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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로 엮인 '동맹' 그만하겠다는 미국…'통일의 짐' 내려놓으며 살 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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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로 엮인 '동맹' 그만하겠다는 미국…'통일의 짐' 내려놓으며 살 길 찾아야

[정욱식 칼럼] 철저한 '자국 이익 중심주의'로 재편되는 세계 질서, '한국 우선주의' 필요하다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세계 질서를 홀로 떠받치는 시대는 끝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12월 초에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천명한 내용이다. 아틀라스는 지브롤터 해협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의 티탄이다. 과연 미국이 이러한 아틀라스에 비유되는 것이 타당한지, 지구를 지배하는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 행세를 해왔던 것인지는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국이 세계 질서를 쥐락펴락하려고 했던 시대는 미국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더 빠르게 저물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미국, 중국, 러시아 중심의 다극화 추세가 빨라질 공산이 커지고 있고 '미국의 범'에 있던 동맹들은 새로운 좌표 설정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더욱 기승을 부려온 '약탈적 거래주의'와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라'는 요구는 한국 내에서 대미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을 낳고 있다. 자주국방을 비롯한 '자강론'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우리가 '통일의 짐'을 내려놓는 것에서 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자유민주적 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패권적 발상'이든, 도탄에 빠진 동포를 구해야 한다는'시혜적 발상'이든, 조선(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통일을 이루겠다는 '점진적 발상'이든, 통일은 당분간 불가능한 목표가 되었다.

이는 비단 조선이 핵무장을 하고 '적대적 두 국가'를 천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이 기존 동맹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러시아와 동맹을 재결성한 것 때문만도 아니다. 한국식 통일론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던 미국의 변화도 우리의 현명한 선택을 재촉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를 주축으로 하는 '가치와 이념'은 한미동맹의 통일론에도 강하게 투영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걷어찼다. 이게 '청천벽력'일까?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기에 따라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통일의 짐'을 내려놓으면 대미 의존도를 크게 줄이면서 ‘슬기로운 자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대미 의존은 두 가지 맥락에서 나온다. 하나는 조선의 적화통일 시도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은 적화를 포함한 어떤 방식의 통일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는 그 구체적인 조치를 빠르게 취하고 있다. 또 하나는 한국이 자유통일을 실현하는데 미국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더 이상 '통일의 동반자'가 아니다.

이는 통일 문제와 관련해 적화통일 저지와 자유통일 실현을 두 기둥으로 삼았던 한미동맹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은 '우리국가제일주의'라는 구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족과 통일이라는 '대의'를 접고 '조선 우선주의'로 방향을 선회했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이상주의적 목표에 헛심을 쓰지 않고 철저하게 자국 이익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하여 우리도 그것이 영광의 언어이든, 부담의 표현이든 통일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가 당분간 이룰 수 없는 통일을 위해 유무형의 힘을 쏟아 부을수록 대미 의존을 줄이는 길도, 자강의 길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통일의 짐을 내려놓으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쏟아부어온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우리 사회 내부 문제 해결에 투입하면, 민생을 비롯한 '복합 위기' 대처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좌표를 잃은 남북관계를 '평화적 두 국가'로 정립할 수도 있다. 국방 수요를 크게 낮춰 '실용적 자주국방'의 길도 열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이 통일을 영원히 포기하자는 취지는 아니다. 통일은 미래 세대의 선택으로 넘기고 현세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우리 사회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나를 이롭게 하면서 타자와의 관계도 이롭게 할 수 있는 이기이관(利己利關)에 기초한 '한국 우선주의'가 필요하다.

나는 이재명 정부가 이 역사적인 책무를 흔쾌히 짊어지길 바란다. 국내에선 통일론에 대한 피로감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고, 조선은 통일을 포기했으며, 지정학적 환경과 미국의 변화로 통일에 유리한 국제정세는 더더욱 멀어졌다. 이재명 정부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 사회적 공론화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통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해보면 어떨까?

▲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롭게 선 민주주의, 그 1년' 외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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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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