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김철진 씨는 요새 "밤에 잠이 안 온다"는 동료들을 만나고 있다. 늦은 시각 집에서 소주 한잔을 하고 전화를 하거나, 자던 중 깬 뒤 다시 잠에 들지 못하는 동료들이다. 하동 석탄화력발전소 1호기 폐쇄가 불과 1년 뒤로 다가오면서, 현장엔 무력감과 뒤숭숭함이 깔려 있다.
같은 발전소의 또 다른 하청노동자 김영구(49) 씨도 "하동 자체가 소멸 지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발전소가 있어 인구가 들어오고 유지됐는데 여기 폐쇄되면 식당도 다 문 닫고, 하동이 폐허가 되지 않겠나?"라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발전소 폐쇄는 우리에겐 삶의 죽음"이라며 "정의로운 전환이 돼야 하는데 대안이 없으니, 어떻게 먹고 살아갈는지, 아기 분윳값부터 학원비까지 온갖 걱정을 다 하고 있다"고 전했다.
17일 오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발전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운동 구술연구'(책임연구자 한재각) 결과 공유회가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김영구 씨와 올해 말 폐쇄를 앞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1호기의 하청노동자 김영훈(32) 씨가 함께 발언자로 참가했다. 이들은 그동안 차별과 고된 노동을 감내하면서도 한국 사회에 전력을 보내왔다는 자부심을 전하는 한편, 정작 폐쇄를 앞두고 노동자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현 구조에 분노를 토로했다.
정의로운 전환 기금, 전광판 교체·나무 심기 쓰인다
태안 시내에 위기감이 감돈 지는 오래됐다. 태안엔 총 10기의 화력발전소가 몰려 있다. 원래 올해 말을 시작으로 2036년까지 6기가 폐쇄될 예정이었으나, 2040년까지 완전 탈석탄을 이룬다는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며 폐쇄 계획은 더 빠르고 전면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김영훈 씨는 "태안엔 버거킹이 3년 전에 들어왔는데, 여기 사장님이 한 지역 주민 간담회 자리에서 '발전소 폐쇄될 거였으면 여기에 버거킹 안 지었다'며 화를 내며 말하더라"며 지역 상권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발전소 노동자들이 대부분 퇴근하고 시내에서 밥이나 술을 하는데, 이들이 다 빠지면 어떻게 될까"라며 "지금도 폐점 상가는 많은데, 태안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다.
그런 그가 가장 놀랐던 건 정부 기구가 발전소 폐쇄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정작 그 안의 노동자의 존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점이다. 그는 "(지난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를 갔었는데, 그렇게 구체적인 발전소 폐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도 '폐쇄' 말곤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며 "현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혀 없어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발전소 운영사들이 노동자들의 삶에는 어떤 관심도 두지 않고 있다는 평가는 이번 구술연구에 담긴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국사편찬위원회 지원 사업으로 진행된 연구는 하동·태안 석탄화력발전소 1·2차 하청노동자 8명의 심층 구술 기록(총 12시간 55분)을 담았다.
연구에서 한 구술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충남도에 발전소 폐쇄하면서 (정의로운 전환 관련) 기금이 100억 원 정도 조성됐는데, 여기 태안 보시면 전광판 교체 사업 같은, 발전소랑은 아무 상관 없는 데에 기금을 쓴 지역도 있고요. 나무를 심는다든지, 100억 원으로 뭔갈 하기에도 힘든데 그걸 헛되게 사용하니까. 진짜 정책이라고 할 정책이 없어요."
김영훈 씨도 "나무 심고, 간판 교체하고, 버스정류장 고치고 해봤자, 여기 폐쇄되고 다 떠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차라리 건물 하나를 임대해서 정의로운 전환 센터라도 하나 마련해서, 당장 2~3년 대비책이라도 마련하는 게 낫지 않냐고 건의했으나 씨알도 안 먹혔다. 그저 탁상행정이었다"고 말했다.
원·하청 차별 공고한 발전 현장
구술 기록엔 하청노동자로서 겪는 차별 문제도 빼곡히 담겼다. 부당한 업무 지시나 불법파견 문제 외에도 차별은 일상적이었다. 이를테면, 하동 화력발전소 원청 직원의 차 출입증은 플라스틱 재질이지만, 하청 직원들은 종이에 코팅지를 씌운 출입증을 받는다.
이들은 구내식당도 이용하지 못해 오랜 기간 싸운 후에야 동등하게 쓸 수 있게 됐으나, 원청 직원보다 더 비싼 돈을 내고 밥을 먹고 있다. 식당 차별은 태안 화력발전소도 같았다. 식당을 함께 쓸 수 있게 된 지금도 1차 하청업체 직원은 5500원, 2차 하청업체 직원은 7500원을 점심값으로 내며, 이는 모두 원청 직원의 밥값보다 비싸다.
구술 기록에 참여한 발전소 자회사의 청소노동자 송점심 씨의 말이다.
"저희를 좀 투명 인간 취급하고... 금요일은 좀 직원들이 퇴근을 빨리하거든요. 3시에 퇴근이에요. 근데 저희가 있는데 불을 다 끄고 가요. 그럼 우린 사람 아니에요? 사람 있는지 뻔히 알면서 왜 불을 끄고 가.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정리를 하고 불 끄고 갈 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 우리는 사람 아니야…"
이날 행사에 참여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10여 명은 모두 현장의 침체한 분위기를 우려했다. 노동조합 등을 결성해 정의로운 전환을 수년간 요구해 왔음에도 실효적인 정책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한 무력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지자체, 정부는 단지 우리가 떼쓴다고 받아들이는 듯하다. 답은 정해놓고, 형식적인 대화만 한다"며 "심지어 이런 대화 자리가 많지도 않다. (제대로 된) 자리가 만들어져서 지역 문제, 발전소 노동자 안전과 고용 문제를 서로 얘기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랬다. 또 다른 참가자도 "우리가 원하는 건 큰 게 아니"라며 "탄소 줄이고, 다 좋다. 그런데 사람이 살게는 해 줘야 하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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