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안전기본법은 유가족과 시민의 바람입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유가족과 시민들은 생명과 안전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많은 재난참사의 교훈과 경험을 토대로 생명안전기본법이 발의됐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 중입니다. 안전권이 보장되고, 피해자의 권리가 보호되며, 안전영향 평가를 통해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독립적인 진상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법입니다.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무, 안전 약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와 생명안전종합계획 등에 대해서도 담고 있습니다. 이 법의 통과를 바라며 재난참사 유가족과, 유가족을 지원하는 법률가들이 생명안전기본법에 대한 연속기고를 합니다. -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2014년 4월 16일 이후, 11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아직도 그날의 고통과 상실로 무너진 삶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참사현장에서 드러난 국가의 무책임과 뒤늦은 대응, 그리고 세월호참사 이후에도 한국사회에서 반복되는 크고 작은 참사들을 마주할 때마다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겪은 고통이 다시는 다른 가족에게 닿지 않게 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우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참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참사가 나기 전 작은 위험 징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은 비용과 효율 뒤에 밀렸고, 안전규칙은 형식에 그치고 맙니다. 참사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특정 사고가 날 때마다 대책이 논의되지만, 정작 구조적 위험을 바꾸는 변화는 더디기만 합니다.
저는 피해자로서 참사 이후의 고통이 단순히 사고 그 자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진상규명 과정에서의 소외, 부족한 지원체계, 책임 주체의 모호함 등 피해자들은 또 다른 상처와 싸워야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국가는 피해자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는 누구도 우리처럼 같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기본적인 사회적 약속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생명과 안전이 어느 정책보다 우선되도록 만들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책임 있게 대응하도록 하고 피해자가 외면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그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제 삶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지만 그 고통이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오늘도 저를 움직이게 하고 있습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그 바람에서 시작되었고 이 법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 더 안전한 사회를 향한 첫 걸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국가의 부재이자 정보의 부재였습니다.
왜 사고가 났는지,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책임자는 누구인지, 어떤 절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인 우리가 직접 자료를 요청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해야만 했습니다. 그 과정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특별법을 통해 특별조사기구가 만들어졌지만 조직적인 방해가 있었습니다. 정부는 예산도 제때 주지 않고 보고서 작성 기한도 없이 강제 해산시키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이렇듯 두 번의 특별조사기구를 만들었지만, 정권에 따라 흔들리는 독립적이지 못한 한계가 있습니다. 진상조사와 책임규명 제도개선이 국가의 기본의무임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와 시민이 다시 거리에서 싸우지 않아도 조사기구가 자동으로 독립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법적 틀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피해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구조과정에서의 정보 접근권, 참사의 원인을 알 권리, 진상규명 과정에 참여할 권리, 심리· 의료· 법률지원을 받을 권리 등이 필요했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체계적이지 못한 현실 앞에 무너졌습니다.
'국가는 재난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일에는 기준도, 절차도, 권리도 없구나' 하는 절망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은 피해자의 최소한의 권리인 정보 접근권, 조사 참여권, 회복지원, 2차 피해방지, 국가책임 명시 등 이런 것들이 당연한 권리로 자라 잡아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참사들은 반복적으로 이어졌고 그때마다 피해자들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왜 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책임자는 없습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각 참사마다 특별법을 만들고 조사기구가 만들어지는 반복적인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국가가 재난을 예방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본원칙'이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사 당일의 구조 실패만이 고통의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반복되는 오해와 왜곡, 외면하는 국가, 매번 새로 싸워야 하는 지원체계, 정보 비공개와 책임회피 등, 이 모든 것이 우리사회가 피해자를 보호할 기본적인 규범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상조사도 피해자 권리보장도 재난 대응도 매번 피해자들이 싸울 일이 아니라 국가의 자동적 의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고 재난피해자의 권리 기준을 세우고 독립적 조사체계와 예방 중심 정책을 제도화하며 재난 대응의 책임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포괄적 생명안전기본법입니다.
세월호참사로 드러난 고통과 투쟁의 경험은 이 법이 왜 필요한지를 너무나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다시는 거리에서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피해자의 권리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기준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으로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재난은 예고 없이 오고 한순간에 가족의 일상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묻습니다.
"왜 아무도 이걸 막지 못했나요?" "왜 구조하지 않았나요?" "왜 책임지는 사람이 없나요?"
하지만 질문에 답은 이미 늦어버린 뒤였습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그 '너무 늦은 질문'을 막고자 하는 법입니다.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예방하고 책임을 분명히 해서 재난을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기본 의무를 법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 법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내일을 지키는 안전망입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반복되어야만 안전이 논의되는 나라가 아니라 미리 예방하고 대응하는 안전한 나라였으면 합니다.
생명안전 기본법은 '우리 모두가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가장 기본법입니다. 시민의 지지와 관심이 있을 때 정치와 행정이 움직여서 이 법이 제정될 수 있습니다. 그 관심이 누군가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 길에 여러분들의 마음이 함께하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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