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 등 주요국 양자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관세정책으로 세계무역질서를 뒤흔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1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 취임한 지 10일도 안 되어 다자무대에 데뷔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등 주요국 정상들의 만남이 지역 및 글로벌 안보와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한·미 정상회담: 보다 대등하고 호혜적인 동맹 관계에 대한 공감대 형성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두 번째 만나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의 첫 번째 만남에 비해 보다 친숙하고 편안해 보였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양국은 관세협상 타결,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등 통상·안보 분야에서 합의를 이룸으로써 한·미 관계를 한층 더 강화할 토대를 마련했다.
수개월간 지속된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타결됨으로써 한국 기업들의 대미 수출 어려움 및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감소되었다. 한국 협상팀의 경제적 합리성과 국익을 토대로 한 배수진 전략,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극진한 예우, 아시아 순방을 통해 관세협상을 일단락지음으로써 정치적 성과를 얻고자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가 합쳐진 결과로 보인다.
한국의 국방비 증액과 미국 무기 추가 구매 약속 등을 통해 이루어진 안보 분야 합의는 우리의 자주국방 달성을 위한 중요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미 본토 방어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 전략은 북한의 위협에 대해 한국군의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국방비 지출 증대와 한국군의 역량 강화 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한국 정부는 국방비 증액과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 등을 약속하며 대북 방어를 위한 한국군의 역할을 확대해 나갈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한 미국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논의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함에 따라 한국이 원자력 에너지를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중국 견제와 더불어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원자력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과 이를 위한 한국의 원전 역량 활용 필요성은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등 핵 활용 권한을 확보하고자 하는 한국의 요청을 트럼프 행정부가 수용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원자력 에너지의 상업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 측면 모두에서 진전을 이룬 것은 한국 원전 산업의 경쟁력 향상, 방위산업의 획기적 도약, 핵 잠재력 확보 등 우리의 산업적·군사적 역량 강화를 위한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 하겠다. 이는 나아가 자주국방 달성을 위해 필요한 마지막 핵심 역량인 핵 억제력 확보를 위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 관세 협상 봉합을 통한 양국 관계 관리 의지 확인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6년 만에 이루어지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은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 결과는 미·중 양국이 지난 수개월 동안 강대강 대치를 이어온 관세 전쟁을 봉합하고 양국 관계를 관리하고자 하는 입장을 확인해 주었다.
중국은 희토류 공급 지속, 미국산 대두 수입 재개, 펜타닐 거래 단속 협력 등을 약속하였고, 이에 미국은 대(對)중국 추가 관세 부과 방침 철회와 펜타닐 관세 인하 등으로 화답하였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대만 문제, 핵 군축 등 여타 주요 의제들은 논의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주요 교역국과의 관세 협상을 일단락 지음으로써 미·중 관계 관리 및 말레이시아-일본-한국으로 이어진 아시아 순방의 정치적 성과를 완성하고자 하였다. 즉 태국과 캄보디아 간 평화 협정 체결을 중재하며 '피스 메이커'로서의 위상을 제고하고 일본, 한국, 중국과의 관세 협상을 마무리함으로써 무역수지 적자 감소, 대규모 투자 유치, 미국 제조업 부흥 촉진 등의 정치적 성과를 확보하려고 한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무역 협상을 경험해 본 중국은 미국의 공세적인 관세 부과 움직임에 대응하여 미국에 상응하는 관세를 부과하며 힘겨루기를 하는 동시에 희토류 수출 통제와 미국산 대두 수입 중지 등의 조치를 통해 미국을 압박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압박 조치는 미국 내 제품 생산과 농산품 판매에 타격을 주며 트럼프 대통령을 당혹케 하였고, 궁극적으로 합의를 견인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고자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교역 대상국과의 관세 협상을 일단락 지은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중간선거(midterm elections)를 앞두고 관세 및 통상 정책의 수위를 조절하며 미국 경제의 안정성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중 정상회담: 양국 관계 복원 및 개선을 위한 토대 마련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11년 만에 이루어지는 시진핑 주석의 한국 방문이 한·중 관계 복원의 신호탄이 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한·중 관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 배치 갈등 이후 악화되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양국 간 교류가 단절됨에 따라 더욱 소원해졌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를 복원하는 동시에 양국 협력을 증대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된다. 한·중 관계의 발전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양국 정부는 고위급 정례 소통 채널을 가동하여 양국 관계 현안 및 지역·글로벌 이슈에 대한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또한 양국 경제협력의 구조 변화를 반영하여 수평적 협력을 토대로 민생 분야의 실질적 협력 성과물을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한편 중국의 서해 구조물 설치 등 양국 간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서로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와 함께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 공존을 위해 협력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동시에 북·미 대화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확인하였다.
