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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어린이의 영원한 박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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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애 어린이의 영원한 박수부대

[세상을 바꾸는 힘, 나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강지원 변호사

국내외 정세가 불안합니다. 서로를 향한 미움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남모르게 내 소중한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 덕분에 우리 사회는 미래의 희망을 꿈꿀 수 있습니다. 나눔은 힘이 셉니다. 작은 결심, 조그만 행동이지만 태풍이 되어 사회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푸르메재단이 한국 최초로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을 세운 것도, 단단한 의지로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장애인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합니다.' 나눔을 실천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대표가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 왼쪽부터 강지원 변호사,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우리마을 촌장),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 ⓒ푸르메재단

"백 이사! 2만 원만 빌려주세요. 깜박 잊고 지갑을 다 비웠네요~"

오래전 일이다. 강지원 변호사를 모시고 한 여성단체의 모금행사에 간 적이 있다. 강 변호사는 여성재단 이사와 여성단체의 후원회장을 맡는 등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을 쏟아왔다. 행사가 끝날 무렵, 지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후원금 봉투에 넣으셨다. 나는 속으로 '특별하게 여기시는 단체구나'하고 생각했다. 마침 월급을 현금으로 찾아두었더라면 모조리 봉투에 넣을 기세였다. 강 변호사를 광화문역 앞까지 바래다 드리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부르셨다. 2만 원을 빌려달라고 말씀하셨다. 지갑 속의 돈을 한 푼도 남김없이 후원금으로 내서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타고 갈 택시비가 없었던 것이다. 이후 강 변호사를 모시고 후원행사에 가는 날이면 늘 2만 원을 준비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푸르메재단이 세워지기 전 대표로 누굴 모실까 고민했다. 어린이와 장애인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함께 해주실 분이 필요했다. '누구'라고 하면 '아~' 하고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는, 헌신적인 어른 말이다. 김성구 샘터사 대표와 고 이정식 CBS 사장 등 재단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한 분들께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강지원 변호사를 추천했다. 당시 강 변호사는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 위원장과 어린이청소년포럼 대표를 맡아 청소년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설득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첫 만남에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꺼냈다.

"영국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아내가 스코틀랜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혼수상태의 아내 한 사람을 위해 여섯 명의 간호사가 배치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딸아이가 중환자실 앞에서 놀고 있자 간호사 한 사람이 자기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 제 딸을 함께 보냈습니다. 한국인 가족이 여행을 왔다가 엄마가 크게 다쳤다는 사정을 듣고 유치원에서도 조건 없이 아이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줬습니다. 영국병원에서 받은 감동입니다.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친절한 병원이 우리나라에도 하나쯤 있어야겠다고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아내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뒤 독일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소식을 듣고 뮌헨 교민, 한국성당 신부님과 교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아내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모두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그때 제 딸아이가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 엄마 다리는 곧 자라날 거예요"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딸의 친구 난희도 "맞아요. 아줌마 다리는 도마뱀처럼 곧 자랄 거예요"하고 말했습니다. 어른들은 절망 속에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본 겁니다.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재활병원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적의 병원을 만들 수 있도록 변호사님이 도와주십시오."

눈가가 촉촉해진 강 변호사가 대답했다. "꼭 필요한 일이라면 저도 힘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단 푸르메재단의 취지가 선명해야 하고 무엇보다 투명하게 운영돼야 합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렇게 명확하고 흔쾌한 답을 준 분은 처음이었다.

▲ 초대 청소년보호위원장 때의 모습. ⓒ푸르메재단

긍정의 아이콘

2000년에 태어난 어린이 43만 명 중 장애어린이는 4.6% 2만 명에 달했다. 어린이재활병원은 일본 202개, 독일 140개, 미국에 40개가 있었지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에는 하나도 없었다. 강 변호사는 깜짝 놀라면서 "그런데 정부도 외면하는 재활병원을 푸르메재단이 지을 방안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최근 들어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회공헌(CSR) 차원에서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동참하도록 호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가족이나 친척 중 장애인이 한 사람쯤 있을 정도로 시민들과 밀접한 문제인 만큼 시민 모금 캠페인을 벌였으면 합니다."

설득력이 없어 보였지만 '긍정의 아이콘' 강지원 변호사는 "뭐든 불가능은 없습니다. 시도해 봅시다" 하고 오히려 나를 격려했다.

