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로 현지 활동을 다녀왔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최소 6만 8000여 명의 가자지구 주민이 살해됐다. 팔레스타인을 처음 가본 이들이 목격한 팔레스타인 민중을 숫자와 자료가 아닌 삶과 이야기로 풀어낸다. 네 차례에 걸쳐 기고를 싣는다.
요르단과 알-아리하(제리코) 국경을 넘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갔다. 알-아리하는 분명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인데 이스라엘에 입국심사를 받았다. 이것이 점령의 첫 인상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파괴하기 위해 뿌린 독 때문에 몸 절반이 상한 나무, 영문도 모르고 신분증과 차키를 빼앗겨 되돌려 받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팔레스타인인, 운전 중 갑자기 이스라엘 점령군들에게 무릎 꿇고 심문 받아야 하는 팔레스타인인. 아, 이것이 점령이구나.
서로를 돌본다
우리는 베들레헴에 있는 아이다 난민촌에 있는 알로와드 센터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게스트하우스 창문 밖으로 아이다 난민촌 모습이 훤히 보였다. 물탱크가 가장 먼저 보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수자원을 통제하기 때문에 난민촌은 항상 물이 부족하다. 언제 단수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난민촌의 건물들 위에는 물탱크들이 있었다. 나블루스 발라타 난민촌에서는 야파 센터에서 만난 활동가로부터 난민촌 설명을 들으며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사이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을 걸었다.
우리가 찾은 난민촌들은 공통적으로 어린이와 여성을 지원하는 센터가 운영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센터에서 기초적인 교육을 받고 있었다. 알로와드 센터에서는 여성들이 역할극을 통해 점령과 난민촌 생활에서의 정신적 피해를 소화할 수 있도록 하고 야파 센터에서는 여성들이 집단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 운영하고 있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서울 생활과 비교가 되다보니 개인의 일상을 같이 책임지고 트라우마를 서로 돌봄으로 극복하고 있는 마을 공동체가 활동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계속 심고 키운다
이전부터 관계 맺고 있는 단체 활동가를 만나러 나블루스에 갔다. 그곳에 만난 여성지원센터 활동가 라니아가 자신의 마을 '아씨라'에 와달라고 했다. 불법 유대인 정착민의 공격이 심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계획에 없었지만 아씨라에 갔다.
아씨라에 마을 공동체인 리타지 여성농민협동조합이 있었다. 우리는 라니아와 함께 9명의 여성농민들이 농사짓는 땅에 대해 설명을 듣고, 양봉업 전문가 수헤르가 꿀을 채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헤르는 꿀과 꿀이 함유된 오일, 왁스, 비누 등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했다. 그리고 리타지 협동조합은 어린이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기초적인 교육 과정과 함께 농업 교육이 이뤄졌다. 센터는 어린이들에게 흙을 만지며 작물을 심는 경험과 함께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도 팔레스타인 땅을 보존하기 위해 농업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아씨라에 머무는 중 어느날 라니아 이웃 카림의 농사일을 도왔다. 카림의 밭은 아씨라 옆 마을 마다마였고 이 마을 또한 불법 유대인 정착민의 공격이 심한 마을이었다. 카림의 밭은 불법 유대인 정착민이 멧돼지를 풀어 농사를 방해해서 펜스가 쳐져 있었다. 우리는 포도나무 주변에 있는 잡초를 뽑고 물대기를 위해 흙을 파냈다. 카림은 농사일에 서툰 우리에게 시범을 보여주듯 곡괭이질을 했다. 카림은 학교 가기 전 후로 가능한 매일 농사를 지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농부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카림과 번역기를 이용해 소소한 대화를 주고 받은 것이 마음에 남았다. 다음날에도 농사일을 돕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이스라엘 점령군이 마을에 나타나 이동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삶과 자수를 놓는다
다시 나블루스를 찾았을 때 우리는 가자지구 여성들을 만났다. 서안지구에서 가자지구 여성들을 만나다니. 그들은 서안지구에서 치료받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이스라엘로부터 허가를 받고 나왔다. 집단학살 이후 가자지구가 봉쇄되면서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미라는 집단학살이 발발하기 2달 전 어머니 간병을 위해 두 딸과 함께 가자지구를 나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하며 인터넷과 통신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끔 연결이 된다면 가자에 있는 남편과 전화로 소통했다. 혼자서 가족들을 돌보며 딸이 아팠던 적이 있지만 남편에게 바로 소식을 알리지 못해 속상하기도 했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움루하이파는 집단학살이 발발하기 4일전에 가족의 출산을 돕기 위해 나블루스에 왔다. 여전히 가자지구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집이 붕괴되어 돌아가더라도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서안지구에 살게 되면서 이들은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해야 했다. 움루하이파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타트리즈(자수)를 12살 때부터 현재까지 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가자 여성들에게 자수를 가르쳐주며 함께 생계 노동을 했다. 무기한 서안지구에서 생존은 해야 하고 가자지구에 남아있는 가족의 안전과 집의 상황이 걱정되긴 할테지만 그들은 울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서로 농담도 하고 호탕하게 웃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온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줬다. 그들의 웃음과 자수를 하는 손 끝에서 집단학살과 점령을 견디는 강인함을 보았다.
삶이 저항이다
가자지구에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팔레스타인에 아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단학살 속에서 낭만을 찾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숫자로 가려진 이들에게 죽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삶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삶은 이어지고 있다. 지나가는 우리에게 기꺼이 커피를 나눠주는 사람부터 불법 유대인 정착민의 공격으로 살해당한 팔레스타인인의 장례식을 함께 치르는 마을 그리고 최근 가자지구의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까지, 팔레스타인의 삶은 이어지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집단학살은 팔레스타인 땅을 빈 땅으로 만들려는 작업이다. 분명히 선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작업에 열심이지만, 이미 여전히 그 땅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다채롭고 아름다운 삶이 가득 차있다. 억압에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정의를 증언하는 삶이 가자지구에 있다. 혼자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옆사람들을 같이 일으켜 세우는 공동체의 삶이 팔레스타인에 있다. 팔레스타인은 환대하고 연대하는 삶으로 이스라엘의 식민지배에 대항한다. 그러니 남아있고 이어지는 팔레스타인의 삶은 저항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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