한·중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실질적 분야의 협력을 통해 양국 관계를 관리하고 개선해 나가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 있어서 중국은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자 북한 문제 관련 주요 행위자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대(對)중국 수출통제 및 견제가 집중되고 있는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를 제외한 여타 실질적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증대시키는 한편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양자 소통을 이어감으로써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에 있어서 한국은 경제·기술 파트너이자 역내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는 주요 행위자이다. 특히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일본, 호주 등 주요국들이 미국에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은 중국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기를 기대하며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안미경세((安美經世)': 미·중 사이 한국의 새로운 전략적 입장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 계기에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 등 주요국 양자 정상회담 결과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새로운 전략적 입장을 확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보여준다.
요약해 보면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경쟁을 지속하되 필요 및 여건에 따라 경쟁의 수위를 조절하며 경쟁적 공존(competitive coexistence)을 추구하는 미·중 관계, 한국의 군사적 역량 강화와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 협력 증대를 통해 보다 대등하고 상호 호혜적인 동맹으로 발전하는 한·미 관계, 실질적 부문의 협력 확대를 통해 관계 복원 및 개선을 도모하는 한·중 관계가 특징으로 부각된다.
이는 앞으로 한국이 군사·안보, 경제·기술, 에너지, 문화, 인적 교류 등 제반 분야에 걸친 협력 확대를 통해 한·미동맹을 한층 더 강화해 나가는 한편,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민생 분야의 실질적 협력 증대를 통해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감으로써 미·중 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음을 나타내 준다.
한국은 강력한 군사 동맹을 토대로 한반도 방어태세를 물샐틈없이 유지해야 한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한반도에 심각한 안보 위협을 야기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고 한반도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대북 방어를 위한 한국군의 역량 강화 및 동맹국 미국과의 군사·안보 협력 증대가 요구된다. 한편 중국과의 군사 외교를 통해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 우호적인 안보 환경 유지를 위한 한·중 양국 간 소통 및 협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 또한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에서 미국 및 기술 선진국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미래 성장 동력 및 경쟁력을 담보하는 동시에 수평적 협력구조를 토대로 중국과 실질적 부문의 협력 증대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입장을 표현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함께 한다는 입장은 더 이상 한국에게 유효하지 않다. 한반도 안보를 위해 미국과의 군사·안보 협력을 증대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하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국을 둘러싼 전략적 환경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심화되고 있는 미·중 경쟁은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에 집중되고 있으며, 미국은 글로벌 가치 사슬을 재편하고 미국 내 제조 역량을 부활시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 관련 미국의 기술력과 자본력, 그리고 비교 우위를 토대로 해당 분야 협력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바이오, 조선, 원전 등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는 한국의 미래 경제 성장 및 번영의 핵심이며, 따라서 미국, 일본, 유럽 등 해당 분야의 선두 주자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기술력을 제고하고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이 군사·안보뿐 아니라 경제·기술 분야 모두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전략적 환경에 놓여 있으며, 동시에 한국이 미국과의 협력 증대를 우선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한편 한국에 있어서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이웃국가이자 북한 문제 관련 주요 행위자이다. 중국은 한국의 주요 교역국이나 양국 경제 관계는 수직적 분업 구조에서 수평적 협력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압도적 수출 및 무역 흑자를 기록하던 시대는 저물었으며, 중국은 한국의 주요 기술 경쟁국으로 부상하였다.
현재 한국은 경제·기술 분야에 있어 중국과 경쟁 및 협력을 수평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경제협력 구조를 토대로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실질적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여 경제적 이익을 담보해 나가는 것이 양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은 북한 문제 등 한반도 안보 상황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내 주요국이다. 특히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토대로 북한의 비핵화 등 북한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행위자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 해결 및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소통과 협력을 이어 나감으로써 양국 관계를 우호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미·중 사이 한국의 입장은 '안미경중(安美經中)'에서 '안미경세((安美經世)'로 전환되고 있다. 즉 군사·안보 분야 협력은 미국과 함께,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 협력은 미국과 기술 선진국을 중심으로, 그리고 실질적 부문의 협력을 중국과 도모하는 것이 한국의 새로운 전략적 입장을 대변하는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전략적 입장은 국익을 토대로 한 실용 외교의 지평을 확대하여 국제무대에서 영향력 있는 중견국의 위상을 확립하는 토대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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