▲ 2010년 종로구 부암동 연탄봉사에 나선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이지선 이화여대 교수, 강지원 변호사, 산악인 엄홍길 대장(오른쪽에서 두 번째부터). ⓒ푸르메재단

이때부터 강지원 변호사와 인연을 맺고 모든 문제를 의논했다. 서초역 근처에 있는 사무실로 찾아갈 때도 있었지만 바삐 움직이는 그의 승합차 안에서 주로 만났다. 차 안에는 양복과 와이셔츠가 여러 벌 준비되어 있었고 방송원고와 법률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2001년 말, 나는 다니던 동아일보를 그만두면서 재활병원을 세울 두 가지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먼저 '자동차특허'였다. '주차할 때 자동차 옆에 있는 도어가드를 유압식 기어장치로 튀어나오게 한다면 문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자동차회사에서 이 특허기술(실용신안권)을 사준다면, 어린이재활병원을 짓고 운영비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렵게 특허를 냈지만 자동차회사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고, 특허 유지비와 실험비 청구서만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것과 유사한 특허를 자동차회사에서 방어용으로 출원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허 건은 실패로 끝났다.

두 번째는 하우스맥주회사 설립과 주식 상장이었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대규모 공장에서 생산하는 맥주 대신 양조사의 손맛에서 우러나는 소규모 맥주, 즉 하우스 맥주의 생산이 가능해졌다. 맥주를 좋아했던 나는 독일 뮌헨에 살면서 <유럽맥주여행>이란 책을 쓸 정도로 맥주 마니아였다. 마침 뮌헨공대에 양조학을 공부하러 온 방호권 씨를 만나면서 맥주회사를 창업해 재활병원의 종잣돈을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2002년 2월 '영혼에 감동을 주는 맥주'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옥토버훼스트'를 설립했다. 회사가 상장하게 되면, 내가 가진 지분만으로 재활병원을 지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2007년 국제금융위기와 국내 경기침체로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이마저 불가능해졌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루듯

2004년 8월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푸르메재단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이사장에 취임한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님은 상기된 표정으로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루고 조그만 벽돌이 모여 거대한 성채를 이루듯, 아름다운 재활전문병원을 건립할 때까지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갑시다" 하고 당부했다. 푸르메재단은 어린이재활전문병원 건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출항을 시작했다.

▲ 푸르메재단 이사회를 마친 후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석한 강지원 변호사, 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 안국정 전 SBS 부회장(왼쪽부터). ⓒ푸르메재단

김성수 주교님에 이어 푸르메재단 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강지원 변호사는 병원 건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백 이사! 잠자리에 눕다가 생각이 났는데 ○○기업이 요즘 사회공헌사업을 고민하고 있대요. 아이디어를 만들어 보세요." 늦은 밤이든 새벽이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전화가 걸려 왔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 모습을 보면서 '푸르메재단이 꿈꾸는 것을 실현할 수 있겠다'고 확신하게 됐다. 서울 시내에서 바자회를 할 때도 강 변호사는 가장 먼저 도착해 앞치마를 두르고 콩나물과 치약을 누구보다 열심히 팔았다.

기금이 조금씩 모이자 첫 사업으로 현재 재단이 들어선 푸르메센터 안에 어린이재활의원과 장애인전용치과, 종로장애인복지관을 설립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뜻을 같이하는 시민 3000명이 기금을 모아준 덕에 기적처럼 2012년 7월 푸르메센터가 준공됐다. 우리는 약속대로 지체하지 않고 종로구청에 기부채납을 했다.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장애인복지관이 없었던 종로구는 숙원사업이 해결되자 이에 화답해, 푸르메센터에서 발생하는 적자의 일부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재단 초기 우리가 꿈꾸는 장애인복지시설을 견학하기 위해 일본 고베에 있는 종합복지타운 '행복촌'을 방문했다. 김성수 주교님과 강지원 변호사를 모시고 떠난 첫 해외연수였다. 행복촌은 고베 시장이 노르웨이를 방문한 뒤 10년 동안 준비해 1989년 완공한 장애인종합복지타운이었다. 규모만 해도 여의도 4분의 3 정도 면적(62만 평)에, 당시 4천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해 완공됐다. 이곳에는 재활병원과 요양병원을 비롯해 장애인작업장, 공동주택, 직업훈련원까지 장애인들이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어렵게 두 분을 모시고 갔지만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장애인시설을 견학하는 강행군이었다.

