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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학원 다닐 수 있게 해줄게” 교육 가치 발로 차는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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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학원 다닐 수 있게 해줄게” 교육 가치 발로 차는 서울시

['청소년 심야 교습 허용 조례 반대' 연속기고] ⑥ 학원 보조강사의 바람 "'한낱 채점 알바생'도 좋은 교육 고민하는데…"

지난 10월 정지웅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시간을 현행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울시의회는 의원 절반 이상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이번 개정안이 의회를 쉽게 통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교육계 일각에서 나온다. 이에 학생, 학부모, 학원 관계자 등 교육 현장 당사자 10명이 조례 개정안 폐지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서울 은평구 청소년들이 만드는 독립언론 <토끼풀>과 공동 게재한다.

지난 10월 정지웅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 시간을 현행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학생의 학습권 보장과 타 시도교육청과의 교육 형평성을 골자로 한 이 조례안은 결국 지난 18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간담회에서 정례회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학생들의 건강권 침해와 사교육 과열에 대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정 보류가 곧 철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조례안이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오른다면, 이 조례는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지를 강력하게 물어야 한다.

나는 학원에서 중등 영어 파트타임(시간제) 보조강사로 2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생활비 때문이었다. 대학에 다니며 정당의 지역위원회에서 비상근 사무국장으로 활동했지만, 정당법상 지역위원회는 유급 사무직원을 둘 수 없는 구조 속에서 학업과 정당 활동 외의 시간은 아르바이트로 채워야 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알바생인 나에게 교습 시간 연장은 그렇게까지 손해가 아닐 수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낮 동안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동료와 이해관계자를 만나고, 사업을 위한 자료를 만드는 등 활동가의 시간을 보내다가 학생들이 하교하는 초저녁부터 밤 9시까지는 학원에서 강사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더 이상 생산적인 일을 할 만한 기력이 없다. 씻고 침대에 누운 다음에 밀린 알림과 연락을 확인하고, 캘린더앱을 켜서 다음 날 일정을 조정한 뒤 잠든다.

일이 밤 9시에 끝나나, 자정에 끝나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는 것은 매한가지인지라, 그리고 활동가의 시간 동안에 사람들과 밥을 먹거나 카페에서 작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지라, 세 시간 더 일하고 그만큼의 돈을 더 받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집에 없는 시간이 늘수록 전기와 난방을 안 쓰게 되니 공과금까지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나는 이 조례에 반대한다. 시급을 더 받는 대가로 포기해야 하는 것에는 건강권, 수면권, 휴식권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늦은 밤까지 채점 업무를 하게 되면 학생 한 명 한 명의 학습 태도를 돌아볼 시간도, 학생들의 일상과 진로를 상담해 줄 '스몰토크'의 여유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고민하고 탐색할 시간도 사라진다.

교습 시간이 늘어날수록 가르침은 의사소통에 기반한 생생한 설명에서 기계적 공정과 처리의 과정으로 바뀐다. 학생들의 얼굴은 '문제를 많이 틀려서 손이 많이 가는 애' 아니면 '문제를 잘 풀어서 가르치기 편한 애'로만 기억된다. 더 많은 돈을 받는 대신, 나는 더 잘 가르치고 싶은 갈망과 좋은 선생님으로 남고 싶은 희망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것이 과연 정지웅 의원이 말하는 '자율성'인 것일까.

