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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음을 보여 준 토끼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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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음을 보여 준 토끼풀 사건

[청소년인권을 말하다] 학내 언론·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인권 보장이 필요하다

"은평구 학생 언론 <토끼풀>은 최근 일부 학교의 언론 탄압에 항의해 1면을 백지로 발행합니다."

토끼풀 제17호(2025년 10월) 표지에 실린 글이다. <토끼풀>은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고 운영 중인 청소년 언론으로, 지난해 4월부터 꾸준히 발간 중이다. 처음에는 중학교의 언론 동아리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특정 학교와 상관없이 서울시 은평구를 중심으로 청소년 기자들이 모여 함께 신문을 만들고 있다.

<토끼풀>은 청소년의 시선에서 다양한 주제와 이슈를 다루고 있다. 지난 9월 22일에는 은평구 내 18개 중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대다수의 학교가 '집단행동 선동', '허가 없는 동아리 조직', '불온 문서의 제작·유포·게시·탐독'과 같은 행위를 징계 사유로 두고 있었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모이고 표현하고 활동할 권리를 학교 마음대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한 학교에서 <토끼풀> 배포를 금지하고, 배포된 신문도 압수하는 사태가 알려져 논란이 됐다. 신문을 압수하고 금지한 학교 측이 내세운 논리는 '교육의 중립성', '교육 활동 침해', '학부모 민원 우려', 심지어 '제 2·3의 학생 단체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시민적·정치적 권리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억압당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말들이다.

이에 <토끼풀> 기자단을 포함한 여러 청소년·인권단체들이 모여 언론 자유 침해와 학생 자치 활동 탄압을 규탄하며, 해당 학교의 공식 사과와 압수한 신문을 돌려줄 것,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기자회견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의 발언을 들으며 기시감이 들었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13년 대학교와 중·고등학교 등에서 철도 파업과 역사 교과서 등의 이슈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었을 때, 대학과 달리 중고교에서는 많은 경우 대자보가 떼어졌고, 일부 학교에서는 대자보를 쓴 학생을 불러 징계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고등학교 학생회가 비상계엄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려 하자 학교장이 이를 가로막기도 했다.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참여하는 일은 '학생답지 않은 일'이라며 통제돼왔고, 의견을 말하고 표현하고 저항하는 활동 또한 '불온하게' 여겨져 왔다. <토끼풀>과 같은 사례는 몇몇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고, 갑자기 일어난 이례적인 사건도 아니다.

▲서울시교육청 앞 토끼풀 기자회견.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학생인권에 대한 공격의 여파

"신도중학교는 청소년 언론 <토끼풀>의 배포를 금지하고, 이미 배포된 100부가량의 신문 역시 전부 압수하고 폐기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권리임에도, 신도중학교 뿐만 아니라 복수의 중학교에서 공공연히 배포 통제, 내용 수정 및 검열, 압수가 자행되어왔습니다. 이는 명백한 학생인권 침해임과 더불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일입니다. (중략) 언론의 자유는 교문 앞에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는 교실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학교가 민주주의를 되찾고, 학생이 기본권을 되찾으려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학생에게도 언론의 자유를!" <토끼풀>의 빠띠 캠페인 중에서)

"30년이 흘러 강산이 세 번 바뀌었는데도, 대한민국의 학교는 단 한 발짝도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0년대 초반, 제가 여고생이던 시절에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의 부조리를 고발한 문예지를 발간했다는 이유로 교장과 교사들이 학생들을 탄압했습니다. 그때 분노한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운동장에서 침묵시위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언론 탄압에 맞서 학생들이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것은 부끄러운 학생인권 탄압 사건입니다. 서울시교육청과 해당 학교 교장은 즉각 사과해야 합니다. 학생의 언론 자유를 짓밟은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합니다."('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의 발언 중에서)

민주화 이후에도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언론의 자유 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현재 학생인권에 관한 법 제도가 부실하고 정부도 소홀한 탓이 크다. 경기, 광주, 서울, 충남 등 몇몇 지역에만 있던 학생인권조례는 폐지·개악 시도에 노출돼 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도 지난해 시의회에서 폐지안이 통과됐다.