그런데 큰 실수를 저질렀다. 당연히 따로 방을 드려야 하는데 두 분을 한 방에 배정한 것이다.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에, 며칠 동안 화장실까지 같이 사용하려면 고역이었을 텐데 강 변호사는 주교님의 손발이 돼 성심껏 모셨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방문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강 변호사는 파김치가 되어 쓰러졌는데, 주교님은 몸을 깨끗이 씻은 뒤 오랜 시간 기도하셨다고 한다. 수도승처럼 생활하는 주교님의 모습을 보면서 강 변호사는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지혜의 절반은 머리가 아니라 인내로부터 나온다는 걸 두 분께 배웠다.

진정성의 힘


강 변호사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학연과 지연을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선진적인 기부문화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전근대적인 상조문화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자식과 핏줄에 대한 애착을 끊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명문 경기중·고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학교 이름과 동문 이야기가 나오면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면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풍토가 나라를 망쳤다"고 성토하곤 하셨다. 실제로 강지원 변호사는 부모상과 딸 결혼식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부인 김영란 전 대법관도 부친상을 당하고도 해외 출장 일정을 모두 소화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그야말로 부창부수였다.

▲ 서울대 입학식. ⓒ푸르메재단

검사 시절 대부분의 검사가 공안과나 특수과를 희망했지만 강 변호사는 탈선 청소년을 선도하는 서울보호관찰소장과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자진해 맡았다. 조직에 충성하는 검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시민과 사회적인 약자에게 충성하는 검사와 공무원이었다.

1989년 소년범을 관리하는 서울보호관찰소 소장이 된 강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비행청소년보호관찰제도'를 실시하고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도 처음으로 집행했다.

"어떻게 하면 비행청소년들에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직원들과 중증장애인시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어요. 몸도 가누기 힘든 또래 장애청년들을 보고 처음에는 주저하다 음식을 먹여주고 목욕 봉사를 하자 변화가 찾아왔어요. 사회가 이들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탈선청소년이 훨씬 줄어들 겁니다."

강 변호사의 가장 큰 장점은 진정성이다. 그 진정성은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 그가 푸르메재단으로 출근하면 다양한 사람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대부분 사기와 가정폭력으로 피해를 봤지만 법에 호소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강 변호사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마음속에 맺힌 분노와 응어리를 풀어준 뒤,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마음을 다해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신과 의사 같았다.

되돌아보니 강지원 변호사와 함께한 시간이 21년이 넘었다. 재단 문제를 상의드릴 때마다 강 변호사는 이렇게 묻는다. "백 이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입니까?"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말 내가 최선의 선택을 했나' 가슴이 뜨끔하다. 강지원 변호사는 장애어린이와 푸르메재단의 영원한 박수부대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큰 어른이 박수부대로 계시니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다.

▲ 부인 김영란 전 대법관, 두 딸과 함께. ⓒ푸르메재단

* 2024년 7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을 시작으로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 정호승 시인, 고 김정주 넥슨 창업주, 이지선 교수, 가수 션 등 나눔을 실천한 분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글이 모아져 문학동네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20년 동안 푸르메재단 일을 하면서 문을 열어주시고 푸르메재단과 함께 꿈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뜻과 정성을 모아주신 기부자와 시민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웃을 위해 내 것을 나누고 시간과 열정을 바친 사람들을 위한 헌사이자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확산해 온 시민들에게 보내는 찬사입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는 CBS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한 뒤 영국에서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계기로 푸르메재단을 세웠습니다. 푸르메재단은 시민 1만 명과 넥슨 등 500개 기업과 함께 2016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하고, 2022년 경기도 여주에 푸르메소셜팜을 여는 등 장애어린이의 재활치료와 발달장애 청년의 자립을 위한 사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 <세상을 바꾸는 힘>(백경학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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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메재단

지난 2005년 설립된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2016년 서울 마포구에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 장애어린이의 치료와 재활을 돕고 있다. 현재는 어린이재활병원에 이은 2기 사업으로, 학업과 재활치료를 잘 마치고도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발달장애 청년들을 위한 일터 ‘푸르메소셜팜’을 완공해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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