줄어드는 강사의 선택권

교습 시간 연장은 흔히 자율성 확대라는 말로 정당화된다. 학생과 학부모, 학원이 각자의 필요에 맞게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율성의 주체에서 강사는 쉽게 빠진다. 파트타임 보조강사에게 교습 시간은 협상의 대상이기보다 통보에 가깝다. 늦은 시간 수업이 늘어나도 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다음 학기 배정에서 밀릴 수 있고, 더 이상 불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몸이 아파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날이나, 다른 대외활동의 면접 일정과 교습 시간이 겹치는 순간처럼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긴다. 그런 날에는 학원에 나오지 못하거나 출근 시간을 늦출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고용주에게 오늘 하루는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면이 서려면, 평소 내가 근무하지 않는 날에 다른 강사의 대타를 서 주거나, 시험 기간에 근무 시간을 늘려 달라는 학원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쉬어야 하는 날에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동등한 협상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학원 교습 시간이 자정까지 연장된다면 이 관계의 형평성은 더 기울어질 것이다. 학원장은 학부모의 요구와 인근 학원과의 경쟁 압박 속에서 강사에게도 교습 시간 연장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그 요청은 선택의 형태를 띠겠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거절하기 힘든 기준이 된다. 교습 시간의 자율성이 늘어날수록, 강사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오히려 줄어든다.

한낱 알바생 아니냐고?

내가 잘 가르치고 싶다고 말하면 "한낱 알바생에 불과하지 않으냐"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다. 알바는 생활비 때문에 하는 일이고 고용주 입장에서는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인데, 왜 이렇게 '교육자'로서의 책임감을 짊어지냐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퇴근 시간이 5분 지났음에도 아직 모르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알려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다. 고용주인 원장 선생님도 나한테 이제 끝났으니 그만 가셔도 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책임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숙제를 확인하고, 틀린 문제를 짚어주고, 이해가 되게끔 설명하는 일만 주어지지 않는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인터넷 극우 사이트 비속어를 주고받거나, 자기는 공부를 못하니 쿠팡이나 뛰어야겠다는 자조성 농담을 할 때, 아무리 채점만 하는 강사에 불과하더라도 중등교육을 이수한 시민이라면 가만히 듣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학교 선생님이나 정규 전일제 강사와 책임의 무게는 같아도 권리는 같지 않다. 수업의 질을 고민하고, 학생의 말을 흘려듣지 않으며,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개입을 하라는 기대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교습 중에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을 지적하거나 학생들의 부적절한 대화 내용에 간섭하면 학부모에게 컴플레인이 가지 않을까, 나의 고용 연장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된다.

그 기대와 걱정을 감당하기 위한 시간과 여유를 요구하면, 그것은 곧 과한 욕심처럼 여겨질 것이다. 알바에 불과하다는 말은 이 불균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교육의 책임은 개인의 양심에 맡기면서도, 그 책임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 조건은 개인이 감내해야 할 몫으로 남겨두는 구조인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120여개 시민사회 단체가 지난 11월 10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성호(토끼풀)

좋은 수업은 '남겨진' 시간에서 나온다

교육의 질은 교실 안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하루의 수업이 끝난 뒤, 그 수업을 어떻게 기억하고 정리하는지가 다음 수업을 결정한다. 학생이 어떤 지점에서 멈칫했는지, 왜 그 설명이 잘 닿지 않았는지를 곱씹는 시간은 시간표 바깥에 있다. 그러나 교습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업은 끝나는 순간 곧바로 다음 업무로 밀려난다. 되돌아볼 틈이 사라진 수업은 축적되지 않고, 매번 처음처럼 반복된다.

남겨진 시간은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설명을 다듬고, 학생을 이해하며, 같은 내용을 조금 더 다르게 말해볼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수업을 오래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교습 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교육의 질을 보완할 수 없다는 점을, 현장에서 일하는 강사들은 이미 알고 있다. 교육을 생각한다면, 늘릴 시간을 고르기 전에 먼저 남길 시간을 물어야 한다.

교습 시간 연장 논의는 단순히 몇 시까지 불을 켜 둘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육을 개인의 열정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노동으로서 정당하게 대우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알바생이라 불리는 강사들의 책임감 위에 교육의 질을 얹어두면서, 그 책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외면하는 방식으로는 어떤 학습권도 지켜지지 않는다. 학생의 학습권은 강사의 노동권 분리될 수 없고, 교육의 공공성은 교실 안의 이상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더 늦게까지 가르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가르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을 함께 고민하는 조례가 교육의 이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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