지금은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며 법적 효력 자체는 남아 있긴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영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토끼풀>의 신문 100여부를 압수한 학교가 등장한 것도 그러한 악화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학교가 학생들의 물품을 자의적으로 압수하는 건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생활지도 고시)와도 관련 있다. 2023년 9월, 제대로 된 검토 없이 교육부가 시행한 이 고시에는 '기타 학칙으로 소지를 금지한 물품' 등 교사가 학생들의 소지품을 자의적으로 압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생활지도 고시에 따르면 학생들이 만든 신문을 압수, 수거해 가는 것도 '생활지도'로 허용된다. 생활지도 고시안이 예고되었을 때부터 인권단체들은 학교의 자의적 소지품 검사·압수 등이 무제한적으로 가능케 한 점 등 인권 침해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던 바 있다. 결국 '교권'을 외치며 학생인권 침해를 허용하는 법령을 무분별하게 입법, 시행한 것이 <토끼풀> 압수와 같은 사건을 조장한 것이다.

따라서 학교에서 언론·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말뿐인 학교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입법이 필수적이다. 가령 2021년 국회에 발의되었던 학생인권법안(박주민 국회의원 대표 발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학생의 소지품을 함부로 압수하는 것을 금지했다. 나아가 "학생은 동아리, 소모임, 언론활동 등 자치활동을 할 권리를 가지며, 학교는 학생자치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학생자치활동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보장돼야 하며, 학생의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등 언론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현재 제22대 국회 교육위원회에 발의되어 있는 학생인권법안(김문수 국회의원 대표 발의안, 한창민 국회의원 대표 발의안 등)에서도 학생의 언론·표현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권리가 침해당할 시 실질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허락은 필요 없다

학교에 존재하는 학칙 중에 학생들의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저해하는 내용들을 매우 다양하다. 특히 <토끼풀> 배포 금지 사건과 같이, 게시물이나 유인물을 금지하는 건 학생들이 가장 자주 적용받을 수 있는 학칙이기도 하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2020년 조사한 결과, 중학교 중 50.9%, 고등학교 중 50.7%에서 허가 없이 문서를 배포, 게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불온 문서를 은닉, 탐독, 제작, 게시 또는 유포한 학생"(전남 S중), "학교장의 허가 없이 유인물 제작, 배포 및 판매한 자"(대전 D고), "사전에 허가되지 않은 집회에 참석하거나 게시물을 부착하여 교내 질서를 문란케 한 학생"(경남 D고)를 징계 대상으로 명시한 사례, "각종 게시물은 학교장의 승인을 얻어 지정된 장소에 게시토록 한다" 등 게시물이나 유인물의 배포에 사전 허가 및 날인을 요구하는 경우 등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538개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학교규칙 실태조사'(2023)에 따르면, 학생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는 학교, 정치활동 자체를 금지하거나 벌점 조항으로 두고 있는 학교는 총 108개교로 나타났다. 학생회를 포함한 다양한 자치 및 참여 활동을 제도로는 보장하고 있으나 학생 대부분이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학교를 바꾸어 본 경험 자체가 부족하다고 답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학교 운영, 규칙 제·개정, 동아리나 정치 활동 등에 참여할 권리가 실제 삶에서 와닿지 않는다는 뜻이다. 몇 년 전 조사이지만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신문을 만들기 위해 허락을 받아야 하고, 배포를 위해 또 한 번 허락을 받아야 하는 학교. 동아리를 만들거나 학교 안에 대자보나 게시물을 붙이려 해도 학교장의 '사전 승인'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이를 학교 밖 민주주의 사회의 상식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 반민주주의적이고 독재적인 모습이다. 헌법에 의해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국가에서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듯이, 최소한의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사회의 학교에 사전 검열과 게시 승인 도장은 필요없다. 자유로운 언론·표현·집회·결사와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의 이런 활동이 평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치적인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인권법 제정과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생활지도 고시의 개정은 그런 학교를 만들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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