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27살 청년 나이로 숨진 고(故) 장덕준 씨의 산재 사망을 은폐하려 한 정황이 담긴 대화 내용이 알려진 가운데, 고인의 어머니 박미숙 씨가 김 의장에게 '산재 은폐 시도를 사과하고 합당한 책임을 지라'고 촉구했다.
18일 택배과로사대책위원회는 서울 서대문 택배노조 대회의실에서 김 의장을 규탄하고 그간 쿠팡의 산재 은폐 사례를 설명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날 김 의장이 2020년 10월 장 씨의 죽음과 관련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고 사내 영상을 관리하는 전 임원에게 지시한 메신저 대화내역이 언론에 보도됐다. 김 의장 발언 중에는 "물 마시기", "잡담", "짐 없이 걷기", "화장실" 등 영상에서 부각해야 할 대목을 가리키는 듯한 것도 있었다.
해당 임원이 '영상을 본 사람들의 의견은 김 의장 지시와 상반된다'는 취지로 답하자 김 의장은 "그가 왜 열심히 일하겠나? 말이 안 된다!", "그들은 시간제 노동자들이다! 성과로 돈을 받는 게 아니다!"라고 다그쳤다.
박 씨는 "어제 이런(김 의장의 산재 은폐 정황이 담긴) 파일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지난 5년, 산재를 증명하기 위해 저희 가족은 모든 일상생활을 멈췄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의 산재를 신청하던 때 "회사는 근로계약서, 퇴직금 정산서, 12주 분의 근무일수 딱 세 가지 자료만 제공했다"며 "(쿠팡이) 존재하지 않는다던 CCTV, 한 장면만 봐도 밝혀질 일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조작까지 해 저희는 5년의 시간을 돌아왔다"고 했다.
박 씨는 "저희 가족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옥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남은 가족들은 언제 끝날지 모를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며 "김범석의 산재 은폐 지시로 이렇게 몸도, 마음도, 생활 터전까지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밝혔다.
이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무슨 권리로 한 가정을 파탄나게 하나?"라며 "김범석은 덕준이 산재 은폐 지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덕준이와 저희 남은 가족에게 사과하고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질의응답 시간 박 씨는 '김 의장을 고소할 계획이 있나'라는 질문에 "그렇게 하고 싶다"며 아들의 죽음 직후 진행한 산안법 고소, 고발에서 쿠팡이 건강검진 의무 위반에 따른 과태료 10만 원 처분만 받은 일을 말한 뒤 "만약 (산재 은폐에 대한) 김범석의 지시가 있었다면 (그때) 처벌 받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박 씨는 또 여전히 아들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과 김 의장의 대화 내역을 받아보지 못했다며 "상상을 하는 게 너무 괴롭다. 5년 동안 이렇게 힘든 시간을 겪었는데 (공개를) 기다리는 건 저희에게 또 고통"이라며 "국회든 어디든 이 진실이 묻히지 않도록 자료들이 그대로 공개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그간 대책위가 파악한 쿠팡의 산재 은폐 사례, 김 의장 발언의 법 위반 소지 등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박 씨는 그동안 고개를 땅으로 떨구고 눈을 감은 채 자리를 지켰고, 중간 즈음부터는 "김범석은 유족에게 직접 사죄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7건의 산재 은폐 사례에 대한 설명은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이 맡았다. 그에 따르면 생전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는 문자를 남긴 고(故) 정슬기 쿠팡 택배기사의 유족에게는 쿠팡 택배 대리점 대표가 찾아와 "저는 산재 안 해요", "다른 노무사랑 대외협력팀에 있는 사람까지 무러봤는데 전체적으로 (산재승인) 분위기는 좋지 않다" 등 말을 건네며 회유했다.
강 위원장은 "해당 택배대리점에 대외협력팀은 없다"며 이를 "원청(쿠팡)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억대 위로금을 추가 지급하기로 해 과로사 의심 사례 대응 직전 유족과 쿠팡이 합의한 일 △장례식장에 쿠팡 직원들이 찾아와 상주한 일이 언급됐다. 장 씨 유족에게 고인의 평소 엄무 모습이 담긴 CCTV를 제공하지 않은 일도 산재 은폐 사례에 포함됐다.
다른 세 건은 언론, 국회의원 등의 쿠팡 산재사망 이슈화 시도를 유족이 가로막은 사례였다. 강 위원장은 "유족이 직접 나서 언론 보도를 하지 말라고까지 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보이며 이는 유족과 쿠팡의 합의 때문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조혜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 변호사는 김 의장이 장 씨 죽음에 대해 임원에게 한 말을 △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재 은폐 및 원인조사 방해 △형법상 증거인멸교사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자의 처벌 조항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 후자의 처벌 조항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김광창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이제 쿠팡 문제는 한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쿠팡은 우리들이 피와 땀으로 축적하고 만들어온 한국사회의 기준과 상식을 악랄하고 오만하게 파괴하고 있다"며 "반사회적이고 파렴치한 쿠팡을 징벌하고 바로잡지 않으면 또 다른 죽음이 이어질 것이다. 막아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한편 2019년 6월부터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했던 장 씨는 2020년 10월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직후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일을 시작하기 전 75kg이었던 장 씨의 몸무게는 사망 직전 60kg까지 줄어있었다. 산재 심사 과정에서 쿠팡은 장 씨의 죽음이 '과도한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사망 전 12주간 근무시간이 1주 평균 58시간 이상에 교대제 근무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됐다며 2021년 2월 장 씨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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