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정지웅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시간을 현행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울시의회는 의원 절반 이상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이번 개정안이 의회를 쉽게 통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교육계 일각에서 나온다. 이에 학생, 학부모, 학원 관계자 등 교육 현장 당사자 10명이 조례 개정안 폐지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서울 은평구 청소년들이 만드는 독립언론 <토끼풀>과 공동 게재한다.
재수학원 옥상 난간에 서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던 나의 제자. 그가 맞은 편에 있는 내 학원 간판을 보고 찾아왔던 그날, 나는 15년간 해온 시험과목 교습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선생님, 저기 보이는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교실 불이 반짝이는게 보여서… 선생님하고 한 번만 더 얘기하고 싶어서 내려왔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 말을 하던 학생의 눈빛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성북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학생을 만났지만,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시험을 위한 강의를 가르칠 수 없었다.
지난 15년간 나는 교실에서 너무 많은 것을 목격했다. 우울증 약을 먹으며 수업에 오는 중학생들, 손목에 자해 흔적을 감춘 채 문제집을 펼치는 고등학생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나가서는 복도 구석에서 조용히 우는 아이들. 무한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얼마 전 중학생 딸을 데리러 밤 12시에 한 학원가를 찾은 적이 있다. 겉으로는 불이 꺼진 건물, 하지만 커튼 틈새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뒷문으로 들어가 보니 20명 남짓한 아이들이 형광등 아래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시계는 자정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고, 어떤 아이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초점을 잃은 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학원은 다 12시까지 하는데, 우리만 10시에 끝내면 뒤처져요. 학부모들이 원해요."
그 학원 원장의 말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학원 원장이었고, 나 역시 이 경쟁 구도의 공모자였으니까. 하지만 그날 밤, 내 딸의 손을 잡고 학원을 나오며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서울시의회가 추진 중인 학원 교습 시간 연장 조례를 보며 나는 재수학원 옥상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했던 학생을 문득 떠올렸다. 밤 10시였던 교습 제한 시간을 12시까지 연장하는 조례즉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권'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는 아이들을 더 깊은 밤 속으로 내몰려는 것이다.
학원가의 현실은 이미 오징어 게임이다. 원장인 나도, 강사들도, 학생들도, 심지어 학부모들도 모두가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우리 학원은 12시까지 합니다"라는 말은 무기가 되고, "OO학원은 새벽까지 한대요"라는 소문은 다른 학원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주변의 소규모 학원 원장들을 만나면 모두 한결같이 말한다. "우리도 12시까지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안 하면 학생들이 다 떠나가요."
강사들은 지쳐간다. 어느 수학 강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도 집에 초등학생 아이가 있어요. 밤 12시에 퇴근하면 아이 얼굴을 못 봐요. 아침에도 출근 준비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고요. 주말에도 보충수업 때문에 나와야 하고. 그런데 다른 학원이 늦게까지 하니까 우리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그 강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학생들은 더 지쳐간다. 작년에 내 학원을 찾았던 한 고등학생은 오후 3시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밤 12시까지 세 군데 학원을 돌았다. 집에 도착하면 새벽 1시. 학교 숙제와 인터넷 강의를 듣고 나면 새벽 3시. 그 아이는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 언제 자요? 언제 쉬어요?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싶고, 그냥 멍 때리고도 싶은데 시간이 없어요."
한국 사회의 무한경쟁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사교육비는 2023년 기준 연간 27조 원을 넘어섰고,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능력주의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아이들을 경쟁의 제물로 바치고 있다.
역설적으로, OECD 국가들은 모두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주 4일제를 실험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려 애쓴다. 최근 쿠팡의 새벽 배송 노동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학생들에게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가? 학원 교습 시간 연장은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다.
나는 묻고 싶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정말로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밤 12시까지 문제를 푸는 기계적 능력인가, 아니면 스스로 생각하고 삶을 견디는 힘인가? 나는 딸과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다. 아이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고민을 나누고 싶다. 그런데 밤 12시까지 학원에 있는 아이와 어떻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시의회 일부 시의원들은 '형평성'을 운운한다. 다른 지역은 12시까지 하는데 서울만 10시에 끝내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것은 지방자치의 개념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지방자치는 지역의 특성과 필요에 맞게 더 나은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수도 서울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한 입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서울의 청소년들은 이미 한계 상황에 있다. 그들은 삶의 끈을 놓으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원 시간을 늘리는 것은 형평성이 아니라 자살 방조다.
학부모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절박하다. 치솟는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부모들은 더 위험한 일자리로, 더 긴 노동시간으로 내몰리고 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 배송 일자리를 뛰어야 아이 학원비를 낼 수 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를 밤 12시까지 학원에 보낸다. 부모도 아이도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삶인가?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자승자박이라는 점이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아이를 더 낳지 않을 것이다.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고, 교육 당국은 향후 10년 내 현재 학원의 3분의 1이 자연 폐업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 경쟁을 심화시켜 모두를 죽이는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재수학원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던 그 학생은 지금 작은 서점에서 일하며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그 학생은 내게 말했다. "선생님, 그때 제가 배운 건 수학 공식이 아니라 죽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나는 더 이상 이 게임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학원은 시험 대비 수업을 중단하고 책 읽기 학원으로 전환했다. 학생들과 함께 천천히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나눈다. 시험 점수와는 무관한 책들을 읽는다. 느리지만 학생들의 눈빛이 살아난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여기 오면 숨을 쉴 수 있어요.“
물론 나는 소수자다. 대부분의 학원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다. 조례가 통과되면 밤 12시 교습은 '합법'이 된다. 그러면 지금도 몰래 운영되는 심야 학원들이 떳떳하게 간판을 달 것이다. 그리고 10시에 끝내는 학원들은 '경쟁력'을 잃고 하나둘 사라질 것이다. 결국 모든 학원이 12시까지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아이들의 밤은 이미 충분히 길다. 더 이상 그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지 말아야 한다. 학원 교습 시간 연장 조례는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총체적 모순을 더 심화시키는 일이다. 저출산, 사교육비 폭등,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 가족 해체, 이 모든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
원장이자 엄마로서, 나는 이 조례에 명확히 반대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학습 시간이 아니라, 숨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여유다. 가족과 저녁을 먹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밤 12시, 꺼진 불 뒤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절망이다.
이 조례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경쟁 속에서 죽어가는 법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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