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동부 운명은 트럼프-젤렌스키가 최종 결정, 하지만…푸틴은 동의할까?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통해 기존 미국 제시 종전안에서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조건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따라 우크라 쪽은 "올바른 접근"이라며 한숨 돌렸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러시아의 동의를 끌어내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토 양도 등 핵심 문제가 미·우크라 정상에게 넘어간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의 협상에 참여한 세르히 키슬리차 우크라이나 외무부 제1차관은 24일(이하 현지시간) 공개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생산적" 논의를 통해 미·우크라 양쪽 모두 "긍정적"이라고 느낄 만한 초안이 도출됐다고 밝혔다. 그는 초안이 기존 미국 제시 28개 항에서 19개 항으로 변경됐고 이 과정에서 큰 폭으로 수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키슬리차 차관은 새 초안이 언론에 유출된 28개 항과 유사점이 많지 않다며 "기존안에서 남은 부분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새 초안에선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군대 축소 조건이 완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초안 내용에 정통한 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제시 초안에선 우크라이나 군 규모를 60만 명으로 제한했지만 수정안에선 80만 명으로 상한이 늘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 1월 기준 우크라 현역 병력이 88만 명으로 추산됐고 전쟁 이전엔 더 적었음을 감안하면 군 규모를 80만 명으로 제한하는 건 우크라이나의 방위력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신문에 따르면 기존안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 차단 관련 문구도 완화됐다고 한다.

키슬리차 차관은 우크라이나 병력 제한 조건이 철회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유출된 안(기존 미국 제시안)에 담긴 우크라이나 병력 규모는 더 이상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안의 전쟁 범죄 전면 사면 조건도 "전쟁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고충"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키슬리차 차관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제안과 시각을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고 "우리가 제안한 거의 모든 것을 이해 받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가장 민감한 사안인 영토 양도, 나토와의 관계 등 문제는 "괄호로 묶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게 될 예정이라고 키슬리차 차관은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논의에 정통한 유럽 당국자에 따르면 협상의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 미·우크라 대통령에 넘어갔다고 전했다. 보도된 기존안은 러시아가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포함해 우크라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 지역을 러시아에 넘기도록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4일 영상연설을 통해 협상을 마치고 제네바에서 돌아온 대표단에 새 초안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며 관련해 "올바른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민감한 사항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며 "우크라이나는 결코 평화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2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 협상에서 정말 큰 진전이 있을까? 보기 전엔 믿어선 안 된다. 하지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 지도 모른다"며 기대를 북돋는 메시지를 남겼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미 방송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가 타결될 수 있다는 낙관과 희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 CNN 방송을 보면 레빗 대변인은 24일 취재진에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만남이 이번 주에 예정돼 있진 않다고 밝혔다. 레빗 대변인은 이날 폭스뉴스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이 끝나길 원한다"며 "미국은 여전히 나토에 막대한 양의 무기를 보내거나 팔고 있다. 영원히 그럴 순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자국에 불리한 조건을 지우는 것에 비례해 러시아가 휴전에 동의할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1일 미국 제안 28개 항 휴전안이 평화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며 긍정적 태도를 보인 바 있다.

24일 <로이터> 통신은 유리 우샤코프 러 크렘린(대통령궁) 외교정책 보좌관이 보도된 유럽의 대체 제안을 "비생산적"이라고 일축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통신은 전날 유럽 쪽 제안에 우크라 병력 제한 규모를 80만 명으로 상향, 영토 협상을 현 전선에서 시작, 미국이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 헌장 5조에 준하는 보호를 우크라에 제공, 우크라 피해가 보상될 때까지 러 자산 동결 등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 계획은 우크라이나가 결국엔 동참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러시아가 싸움을 포기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는 여전히 전혀 없다"고 짚었다.

방송은 미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이 관련해 "푸틴(러 대통령)은 현재 군사적으로 훨씬 더 자신감을 갖고 있다"라며 "러시아의 입장은 '우리가 요구 사항을 제시했는데 받을 건가 말 건가?'이다"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받으면 전쟁을 멈추고 아니라면 당신들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BBC는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바쁘게 돌아가는 외교 상황이 "우릴 그저 시작점으로 돌려 놨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휴전안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러시아의 공습은 계속됐다. <AP> 통신을 보면 2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한 러시아 공습으로 최소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공격으로 주거용 건물과 에너지 시설이 피해를 입었고 일부 지역에서 물, 전기, 난방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