 봤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다만 거리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을 봐도 그렇게 틀린 편견은 아니라는 느낌이 있다.
이런 편견이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너는 한국인인데 왜...?"라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에 더해 한국 여성들에 대해서는 '화장을 잘하고 잘 꾸민다.'는 인식이 있고, '대부분 성형을 했을 거'라는 편견도 있다. 한국 남자들에 대해서는 좋은 편견이 있다. 역시 영화나 드라마 때문인지 몰라도 '남자답고, 여자에게 다정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가난하고 나이 많은 이혼남인 내가, 내 기준에서 트와이스 쯔위보다 아름다운 대만인 아내를 얻은 것은 꼭 내가 한국인이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 좋아했고, 마음이 잘 맞았고, 언어와 문화 장벽을 너머 서두르지 않고 진지하게 대화했고, 서로를 존중하며 신뢰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는 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된 건 분명하다. 그들의 편견대로 잘생기고 건강하다고는 할 순 없지만, 다정함에 대해서는 기대치를 초과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엔 북한, 일본, 중국에 대한 혐오가 심각하다. 집단적이고 그 뿌리도 깊다. 이주외국인, 중국교포, 탈북자, 무슬림, 동성애자 등 우리 사회 구성원에 대한 혐오도 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 지역 갈등, 젠더 갈등, 세대 갈등 등에서도 상대에 대한 적대적인 반감이 강하게 표출된다. 이제 반해 대만에는 혐오 현상 자체가 강하지 않은 편이다. 홍콩 상황 때문에 중국에 대한 우려가 커졌지만, 혐오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워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만 사람들에게 혐한이나 반한감정은 없다. '혐한'이라고 말하려면 한국인이라는 게 드러났을 때 불편한 기색이 있다든지, 한국인 관광객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당한다든지, 결혼할 때 '하필 왜 한국인이랑?'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가 돼야 한다. 물론 대만인들이 한국에게 가진 부정적인 편견도 있지만, '혐한'이라고 부를만한 집단적이고 뿌리 깊은 혐오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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